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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행복한 나라 부탄 흡연자들의 불행과 송전탑

등록 2013.06.05 08:01:00수정 2016.12.28 07: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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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장지승 기자 = UN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인 마가렛 세카기야가 3일 울산 북구 명촌동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철탑농성장에서 실태조사를 벌인 뒤 현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마가렛 세카기야 특별보고관은 1시간 가량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과 간담회를 가졌으며 7일께 조사 결과와 권고 사항을 발표할 예정이다.  jjs@newsis.com

【울산=뉴시스】장지승 기자 = UN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인 마가렛 세카기야가 3일 울산 북구 명촌동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철탑농성장에서 실태조사를 벌인 뒤 현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마가렛 세카기야 특별보고관은 1시간 가량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과 간담회를 가졌으며 7일께 조사 결과와 권고 사항을 발표할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 이야기’ <8>

 지난해 1월 11일 ‘담배사업 금지’를 위한 헌법소원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담배제조 및 매매금지추진운동본부는 지난 4월 25일 ‘담배사업법 위헌 토론회’를 열고 현행 담배사업법이 위헌법률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석연 변호사(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전 법제처장)는 “현행 담배사업법은 헌법 제36조 제3항의 보건권,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 헌법 제10조 및 제12조 제1항의 생명권, 헌법 제34조 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법률”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적극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지키는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명승권 운동본부 사무총장(국립암센터 암정보교육과장)은 ‘담배제조 및 매매금지를 위한 국내 및 국제 동향’이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세계 최초로 담배제조와 매매를 금지한 부탄왕국 등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담배제조와 매매금지 법안을 채택해 담배와의 싸움을 종결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4년 12월 17일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부탄왕국은 전 국토의 금연을 시행, 세계 최초의 금연국가가 됐다. 그러나 조사해 보면 그렇지 않다. 내국인의 담배 제조와 판매가 금지된 것뿐이지 흡연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에 한해 입국 시 담배를 10갑까지 가지고 들어갈 수 있으나 담뱃값의 200%에 해당하는 세금을 물어야 한다. 외국에서 담배를 사서 들어가면 피울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내국인 가운데 흡연자들은 비싼 관세를 물고 외국에서 개인적으로 담배를 구해 와야 한다. 사실상 금연조치는 가난한 대다수 흡연자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으며 피기 위해선 밀수라도 감행해야 했다.

 2011년 부탄정부는 관세를 신고 안 한 불법 담배를 적발하기 위해 가정집을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 부여했다. 경찰이 요구하면 흡연자는 세관에 담배 수입을 신고했음을 입증할 서류를 보여줘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하 두 달 치가 넘는 벌금이나 심하게는 5년 이하의 징역형도 선고받게 된다. 지난해 10월 19일 부탄 지방법원은 수도 팀부에서 인도의 씹는 담배 3800그램, 궐련 담배 4000갑을 밀수해 판매하려는 혐의로 구속된 33살의 부탄 여성에게 3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부탄 마약 단속국은 담배 판매, 운송, 배포 등이 불법임을 강조했지만,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담배와 관련된 32건의 사건이 발생하고 45명이 구속됐다.

 수십 명이 감옥에 가게 되자 이 법에 반대하는 캠페인까지 열렸다. 금연 조치들이 ‘행복보다 오히려 슬픔을 불러왔다’는 원망과 함께 흡연도 한다는 소문이 있는 현 국왕에게 쏠렸다. 참여자들은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아들에게 왕위를 양위한 전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전 국왕(현 국왕의 아버지) 또한 흡연자이기에 돈 없는 국민의 고통을 이해해 주기를 희망했다. 올해 초 총리실 대변인은 법안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총리가 법안 탓에 국민이 겪은 고통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약으로 분류되는 담배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흡연자들에게 기쁜 소식은 전달될 것 같지 않다. 실제로 한국 내 부탄문화원을 추진하고 있는 출팀놀부(재미교포, 한국명 이임재)에 의하면 아직 변한 것은 없으며 쉽게 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한다.

