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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종합]오바마, 히로시마 연설서 '핵없는 세상' 역설…원폭 투하 사과 안해

등록 2016.05.27 19:45:23수정 2016.12.28 17: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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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AP/뉴시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2016.05.27

【 히로시마=AP/뉴시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2016.05.27

"히로시마에서 한국인 수 천명, 미국인 수 백명도 희생"  핵없는 세상 역설…한국인 위령비는 참배안해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맑고 구름 한점 없는 아침,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졌다. 그리고 세상이 바꼈다"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원폭 피폭지인 히로시마(廣島)를 찾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7일 오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이 같이 소감 발표를 시작했다. 

 이날 오후 5시 25분께 자동차를 타고 평화공원데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함께 걸어서 평화공원 내부에 위치한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도착했다.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왼편에 나란히 서서 오바마 대통령을 안내했다. 위령비에 도달하기 까지 오바마 대통령은 시종일관 입을 굳게 다문채 원폭 투하의 참상을 상기하는 듯 심각한 표정을 보였다.

【히로시마=AP/뉴시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위령탑에 헌화한 후 아베 신조 총리와 원폭 생존자 및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2016.05.27

【히로시마=AP/뉴시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위령탑에 헌화한 후 아베 신조 총리와 원폭 생존자 및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설하고 있다. 2016.05.27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아베 총리 또한 입을 굳게 다물고 엄숙한 표정을 보였다.

 양국 정상은 아치 모양의 위령비 앞에 나란히 섰다. 흰색 꽃으로 장식된 화환을 받아든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걸어나가 위령비에 헌화한 후 자리로 돌아와 잠시 눈을 감고 묵념을 올렸다. 그 후 아베 총리도 헌화한 후 목례를 한 후 잠시 묵념을 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의 소감 발표가 시작됐다. 당초 몇분 간 짧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 오바마 대통령의 소감 발표는 20분 넘게 이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졌다"는 첫 마디로, 원폭이 투하된 71년 전 1945년 8월6일로 시곗바늘을 돌렸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 곳 히로시마에 왜 왔을까"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에 벌어진 끔찍한 힘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우리는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라고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이어갔다.

【히로시마=AP/뉴시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원폭 생존자 모리 시게아키씨를 포옹하고 있다. 2016.05.27

【히로시마=AP/뉴시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원폭 생존자 모리 시게아키씨를 포옹하고 있다. 2016.05.27

 오바마는 특히 히로시마에서 "수 만명의 남자,여자, 어린이들이 죽었고 수 천명이 한국인과 수백명의 미국인들도 죽었다"며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에는 일본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포함돼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영혼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고, 우리가 누구인지 자세히 보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또  "버섯구름은 우리에게 인류의 모순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더 나은 이상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얼마나 폭력을 정당화 시키고 있는가"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단상 앞쪽에 마련된 좌석에는 고령의 피폭자들을 포함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장 등 100여명의 청중이 자리했다.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머리가 벗겨진 고령의 피폭자들은 자리에 앉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귀기울여 들었다. 분위기는 진지했다. 그들은 연설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감상에 젖기도 했으며, 어떤 여성 청중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인류 제도의 진보 없는 기술의 발달은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다. 원자를 쪼갤 수 있는 과학의 혁명에는 도덕적 혁명도 수반되야 한다"고 오바마는 말했다. "과학의 새로운 발견은 더 효과적인 살상 무기로 둔갑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우리가 이 자리에 온 이유다. 우리는 이 도시 한 복판에 서서 폭탄이 떨어지던 순간을 상상해 본다" "단순한 말 몇마디로 그러한 고통을 설명할 수는 없다"며 희생자들의 고통에 대해 상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몇년에 걸쳐 이어진 전쟁 기간 중 6천만명이 죽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남성,여성, 그리고 아이들이 총에 맞아 죽고, 그냥 맞아죽고, 또 폭탄과 가스에 목숨을 잃었다"면서 그는 2차 대전의 비극에 대해 언급하면서  "언젠가 우리는 (피폭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억은 결코 희미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 기억은 우리의 상상력의 원동력이 되며, 우리를 바꿀 것이다"라고 말했다.

【히로시마=AP/뉴시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원폭 생존자와 만나고 있다. 2016.05.27

【히로시마=AP/뉴시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원폭 생존자와 만나고 있다. 2016.05.27

 또 "미국과 일본은 동맹관계 뿐 아니라 우정을 구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전쟁 당시 적대국에서 현재 동맹관계로 전환한 미일 양국 관계의 과시도 잊지 않았다.또  "우리는 한 인류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배울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으며, 우리 아이들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희생된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을 끝내는 과학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향상시킬 과학의 발전을 원한다"라며 더 이상 전쟁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예상대로,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미국은 당시 일본의 원폭 투하로 2차 대전을 조기 종식시킬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후 아베 총리가 단상에 올랐다. 그는 히로시마를 찾은 아베 총리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라며 핵무기 없는 세계의 실현을 위해 양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미국 대통령이 피폭의 실상과 핵무기 없는 세계로의 결의를 다지는 것은 '핵 없는 세계'를 믿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희망을 줬다"라며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행을 평가했다.

 그는 이어 "히로시마 시민뿐 아니라 모든 일본 국민이 기다리던 역사적인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미 일 양국의 화해, 신뢰와 우정의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오바마의 결단과 용기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히로시마=AP/뉴시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원폭 돔 앞에 서서 아베 신조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2016.05.27

【히로시마=AP/뉴시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원폭 돔 앞에 서서 아베 신조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2016.05.27

 그리고 아베 총리는 "71년 전 이 땅에서 상상을 초월한 비참한 경험을 한 분들의 생각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울 것이다"라면서 "세계 어디에서도 다시는 이런 참혹한 경험을 결코 반복하지 않도록. 이 뼈아픈 심정을 제대로 이어가는 것이 지금을 사는 우리의 책임이다"고 밝혔다. 또 "미국과 일본은 (핵 없는 세상을 원하는)사람들의 희망의 빛이 될 것"이라며 미일 동맹을 과시하기도 했다.

 양국 정상의 소감 발표 후, 오바마 대통령은 청중석에 앉아 그의 연설을 경청한 피폭자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고 통역관을 동반해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 자리에 참석한 피폭자들은 최소 3명으로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체)의 대표위원인 쓰보이 스나오(坪井直, 91)와 이와사 미키소(岩佐幹三, 87), 그리고 사무국장 다나카 데루미(田中熙巳,84) 등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도 피폭자들과 악수를 나눈 후 오바마 대통령을 안내해 위령비 앞 연설장을 빠져나갔다. 연설장을 빠져나가는 중간 중간 오바마 대통령은 다른 청중들과도 짧은 악수를 나눴다.

 소감 발표를 마친 양국 정상의 표정은 평화공원에 도착해 위령비로 향할 때 표정 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으며, 걸어가는 중간 중간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그 후 오바마 대통령은 평화공원을 잠시 둘러본 후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는 찾지 않은 채 자동차로 평화공원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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