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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방한으로 드러난 美 의도···속도조절에 고심 깊어진 文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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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1-01 06:51:00  |  수정 2018-11-05 09:35:32
임종석·윤건영 콕찍어 만난 비건··· 남북 속도 '견제' 메시지
한미 공조 강조해 온 靑 "더 긴밀한 소통 위해 워킹그룹 동의"
문정인 "모든 것이 인질로 잡혀···정부, 美입장 수용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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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8.10.29.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한 동선을 통해 미국의 의도가 뚜렷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애초부터 청와대 방문이 방한 목적이었다는 시각이 굳어지는 양상이다.

 비건 대표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등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지목해 만났다는 점에서 1차적으로는 '조건부 대북제재 완화론'을 펴고 있는 정부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 가능하다.

 특히 임 실장과 윤 실장 모두 대북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인물로, 최근 남북관계에 속도를 내려는 정부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대북제재 틀 속에서 추진 중인 북미 비핵화 협상 속도에 보조를 맞추라는 미국의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성격이 더 강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31일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건 대표가 어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기 전에 윤건영 상황실장을 면담했다"며 "미국 측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전날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면담을 했는데, 그에 앞서 윤 실장을 먼저 찾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북핵 외교담당자가 카운트파트가 아닌 직접 연관성이 더 적은 국정상황실장을 먼저 만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직책상 1~3차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총괄 실무 비서실이 국정상황실"이라며 "윤 실장은 비건 대표 입장에서 보면 만나야 할 청와대의 실무책임자로 보여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북특사단장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누구보다 깊이 관여했던 정 실장을 제쳐두고 특사단 일원이었던 윤 실장을 먼저 만난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관련 소식을 숨겨오다가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나자 뒤늦게 시인했다는 점에서 비건 대표와 윤 실장의 만남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청와대가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비건 대표의 방한 성과에 대한 미 국무부의 발표를 보면 이번 방한 목적이 공고한 대북제재 유지를 위한 미국의 입장을 주지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이 더욱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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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면담 모습. (사진=뉴시스DB). 2018.10.29.

 로버트 팔라디노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비건 대표의 방한 결과를 소개하면서 한미 간에 비핵화 노력과 제재이행, 유엔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 협력 사업에서 긴밀한 조율을 강화하기 위한 '워킹 그룹(실무협의체)'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미가 조금 더 긴밀한 소통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까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워킹 그룹이) 나온 것"이라며 "그에 대해서 우리 정부도 동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한미 간에 더욱 긴밀한 소통을 위해 새로운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표면적으로 밝혀왔던 한미공조로는 모자랐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역으로 미국 입장에서는 남북관계에 속도를 내려하는 우리 정부에 미국이 관여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러한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에 고민이 깊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문 대통령이 펴고 있는 '조건부 제재 완화론'에 미국이 제동을 건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철도 연결, 북한내 양묘장 현대화 등 남북간 경제협력 사업이 정작 본격적인 이행 단계에서 마주한 대북제재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남북이 10월에 진행하기로 합의했던 각종 행사와 회담이 줄줄이 연기되고 있는 것도 달갑지 않다.
 
 궁극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을 견인한다는 문 대통령의 '두 바퀴 평화론'도 미국의 동의 없이는 뜻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를 맡고 있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이날 코리아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남북한이 속도조절 하라', '북미 핵협상 속도에 맞춰라'라는 것인데 이것은 한국 정부가 수용하기 어렵다. 그러면 남북 관계가 깨진다"며 "모든 것이 인질로 잡힐 수 있어 우리 정부의 입장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kyustar@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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