 국민의 97%가 행복하다는 나라 부탄 정부는 금연을 위한 조치가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이하 GNH) 원리에 맞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 건강에 백해무익한 담배를 마약으로 취급해 소수 흡연자보다는 이들에게 간접적으로 피해받을 수 있는 더 많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소수가 조금 불행하더라도 국민 다수가 아니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2011년 7월 열린 유엔총회에서 궁극적인 인간의 목표로서 물질적인 부를 숫자로 표현하는 국민총생산(GNP), 국내총생산(GDP) 대신 국민총행복(GNH)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은 제66회 총회 기간 중 행복과 복지를 주제로 한 토론 패널로 부탄을 초청했다. 부탄은 2010년 유럽신경제재단(NEF)이 조사한 나라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국민 100명 가운데 무려 97명이 ‘나는 행복하다’고 답할 정도다. 하지만 당시 부탄의 1인당 1년 국민소득은 1200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밀양=뉴시스】안지율 기자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대표단 10여 명은 29일 오전 경남 밀양시 가곡동 한국전력 밀양지사 앞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전력이 재개한 송전탑 공사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다.  alk9935@newsis.com

【밀양=뉴시스】안지율 기자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대표단 10여 명은 29일 오전 경남 밀양시 가곡동 한국전력 밀양지사 앞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전력이 재개한 송전탑 공사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GNH는 1976년 부탄 제4대 국왕 즉 전왕으로 도입된 개념으로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야말로 국민의 행복을 가져오는 진정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왕도 정년이 있는 나라 부탄 정부의 행복에 대한 가치관은 담배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해서도 강력하다. 국토 60%를 산림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헌법 명시로 인도가 아무리 나무수출을 요구해도 절대로 팔지 않는다.

 살충제·제초제 금지 등 세계 최초 유기농 국가 계획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도 부탄이다. 페마 기암초 농림업 장관은 지난해 2월 2일 인도 델리에서 열린 연례 지속가능 개발 콘퍼런스에서 “부탄은 대부분 산악지대라 화학제품을 사용하면 물과 식물에 영향을 미치므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는 불교를 신봉하는 나라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한다. 동물도 살 권리가 있고 식물과 곤충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아울러 “당장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2020년까지는 100% 유기농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산림 등 자연환경보호가 철저한 이 나라에서는 국가의 허락 없이는 전봇대 하나 세울 수 없다. 모든 국민이 자연과 동화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발판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행복의 날’은 우리나라가 처음 맞는 날이기도 하다. 경제규모 세계 15위권,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한국의 행복지수는 유엔 조사에서도 156개국 중 56위에 머물렀다. 반면, 자살률 1위에 이혼율도 늘 상위권이다. ‘불행’ 지수는 세계 최고다. 이런 우리나라에 마거릿 세카기야 UN 인권 특별보고관이 울산시 현대차 비정규직 송전탑 농성장을 찾아 230일째 고공 농성 중인 최병승·천의봉 씨와 전화 면담을 마친 후 곧이어 한국전력과 주민이 마찰을 빚고 있는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을 돌아봤다.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에는 주민의 동의 없이는 세울 수 없는 송전탑이 언제부터인가 국민이 스스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한 나라 우리나라 인권의 상징물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조금 부족해도 모든 국민이 행복해야 한다는 부탄의 지혜를 배울 차례다. 지난달 부탄 농구 국가대표팀이 ‘국민스포츠’ 축구조차 달성하지 못한, 구기 종목 역사상 첫 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 승리를 일궈낸 한국인 김기용 감독은 “길을 가다 모르는 사람을 보면 차도 태워주고, 집까지 데려가 음식 대접하는 부탄 국민을 보면서 내 마음도 순수해졌다. 욕심도 없어졌다. 생각해보면 부탄의 농구 수준이 단기간에 성장한 건 욕심 없이 농구를 대하는 그들의 순수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그 말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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