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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신영복 유작, 글 90편 추가한 개정판 '처음처럼'

등록 2016.02.23 07:22:00수정 2016.12.28 16: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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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사람들이 가꾸는 꽃 뜰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잡초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습니다."(봄이 오는 곳)  snow@newsis.com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사람들이 가꾸는 꽃 뜰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잡초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습니다."(봄이 오는 곳)

 "'사람'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삶'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사람의 준말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경영하는 일의 70%가 사람과의 일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사람과 삶)

 지난달 15일 75세를 일기로 별세한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지은 책 '처음처럼'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부제 '신영복의 언약'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신영복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言)과 약속(約)으로 이뤄져 있다. 생전의 인터뷰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무기수의 옥중 서간이라면, 이 책 '처음처럼'은 다시 쓰고 싶은 편지"라고 했다.

 처음 선보이는 책은 아니다. '신영복 서화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2007년 초판이 출간돼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근 10년 만에 새로이 펴내는 개정신판 '처음처럼-신영복의 언약'은 바뀐 부제만큼이나 내용과 구성에서 많은 변화를 꾀했다. 초판본과 비교하면 90편 가까이 새로운 원고가 추가됐다. 첫 글 '처음처럼'과 마지막 글 '석과불식'만 그대로 두고 전체 구성을 대폭 바꿨다.

 출판사 돌베개 측은 "2015년 11월에 새로 선생이 추린 '처음처럼' 원고가 편집자 손에 전해졌다"며 "초판본에 실리지 않은 새로운 글과 그림을 대폭 추가해줬다. 그 당시 이미 선생의 병환이 위중해서 더 이상 집필이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선생은 병환 중에도 이 원고를 놓지 않고 몸이 허락하는 한 문장을 다듬고 그림을 모아 주었다. 이 책은 생전의 선생이 마지막까지 손수 정리한 유작인 셈이다"고 전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늘 처음을 맞이한다. 어젯밤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한다. 매일 매일이 언제나 새봄, 새날, 새아침이다. 우리의 일생은 처음과 함께 시작하고 처음과 함께 끝을 맺는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그렇다면 신영복이 이야기하는 '처음처럼'은 무엇인가? 내 삶의 자리를 끊임없이 반성하고 살펴보겠다는 다짐이다. 수많은 처음을 살펴보고 만들어내는 까닭은 바로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될 무수한 역경을 꿋꿋이 견뎌내기 위해서이다.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을 저술하며 시대의 지성인으로 불리는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지난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은 뒤 투병 중, 지난 15일 끝내 별세했다. 장례는 16일부터 18일 오전 11시까지 학교장으로 진행된다. 조문객은 오후 10시까지 받는다. 사진은 신 교수의 프로필. 2016.01.17. (사진=성공회대 제공)  photo@newsis.com

 "지금까지 필자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일관된 주제가 있다면 아마 역경(逆境)을 견디는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경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길 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수많은 '처음' 중에서)

 모두 4부 215편의 단장으로 구성돼 있다. 1부 '꿈보다 깸이 먼저입니다'에는 삶에 대한 사색, 신영복 특유의 깨우침과 성찰의 잠언들을 모았다. 2부 '생각하는 나무가 말했습니다'에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가치,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진리 등 신영복의 에스프리를 담았다.

 3부 '공부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는 머리부터 가슴,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 가는 머나먼 여행길, 곧 우리 삶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20년의 수형 생활을 '나의 대학 시절'이라 명명하던 신영복의 감옥 일화들이 담겼다. 이 글들은 초판본에서는 실리지 않은 것이다.

 4부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는 신영복의 주요 사상인 관계론, 연대와 공동체에 대한 호소, 현재 한국 사회의 삶에 대한 연민과 그 해법이 주조를 이룬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사색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울림의 언어가 담긴 책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하는 데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이 세속적 가치에서 얼마나 뭘 이뤄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시대가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시대를 정직하게 호흡하고, 시대의 아픔에 함께하는 삶,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어느 인터뷰에서) 308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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