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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더블데이트] 창극 '소녀가' 이자람·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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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2-19 09: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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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소연·이자람, 국립창극단 창극 '소녀가'. 2018.02.19.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여성 예술가 앞에 여성이라는 수식을 굳이 붙여야 하는 한국 예술계에서 '젊은 거장' 소리꾼 이자람(39)은 외로운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예술세계가 분명한 그의 독자적인 작품 앞에 그런 꼬리표는 하릴없었고, 예술적 동지는 쌓여갔다.  

이자람이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과 손잡고 선보이는 새로운 형식의 창극 '소녀가'는 그의 예술가 이력에 새로운 눈대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8일부터 3월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지는 국립창극단 '신(新)창극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소리꾼이자 배우, 인디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보컬로도 활약 중인 이자람은 지난해 고선웅 연출의 '흥보씨' 음악감독으로 국립창극단과 처음 만났고, 올해 창극 첫 연출에 도전한다.

연출·극본·작창·작곡·음악감독까지 1인 5역을 맡아, 프랑스 구전동화 '빨간 망토'(Le Petit Chaperon rouge)를 현대적인 창극으로 각색해낸 '소녀가'를 선보인다.

이자람이 택한 소녀는 국립창극단 단원인 이소연(34)이다. 국립창극단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트로이의 여인들'과 뮤지컬 '아리랑' '서편제'를 통해 공연계에 존재감을 뚜렷하게 새긴 소리꾼이다. 세 명의 연주자(고경천·이준형·김정민)가 무대에 오르는 이 극에서 그녀는 유일한 배우다. 모노드라마 형식의 창극이다.

원전으로 삼은 '빨간 망토'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샤를 페로가 엮은 책 버전(1697)이 아니다. 이후 100년이 지나, 사냥꾼이 등장해 할머니와 빨간 망토를 구하는 독일의 그림 형제의 순화된 버전도 아니다.

이자람이 우연히 읽은 장 자크 프디다의 '빨간 망토 혹은 양철캔을 쓴 소녀'(디디에 죄네스 2010)가 근간이 됐다. 이 책에서 소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막아서는 일종의 사회적 금기를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호기심 많은 소녀가 숲 속에 들어갔다가 위기에서 기지를 발휘해 슬기롭게 빠져나오는 이야기. 소녀가 여자로 성장하면서 겪는 경험을 은유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사회적 편견을 깨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예술가들인 이자람과 이소연을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우리사회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며 겪는 신체와 심리 변화가 함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경쾌하게 찾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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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자람, 국립창극단 창극 '소녀가'. 2018.02.19.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더뮤지컬 편집장을 지낸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이자람의 작품들에 대해 '사천가' '억척가'는 자본주의 사회, 좁게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비판적인 시선을 토대로 했다. '추물/살인'은 창작자의 시선이 개인의 내면으로 향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외모지상주의라든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과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녀가'의 주인공은 보다 근원적인 시점, 소녀가 터부시되는 일종의 사회적 규율을 깨고 성장하게 되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원형을 건드린다"고 봤다.
 
Q. '빨간망토'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중에서도 장 자크 프디다의 버전을 택한 까닭은?

A. "기존에 알고 있던 '빨간망토'는 빨간망토를 입은 소녀가 무서운 늑대를 만나서, 죽을 뻔 했다가 살거나 혹은 죽거나 하는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근데 프디다 버전은 시선이 달랐다. 남성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소녀가 자신의 '철옷'을 부수고, 늑대를 만났을 때도 '플레이'(놀이)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두려움에 떨어진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서 '놀아줄게'라는 욕망 하나로 모든 상황을 관장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주도권이 소녀에게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이자람)

Q. 이자람 본인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나? 밖에서 남들이 봤을 때는 그렇다.

A. "제가 저를 만날 때는 과히 초라하다(웃음). 그런 상황에서 프디다의 '빨간망토'에서 소녀가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가져가는 이야기를 봤을 때 두렵고, 담고 싶고 그랬다. '사천가' 때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에 신경 썼다. 그 때는 착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억척가'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했고, '추물/살인'은 기술을 연마하는 바깥에서 실험이었다. '이방인의 노래'는 관객에게 의무감이나 위로를 주겠다는 오만 같은 것을 부수기 시작할 때였다. '소녀가'는 '그런 성공가도에 있던 이자람이'(일반 대화 톤이 아닌 판소리 톤으로) 원하는 대로 살아왔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웃음)."(이자람)

Q. 소연 씨는 '빨간망토'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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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소연, 국립창극단 창극 '소녀가'. 2018.02.19.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A. "다른 극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이렇게도 살고 싶다는 부러움이 들었다. 다른 삶을 사는 것이 배우로서 재미니까. 아울러 이자람 씨의 심리를 간파하고 싶었고 그녀와 이 빨간망토 소녀 이야기에 공감하고 싶었다. 처음 하는 경험이고 재미있을 거 같았다."(이소연)

Q. 1인극인데, 역시 혼자서 다양한 역을 맡아야 하는 판소리와는 무엇이 다른가?

A. "판소리를 할 때는 심봉사, 심청이를 맡다가 다시 소리꾼, 즉 이야기꾼으로 돌아가는 과정인데 이번 '소녀가'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이소연)

Q. '소녀가'는 국립창극단의 신창극 시리즈의 포문을 여는 작품인데, 기존의 작품과 많이 다른가?

A. "기존 창극과 많이 다르다. 특히 작창이 색다르고 신선하다. 그런데 악기와 소리꾼의 소리에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복 위에 코트와 색다른 드레스를 걸쳐 입은, 재질이 다른 음악을 더한 느낌이지만 훨씬 더 세련되게 느껴진다. '한복 위에 저런 걸 왜 걸쳐 입었어'라는 의문이 들지 않고, 한복의 고운 색채가 잘 드러난다."(이소연)

