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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6·25 초기 춘천전투 심일 소령 공적' 사실로 결론

등록 2017.01.24 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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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북한이 수소탄 핵실험을 실시해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 걸려있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2016.01.06.  taehoonlim@newsis.com

군사연구소 "공적위원회 검증 절차 편파" 문제 제기…논란 확산
 공청회 도중 반론권 보장 두고 마찰도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국방부가 6·25전쟁 초기 벌어진 춘천 전투에서 세운 공적으로 고(故) 심일 소령이 받은 태극무공훈장은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심 소령의 공적이 조작된 허위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국방부가 논란을 성급히 잠재우려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방부 '고 심일 소령 공적확인위원회'는 24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지난해 6월 일부 언론이 제기한 심 소령의 공적은 만들어진 신화라는 취지의 보도는 공식문서 등을 통해 검증한 결과 사실과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6월 한 언론은 이대용 예비역 준장의 주장을 인용해 6·25전쟁 당시 삼일 중위가 육탄돌격으로 북한군 자주포의 공격을 막은 것은 허위라고 보도한 바 있다. 뿐만아니라 심일 중위는 아군의 대전차포 1문을 북한군에게 넘겨주고 도망갔다고도 했다.

 심일 중위의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선의로 공적을 조작해 훈장을 올렸고, 조작된 훈장 상신서가 정훈자료로 사용되면서 거짓 신화가 탄생했다는 것이 이 준장의 주장의 요지다.

 이는 '육탄 5용사' 가운데 1명으로 한 때 교과서에 '한국전쟁의 영웅'이라 소개된 부분에 정면 배치하는 내용으로 당시 진위 여부를 두고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

 이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이하 군편)는 이 준장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만들어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에 보고했다. 또 육군군사연구소(이하 군연)에 군편이 작성한 결과를 언론을 통해 브리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군연은 일방적으로 군편이 작성한 내용을 국방부를 대신해 발표한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 자체적으로 확인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언론 인터뷰 내용이 사실과 부합한 측면이 많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같은 사안을 놓고 군편과 군연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니, 국방부는 이를 검증하기 위한 위원회 구성을  지시했다. 국방부쪽 전문가 3명, 육군쪽 전문가 3명에 위원장 추천의 1명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공적확인위원회를 꾸렸다.

 공적위는 이후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총 8회에 걸쳐 회의를 열고 수집 자료 등을 바탕으로 검증을 벌였다. 그 결과 심일 소령의 공적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육탄5용사'의 경우 사실을 과장 혹은 미화한 측면이 판단되지만 심일 소령의 공적 전체를 부인하기에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공적위의 판단이다.

 공적위는 "피아 공식문서 자료를 통해 6·25 옥산포 전투 당시 적 자주포 2~3대가 파괴됐다는 사실은 확인됐고, 이 전투에서 적 자주포 파괴 주체는 심일 중위가 지휘하는 소대로 추정된다"며 “이를 통해 심일 중위의 공적을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추후 심일의 보직해임 여부는 확인할 수 없고, 보직해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또 특공조의 존재 여부는 단정을 보류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군연은 심일 소령의 공적의 적정성 여부는 지속적인 연구와 자료발굴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며 공적위의 결론은 성급하다고 반발했다.

 '심일 신화'를 증언한 과거 증언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부족했고, 공청회를 통해 밀어붙이기식으로 심일 소령의 공적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군연의 주장이다. 아울러 공적위의 검증기준이 계속해서 바뀌었고, 엄정한 사료비판과 문헌고증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절차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군연 측이 공개적으로 반론권 보장을 요구했지만 공적위는 이를 막았고, 항의가 거세지자 질의 응답 시간 일부를 활용해 반론 기회를 제공하는 등 진행에 일부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편 심일 소령은 1950년 6월25일 옥산포 전투에서 대전차포를 이끌고 남하하는 북한군 SU-76 자주포에 대항하기 위해  5명의 특공대를 편성, 수류탄과 휘발유를 넣은 사이다병만으로 자주포 2대를 파괴했다. 이후 이같은 공적은 미국 은성훈장 추천서와 태극무공훈장 공적서를 통해 확인됐다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대용 예비역 준장이 심일은 육탄돌격이 아니라 도망을 갔다고 주장을 하면서 공적의 진위 여부 논란이 일었다. 이에 군연은 자체 조사 결과 옥산포 전투에 투입된 자주포는 포탑이 없어 해치를 열고 수류탄을 집어 넣어 파괴했다는 내용은 허위라며 국방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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