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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유작으로 연출 데뷔한 손원정 "그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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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3-21 10: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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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연극 '맨 끝줄 소년' 리메이크한 연출가 손원정이 1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03.21.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2015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국내 초연한 연극 '맨 끝줄 소년'은 '두터운 연극 미학'을 선보인 수작이었다. 후안 마요르가(52)의 텍스트를 극단 코끼리만보의 김동현(1965~2016) 연출이 무대로 옮겼는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품었다.

 작가의 꿈을 품고 있던 문학 교사 '헤르만'이 작문 과제를 채점하던 중 항상 조용히 '맨 끝줄'에 앉는 소년 '클라우디오'의 과제물에서 희망을 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진짜와 가짜, 현실과 가상으로 채워진 무대처럼 내용 역시 혼재된다. 약 1년5개월 만인 오는 4월 4일부터 30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다시 선보인다.  

 전도유망한 김동현 연출은 뇌종양 투병 끝에 쉰을 갓 넘긴 나이로 지난해 2월 세상과 작별을 고했지만, 이번 '맨 끝줄 소년'의 연출자는 여전히 그다.

 예술의전당은 여기에 '리메이크 연출'로 힘을 실었다.  연극 '디 오써' '썬샤인의 전사들' 등 화제작들의 드라마터그이자 연극평론가인 손원정(43)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김 연출의 아내다. 남편의 유작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한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손 연출은 "연출은 생각한 적도 없어요. 연습 들어가기 전까지 많이 긴장을 했죠"라고 말했다.

 연출을 생각지도 않았던 손 연출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초연 때부터 남편과 함께 깊숙하게 작품을 만드는데 참여해온 드라마터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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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연극 '맨 끝줄 소년' 리메이크한 연출가 손원정이 1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03.21.  mangusta@newsis.com
 극작을 연구하는 비평가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는 드라마터그는 조건, 상황에 따라 작품에 참여하는 비중이 상당히 다르다. 제작부터 공연 후 평가 등 전방위로 활약할 수 있지만 연출가와의 신뢰, 호흡에 따라 그 역할 비중이 정해진다. 김 연출과 손 연출은 부부이자 연극 동반자로서 서로 믿고 의지했다. 두 사람의 차진 호흡은 연극계에서 이미 유명하다.

 "김동현 연출이라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상상했을까 고민해요. 한편으로는 초연 때 작업을 계속 기억하죠. 그러면서 그 좋았던 작품을 어떻게 하면 더 섬세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연출이었다면 생소했을 텐데, '맨 끝줄 소년'이라 연출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김 연출이 작품을 이미 잘 만들어놓았지만 그대로 옮기는 건 아니다. "개념적으로 더 단련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 때 미처 보지 못한 텍스트,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서 배우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죠."

 김 연출은 마요르가를 국내에 알린 주인공이다. 2009년 '다윈의 거북이'로 그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영원한 평화'(2012), '천국으로 가는 길'(2014) 등 호평 받은 작품으로 마요르가 진가를 증명했다. 마요르가는 연극으로 해답을 내놓기 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손 연출은 "마요르가는 겉으로만 보면 쉬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하지만 무대에 옮기다 보면 어느 하나 쉽게 넘길 수 없는 작가죠"라며 "연극적인 언어를 통해서 이 시대에 대한 질문을 하는데 생각하는 재미, 즉 사유의 즐거움을 주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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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연극 '맨 끝줄 소년' 리메이크한 연출가 손원정이 1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03.21.  mangusta@newsis.com
 '맨 끝줄 소년'은 빽빽한 밀도감으로 연극인들에게 인기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를 잘 활용한 작품으로도 평가 받았다. 테이블 네개와 의자 몇 개의 미니멀함, 메인 무대의 뒤편인 투명막으로 쳐진 또 다른 무대는 영화적인 희곡의 공간감을 무대 위로 연극적으로 구현해냈다.  

 역시 초연 때부터 무대 공간에 대한 고민을 김 연출과 함께 했던 손 연출은 "'맨 끝줄 소년'은 허구와 현실, 현재와 상상, 안과 밖, 외부자와 내부자 등 경계에 대한 관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내용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안과 밖이 언제든 나눠지고 겹쳐질 수 있게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맨 끝줄 소년'으로 상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전해드리고 싶어요. 허구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서 느끼는 희열, 기쁨, 위험함이 잘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김 연출이 2007년 창단한 코끼리만보는, 코끼리처럼 묵묵한 행보를 이어 온 극단이다. '생각나는 사람' '먼 데서 오는 여자' 등 묵직한 여운을 안기는 작품들로 공연목록을 채워왔다.

 김 연출이 세상을 뜬 지난해에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연출을 잃은 슬픔이 컸다. 올해 말 에는 김동현을 기억하는 코끼리만보 연작(12월 5~25일 두산아트센터)을 준비하고 있다. 이 극단의 기존 대표작과 김 연출과 '하얀 앵두' '벌' '먼 데서 오는 여자' 찰떡궁합의 호흡을 과시한 배삼식 작가의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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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연극 '맨 끝줄 소년' 리메이크한 연출가 손원정이 1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03.21.  mangusta@newsis.com
 손 연출은 "단원들과 너무 서두르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어요"라고 했다. "다음 달 워크숍을 하고 대본을 구성하기 시작할 텐데, 김동현 연출이 마요르가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굉장히 애착을 가진 또 다른 작업 중 하나가 공동창작이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극단 내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낯이 익은 듯하지만 새로운 작업을 통해 김동현 연출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맨 끝줄 소년'의 재공연 역시 김 연출을 기억하는 의미도 지닌다. 손 연출을 비롯해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 헤르만 역의 박윤희 등 초연을 함께 했던 배우와 스태프들이 뜻을 모아 재공연에 참여하고 고인과 든든한 호흡을 자랑했던 우미화가 헤르만 교사의 부인이자 큐레이터 '후아나' 역으로 새로 합류했다.

 손 연출이 첫 연출에 도전할 수 있게 또 다른 용기를 준 이들이다. 본래 영문학을 전공하다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사무엘 베케트로 인해 방향을 튼 손 연출은 "문학 공부를 했을 때는 외로웠는데 연극 쪽으로 오니 위로가 찾아오더라"고 말했다. "제가 내성적이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연극은 근데 그 공간 안에서 위로를 주더라고요."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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