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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는 '달콤한 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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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1-21 14: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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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경제성에 발목 잡혀선 안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한 지난 10일. 종종 가는 마포의 돼지껍데기집에서 마주 앉은 한 건설사 임원이 막걸리를 들이켜다 한마디를 내뱉었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가 '달콤한 독약'이라는 기자의 말에, 지역경제가 생각보다 심각해 뭐라도 해야 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그는 한마디를 보탰다. "기자들이 세상을 너무 삐딱하게만 본다"고. 그의 불평은 뜬금없이 기자에 대한 성토로 옮겨갔다.

술잔이 훌쩍 돌아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 말을 더 보태지 못한 게 아쉬워 다음날 신문을 펼쳐 훑어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우선순위에 따라 지역 공공인프라(SOC)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기자실에 널브러진 다른 신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이낙연 국무총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규모 국가 사업 예타 면제에 대해 운을 띄우더니 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방점을 찍은 모양새다. 예타 면제는 막을 수 없는 대세처럼 굳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엄격한 선정 기준을 세워 광역별로 1건 정도 공동 인프라 사업들의 우선순위를 정해 선정할 것"이라며 나름의 기준을 정했다. 이로써 전국에서 최소 17건의 대규모 사업이 예타 없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의 예타 면제 요청 사업은 38개, 사업비가 무려 70조46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찜찜하다. 엄격한 선정 기준이라는게 모호할뿐아니라, 이미 국민 혈세를 허공에 날리는 것을 막자는 취지의 예타 제도라는 기준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굳이 또 기준을 세우겠다는 말인가.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고가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을 대상으로 경제성 등을 따져 세금 낭비를 막겠다며 도입된 예타 제도의 취지도 무색해졌다.

물론 지역경제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건설로 체감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도 모르는 바 아니다. 무엇보다 국가 정책이 예타 조사로만 최종 결정되는 게 아니라 것도 안다. 지자체에서 지역의 특성과 국가균형발전을 예타 면제의 명목으로 내세운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국민은 이미 숱하게 경험했고, 기억도 또렷하다. 예타없이 강행된 4대강 사업으로 인한 국가재정손실 등 폐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뿐인가. 민자사업으로 추진돼 사업비를 국민 세금으로 보존해주는 전례도 차고 넘친다. 원칙을 간과한 반복된 악습(惡習)이다.

예타는 예산낭비를 막기 위한 유일한 검증 장치다.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예타를 반드시 거친 뒤 부족한 부분을 채우거나 개선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마땅하다. 유일한 검증 장치인 예타마저 깡그리 무시 되면, 불 보듯 뻔한 예산낭비를 누가 책임지겠다는 것인가. 자기 돈이라면 이렇게 할 리 없다.

이 때문에 예타 면제가 내년 4월 총선에서 표를 겨냥한 정치적 술수(術手)가 아닌지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정부는 이달 말 예타 면제사업 발표를 앞두고 있다. 부디 삐딱한 기자의 의심을 거두어 주길 바란다.

 sky03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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