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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단_내_성폭력'은 진행 중…문예지의 고발들

등록 2016.12.25 17: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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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문예중앙 겨울호

【서울=뉴시스】박정규 기자 = 올해 문학계에 큰 상처를 남겼던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부 문예지에서 특별좌담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가 하면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작가들의 창작글을 통해 성폭력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계간지 '문예중앙'은 최근 내놓은 겨울호를 통해 '#여성혐오_창작'이라는 특집을 기획했다. 당초 여성혐오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렸던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이미 기획이 이뤄졌지만 이번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제기되면서 이를 포괄하는 특집이 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작가들이 창작한 글들로 채워진 특집의 상당 부분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들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글에는 이미 작고한 한 문인을 접하면서 느낀 경험 등도 실명과 함께 거론됐다. 천희란 소설가가 쓴 '이것은 저의 실패의 기록입니다'는 습작생이던 때 지금은 고인이 된 박모 시인을 만난 당시, 자신의 손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는 경험담이 담겨 있다.

 "저는 아직도 만취한 그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뜬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그가 떠난 후 제가 길고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던 그 순간, 일행 중 한 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 어떤 사람인지 알지? 그러니까 네가 조심해.' 그 말을 한 사람은 남성 문인이었습니다."

 천 작가는 이어 이 같은 성폭력을 묵인하는 문단 내의 분위기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여성혐오를 발언한 수준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자조차 문단은 배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라며 "모두가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그와 술잔을 주고받았습니다. 누군가는 그가 자신을 비판한 여성을 향한 모욕적인 언어를 시로 발표할 수 있도록 그에게 지면을 주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체험을 바탕으로 성폭력의 현실을 고발하는 글들은 이어진다.

 이성미 시인은 '참고문헌 없음'이라는 글을 통해 '나는 아동 성폭력 생존자이다',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처음 말한 것은 삼십 년이 지난 후였다'라는 전제와 함께 8살 당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상흔을 서술한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전율한다. 내가 당한 일보다, 그것만 발화에서 삭제했다는 것이 더 기괴하다. 여덟 살 여자아이는 어떻게 그 일의 의미도 모르면서, 말하면 안 된다고 또는 말할 수 없다고 여겼을까. 여덟 살 여자아이는 모르는 일에 대한 자기 검열을 어디서 어떻게 습득했을까."

 유진목 시인은 '혐오사전'에서 "이 사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인물과 사건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과 일치합니다"라고 글을 열었다.

 유 시인은 "당신은 나의 시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를 읽고 그 형식을 차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시 '바람 분다'에서 단어들을 조금 바꾼 뒤 당신의 첫 시집에 수록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시 '사이프러스 반 고흐'에서 세 행에 해당하는 구절을 가져가 당신의 '고흐'와 관련된 시에 사용했습니다"라며 익명의 '당신'을 고발한다.

 특히 "당신은 나에게 온갖 쌍욕이 담긴 음성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당신은 나를 집요하게 스토킹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도망쳐도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의 인생이 혐오스러웠습니다"라며 피해자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앞서 계간지 '문학동네'도 '어떻게 할 것인가-문단 내 성폭력과 한국의 남성성'이라는 특별좌담을 통해 문단 내 성폭력 문제와 여성혐오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좌담에서 강지희 문학동네 편집위원은 "(소속이 불분명한 비평가로 활동하던)이십대 내내 심각하진 않더라도 불쾌한 추근거림에 시달려야 했다"며 "그런데 서른이 되면서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이 되고 나니, 그 모든 추근거림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정세랑 소설가도 "편집자로 일할 때 업무에 방해가 될 만큼 자주 겪어야 했던 불쾌한 경험들이, 작가로 데뷔하고 문학상을 받으니 뚝 끊기더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예중앙의 박성근 편집장은 이번 여성혐오 특집의 기획 의도에 대해 "문단 내 문제는 문학의 언어와 형식으로 담아내는 게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고 그게 여성혐오를 르포가 아닌 창작글로 풀어낸 이유"라며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 드러난 상황들이 포괄적으로 뭉뚱그려져 담겨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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