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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이명박, 증인들과 당당하게 법정 대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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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5-24 13:53:30  |  수정 2018-05-28 09: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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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현섭 기자 = 다스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77) 전 대통령은 지난 8일 법원에 증거인부서를 제출했다. 증거인부서란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를 인정하는지 입장을 담은 문서다.

여기서 그는 검찰이 제출한 모든 증거에 동의하고 입증 취지만 부인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소식이 알려진 후 이 전 대통령 속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향후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와 관련해 불리한 진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증인들의 법정 출석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예상은 맞았다. 지난 23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이 전 대통령 첫 공판에서 그는 증거동의를 결정한 배경의 중심에 '증인신문'이 있음을 스스로 알렸다.

 "그들을 법정에 불러 추궁하는 건 가족이나 본인에게 불이익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국정을 함께 이끈 사람들이 다투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참담한 일이다."             

 그는 이런 내용이 담긴 모두진술을 12분 간 진행했고, 남은 재판에선 법리 검토와 자료 공방만 이어질듯 보였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자신의 '집사'였던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정신과 치료내역 확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돌연 "한마디 좀"이라며 끼어들었다. 40년 지기인 김 전 기획관에 대해 "보호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곧 삼성 소송비 대납 혐의와 관련해 이학수 전 부회장이 청와대에 들어왔다고 한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조사 당시 진술을 반박했다.

 그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들어왔다면 모르겠지만, 이 전 부회장이 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검찰이 "피고인이 그렇게 말하면 저희도 의견을 말씀드리겠다"라며 설명하려 하자, 이 전 대통령은 "그만하겠다. 내가 지금 검찰하고 싸우겠단 것도 아니고"라며 입을 닫았다.

 자기 할 말만 한 뒤 치고 빠지는 전략을 쓴 셈이다. 이 덕에 이 전 대통령은 나름 얻은 것이 있다.  

 검찰의 진실 규명 수사에 적극 협조했던 김 전 기획관을 '정신이 온전치 않은 증인'으로 만들어버렸다. 동시에 '보호해주고 싶다'는 말을 함으로써 대인배 인상도 갖게 됐다.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들은 증인석에 앉지 못하게 하면서 자신은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 전 대통령의 모두진술을 복기해보자.

 "그들을 법정에 불러 추궁하는 건 가족이나 본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사실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일 뿐이다. 더구나 16개 혐의로 중형 선고 가능성이 있는 이 전 대통령이 남 걱정할 상황도 아니다.

 "국정을 함께 이끈 사람들이 다투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건 저 자신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참담한 일이다."
      
 이 대목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힘든 게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중요한 건 실체적 진실 규명이다. 대한민국은 서면심리주의가 아닌 공판중심주의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증인 신문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전 대통령은 모두진술 초반에 이런 말도 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진술을 거부하라고도 하고, 기소 후엔 재판도 거부하라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런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옳은 말이다. 공감도 간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증인들을 모두 불러 법정대면을 하는게 옳다. 결백하다면 그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반박하고 다퉈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국민 신뢰 회복을 기대하는 게 도리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더 이상 군색해지지 않길 바란다.

 af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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