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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썸씽로튼' 최근 몇년간 가장 신선·유쾌·스마트한 뮤지컬

등록 2019.06.14 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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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썸씽로튼' 최근 몇년간 가장 신선·유쾌·스마트한 뮤지컬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느닷없이 대사를 중단한 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록스타처럼 군림하던 16세기 영국 르네상스 시대. 영세한 극단을 운영하는 바텀 형제는 무명의 연출, 극작가들이다. 셰익스피어의 인기와 기세에 눌린 데다가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자신들의 '바텀 극단'에서 바닥의 연기력을 선보였던, 셰익스피어가 못마땅한 바텀 형제의 형 '닉'은 결국 예언가를 찾아간다. 최고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조카라고 주장하는 토머스에게 '미래에 유행할 공연물'을 묻고, '셰익스피어가 쓸 명작을 알아봐달라'고 청한다.
 
미래를 내다본 토머스가 앞장서 넘버 '어 뮤지컬'을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객석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브로드웨이 42번가' '시카고' '렌트'를 거쳐 앙상블들이 자신들의 프로필 사진으로 얼굴을 가리는 명장면으로 유명한 '코러스라인'까지, 걸작 뮤지컬들의 넘버가 인용되고 장면은 패러디된다.

발군은 2막의 뮤지컬 '오믈릿'을 공연하는 장면. 토머스는 셰익스피어가 앞으로 걸작 '햄릿'을 쓸 것을 예상하지만, 이를 온전히 읽어내지는 못한다. 제목 '햄릿(hamlet)'에서 'h'를 읽지 못하고 '오믈릿(amlet)'만 읽어낸다. 그리고 '대니시(Danish)'를 읽어내는데, 이 역시 '햄릿'의 주인공인 '덴마크 왕자'(Danish prince)에서 대니시(Danish)만 읽어낸 것이다. 이는 덴마크식 페이스트리 빵으로 변환된다.

닉과 그의 동생인 시인 '나이절'은 결국 '오믈릿'이라는 극을 써서 뮤지컬로 공연한다. 앞날 브로드웨이까지 내다본 토머스 덕(?)에 '레 미제라블', '드림걸스', '캣츠' 등의 명장면들도 섞여 들어간다. 공연은 갈수록 엉망진창인데, 객석의 만족도와 웃음은 갈수록 커진다. '썸씽로튼(Something Rotten)'이라는 작품 제목은 극 중 뮤지컬 '오믈릿'에 나오는 썩은 달걀 이야기에서 따왔다.

무겁고 진중하게 느껴지던 셰익스피어 비극이, 이처럼 매력적인 희극이 될 수 있다니! 극중 공연 마니아인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속에서 따온 것은 보너스다. 유쾌하게 변주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나이절과 사랑에 빠지는 현명한 여인 '포샤'의 이름도 '베니스의 상인'에 따왔다.

[리뷰]'썸씽로튼' 최근 몇년간 가장 신선·유쾌·스마트한 뮤지컬

월트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작가로 일한 커리 커크패트릭, '그래미어워즈' 수상자인 웨인 커크패트릭 형제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썸씽로튼'은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이번에 내한공연으로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이고 있는데, 뮤지컬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순수예술 장르에서 찬밥 취급을 받고, 일부에서는 가장 상업적으로 치부하는 뮤지컬 장르에 대한 '유쾌하고 사랑스런 찬가'다. 연극 대사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작품을 누가 보느냐는 닉의 의문에 토머스는 "우울한 감정을 풀어주는 춤과 노래 그리고 달달한 로맨스까지 있다"고 답하는데, 작품이 끝나고 나면 허풍쟁이 같은 예언가의 이 말은 마법처럼 현실이 된다. 

16세기 셰익스피어를 중심으로 한 연극계 상황 등 영미권 문화가 다양하게 녹아들어갔지만 낯설지가 않다. 특히 언어유희도 넘치는데, 내한공연이어서 영어로 공연하고 번역이 자막으로 제공되지만 즐기는데 불편은 없다.
 
영화 '데드풀' '보헤미안 랩소디' 등을 번역한 황석희씨의 적확하고 깔끔한 번역 때문이다. 예컨대 닉이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남자 변호사로 변신한 부인인 '비아'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서 원작의 맥락을 잃지 않고, 우리말로 언어유희를 살려내는 묘도 발휘한다. 비아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비아'라는 발음을 이어 받아 말하는 장면인데, 황 번역가는 이를 '비아냥'으로 받아낸다.

'썸씽로튼'이 특히 대단한 것은 실제 역사를 바꿀 정도로 뻔뻔한데 이를 세련된 지적임으로 풀어내, 불편하기는커녕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뮤지컬은 오페라, 오페레타, 보드빌 등을 거쳐 미국에서 완성됐다. '썸씽로튼'은 예언가의 점지를 받아 풍기문란한 공연을 벌인 바텀극단이 영국에서 추방, 신대륙인 아메리카로 가서 퍼뜨린 것이 뮤지컬이라고 선언한다.

[리뷰]'썸씽로튼' 최근 몇년간 가장 신선·유쾌·스마트한 뮤지컬

'뮤지컬계 스타워즈'인 격이다. 역사가 비교적 짧아 다른 나라들처럼 자신들의 고유 신화가 없는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은 '스타워즈' 같은 문화로 자신들의 신화를 만들어왔는데 뮤지컬에서는 '썸씽로튼'이 그 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썸씽로튼'의 매력에서 음악도 춤도 빠질 수 없다. 재즈의 그루브가 담뿍 담긴 브로드웨이 정통 뮤지컬 넘버와 탭댄스는 물론 영국 밴드 '퀸'의 화음이 도드라진 팝 같은 넘버까지 다양한 장르가 귀를 즐겁게 한다.

퀸의 프런트맨 프레디 머큐리 같은 록스타 또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K팝 아이돌 그룹처럼 바쁜 스케줄로 그려진 셰익스피어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공연한 창작물, 내한공연, 월드투어 공연을 통틀어 가장 신선하고 유쾌하며 스마트한 작품이다. 30일까지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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