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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가상화폐와의 전쟁'과 법무장관의 아마추어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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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1-17 14: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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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가상화폐 열풍을 둘러싼 숱한 보도를 접하며 기자 역시 묘한 열패감을 가지고 있던 게 사실이다. 몇다리 건너 지인의 또 다른 지인이 비트코인으로 수억원을 벌었다더라는 식의 소문은 종종 술자리 안주가 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비트코인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18년을 살아가는 흙수저들에게 가상화폐는 로또보다 현실적이지만, 러시안 룰렛보다 위험한 '판타지'가 아닐까 싶다. 한탕을 노리고 비트코인에 삶을 저당 잡힌 2030들이 이 나라에 넘쳐난다.

 그런데 지난 11일 법무부 장관 간담회에서 '폭탄발언'이 나왔다. "가상화폐 거래는 투자가 아닌 도박이다. 가상화폐 거래소폐지 등을 추진하겠다"는 박상기 장관의 발언이었다.

 당시 박 장관은 간담회에 앞서 가상화폐에 대한 답변을 그리 중요하게 준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상화폐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이 질문을 그만 받겠다. 다른 질문을 해달라"거나, "이 기자회견은 가상화폐가 주제가 아니다"라며 곤혹스러움까지 내비쳤다.

 이런 표정과 달리 발언 수위는 메가톤급이었다. 이날 기자들은 검찰 개혁, 공수처 신설 등 산적한 법무부 현안을 뒤로 한 채 이 소식을 급히 타전했고, 가상화폐 시장은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였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에 대한 투기 열풍, 아니 광풍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가상화폐 투기가 이 사회에 독버섯처럼 자리 잡을 게 뻔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적절한 규제를 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 이유없이 수백 %까지 오르고 내리는 거대한 도박판이 번지는 것을 어느 정부가 보고만 있을까.

 그러나 투기 광풍을 잠재우려면 보다 정교한 정책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당연하다. 시장에 갑자기 충격과 공포를 주는 방법으로는 혼란과 상실감, 강한 반발만 키울 뿐이다. 실제 박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는 폭탄을 던지고, 불과 몇시간이 지나 청와대는 "결정된 것이 없다"며 선을 긋는 촌극이 연출됐다.

 그리고 1주일 동안 법무부를 비롯한 정부는 제각각 신중론과 강도높은 규제론을 번갈아 내놓으며 혼란을 자초했다.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결국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조치는 정부가 내놓을수 있는 규제 방안 중 하나이고, '검토 중'인 사안으로 정리가 되는 분위기다. 간담회에서 박 장관은 "다른 부처와 협의가 끝난 상태"라며 확정적 발언을 했었지만, 현재 법무부는 "조율 중인 상태다"라는 말로 입장을 선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의 입은 대단히 무겁고 신중해야한다.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 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 한마디로 인해 누군가가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가상화폐의 폐해에 대한 정부의 우려에 깊이 공감한다. 규제도 필요하다. 다만 '입은 무겁게, 행동은 빠르게 하라'는 격언을 이 시점에 되새겨 보는 게 좋을 듯하다.

 pyo0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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