-이자람과 이소연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인간문화재 송순섭(82·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적벽가 보유자) 문하에서 함께 배웠다. 이소연이 먼저 송순섭을 사사했고, 이후 이자람이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였던 두 사람은 지난해 국립창극단 '흥보씨'(연출 고선웅)를 통해 처음 제대로 작업했다. 이자람이 음악감독을 맡았고, 이소연은 흥보 처를 연기했다. 지난해 뮤지컬 '서편제'에서는 송화 역을 번갈아 나눠 맡기도 했다. 2018년 2월 현재 두 사람은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누는 이가 상대방이라고 했다.

Q. 자람 씨는 직접 출연을 할 수도 있었다. 음악도 잘 나온 것으로 아는데 왜 소연 씨를 배우로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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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소연·이자람, 국립창극단 창극 '소녀가'. 2018.02.19.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A. "소연 씨가 '이렇게 음악을 만들어서 다른 소리꾼에게 주는 기분이 어떠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런 작업은 김소진, 이승희 씨에 이어 소연 씨가 세 번째다. 다만 기존에는 한 팀이었다면 이번에는 극장(국립창극단)의 배우와 고용된 작가의 관계였다. 무엇보다 소연 씨가 음악이 마음에 든다고 한 말이 기뻤다. '좋은 음악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어떠냐'는 물음을 받았을 때 너무 기뻤다. 음악이라는 것이 아낀다고 아껴지는 것도 아니고, 작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질문이 너무 기뻤고 고마웠다. 소연이를 택한 이유는 그녀가 도화지 같았기 때문이다. '흥보씨'를 했을 때 주어진 걸 해낼 수 있는 능력치가 충분했다. 김성녀 감독님이 신창극을 제안해주셨을 때 '제가 해온 연장선상으로 해도 되냐'고 여쭤봤는데 '괜찮다'고 해주셔서 '소연씨랑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소연 씨 목소리를 좋아한다. 흔히 말하는 '곱다' 이상의 무엇을 가지고 있다. 소리를 내뱉을 때 조심스럽게 그려나가는 라인이 곱다. 저에게는 없는 거다. 소연 씨랑 작업을 하면서 감각을 새롭게 찾아나가고 있다. 아주 좋은 시너지가 발생하고 있다."(이자람)

Q. 소연 씨는 존재감이 뚜렷한 이자람이라는 아티스트가 부담스럽지 않았나?

A. "솔직히 부담되는 존재다(웃음). 하지만 그녀가 궁금하니까 흔쾌히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혼자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는데, 이번 작업이 나중에 큰 영향을 끼칠 거 같다. 단체 안에 소속돼 있지만 혼자서 창작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주변의 권유가 있어서 제 안에서 끓는 무엇이 있었는데 그런 것을 해소할 수 있는 작업이다. 아울러 제가 하고자 하는 작업에 확신을 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이소연)

Q. '소녀가'에서 소녀의 사회적 금기를 깨는 성장담은 흔히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욕망에 대해 밝고 건강하게 그릴 것 같다는 예감도 든다. 

A.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늘지지 않은 성문화, 죽음에 대한 문화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 쉬쉬했다가 어두운 것들을 겪게 된다. 남성이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등의 수많은 혐오의 문제가 생기는 이유다. 이런 것들에 대해 처음부터 깨끗하게 잘 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의 동화들이 어린 친구들에게 죽음, 섹스, 이별, 배신, 상실, 이런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성장을 해서 그런 것을 겪었을 때 너무 큰 혼란을 겪게 되는 거지.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Black Mirror)'에 부모가 칩을 통해 어린이를 과잉보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아이들은 성장해서도 세상과 맞닥뜨리지 못한다. 이런 걸 부수고 싶다. '소녀가'의 소녀는 굉장히 자유롭게 궁금한 것을 발산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찾고 흥미를 느끼는 것에 열과 성을 다한다. 재미가 있어야 하고."(이자람)

Q.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등 최근 문화예술계에서 부는 여성 인권의 바람과 맥락을 같이 한다.

A. "의도한 건 아닌데 결이 다르지는 않다. 작품을 내놓을 때, 이것은 '세월호 관련 작품입니다'라고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도 있고, 만들어놓았을 때 세월호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작품도 있다. 누군가랑 친해지고 싶을 때 차(tea)를 사는 경우도 있고,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후자를 택했다."(이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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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소연·이자람, 국립창극단 창극 '소녀가'. 2018.02.19.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Q. '소녀가'는 소녀의 호기심과 욕망이 표현된 작품이다. 각자의 현재 욕망은 어떻게 표현해나가고 있는가?

A. "'싫은 것은 싫다'고 말을 하거나, '질투가 난다'고 하거나, '너무 좋다'고 말하거나 예전보다 제가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해 정확히 보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훈련 중이다. 전에는 '이자람 만나보니까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다수에게 듣고 싶어 했다면, 지금은 시원하게 거절을 당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이자람)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저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서 더 이해가 된다. 전혀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부러웠을 것이다. 이걸(소녀가)을 받아들이고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주체적으로 내 의지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거 같다."(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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