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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했다, 조선왕조실록 96책·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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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25 11:47:40  |  수정 2019-06-25 1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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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51-1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성종실록/ 밀랍본)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 적상산사고본 4책, 오대산사고본 1책, 봉모당본 6책, 낙질·산엽본 78책이 국보가 됐다. 문화재청은 이들 '조선왕조실록' 96책을 확인, 국보로 추가 지정했다. 

조선왕조실록은 1392~1863년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임금들의 역사를 연월일 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총 2219책에 달한다. 조선 시대 정치·사회·외교·경제·군사·법률·문화 등 각 방면 역사적 사실을 기록했다. 임금도 열람하지 못했을 정도로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은 사료다. 1973년 국보 제151호로 지정됐고 이후 국제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번 추가 지정은 2016년 문화재청이 국보 제151-1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 일부가 1973년 국보로 지정될 당시부터 누락됐음을 알고 2017~2018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 포함해 기타 소재지를 파악해 조사한 결과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정족산사고본 7책, 낙질·산엽본 78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9책, 국립중앙박물관에 1책, 국립고궁박물관에 1책이 소장됐다. 이 중 1973년 국보 지정 때 누락된 것도 있다. 국보 지정 후에는 환수됐거나 별도로 구매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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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51-3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국보 제151-1호에서 누락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성종실록' 7책은 정족산사고본인 제151-1호에 편입됐다. 2018년 일본에서 환수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효종실록' 1책은 국보 제151-3호 오대산사고본에 편입됐다.

특히 6·25동란 때 인민군이 북으로 반출해 국내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 적상산사고본 실록 4책이 국립중앙박물관에 1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3책으로 나눠 보관돼 온 사실을 파악해 추가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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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51-4호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인조실록/ 활자본)
국보 제151-4호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의 지정을 계기로 완질 또는 일부 형태로라도 국내에 전해진 조선 4대 사고(史庫)인 정족산·오대산·적상산·태백산사고 실록의 현황을 모두 파악하게 됐다. 이는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머지 적상산사고본 실록 연구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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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51-5호 조선왕조실록 봉모당본(활자본)
국보 제151-5호 '조선왕조실록 봉모당본' 첫 면에는 '봉모당인(奉謨堂印)'이란 소장인이 찍혀 있다. 푸른색 비단으로 장정한 어람용 실록이다. 주로 역대 왕들과 왕비들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했다. 조선 후기 어람용 실록을 특별히 제작한 사실을 보여준다. 조정에서 논의된 국정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객관성 유지를 위해 끝까지 왕에게 보이지 않은 사관들의 철저하고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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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51-6호 조선왕조실록 낙질 및 산엽본(중종실록)
국보 제151-6호 '조선왕조실록 낙질 및 산엽본'은 정족산사고본, 태백산사고본, 오대산사고본에 속하지 않는 낙질 성격의 또 다른 실록 67책과 기타 산엽본 11책 등 총 78책이다. 낙질본은 원래 사고에서 제외된 중간본 실록이 다수다. 산엽본은 정족산사고본 실록의 낙장을 모아놓았다.

 '낙질 및 산엽본'은 재해로 훼손됐거나 일부를 오리거나 붙여서 수정한 흔적이 많다. 그래도 후세에 전할 역사적 증거라는 인식에 따라 잔편이라도 소중히 보존해야 한다는 시대정신과 실록 편찬 상황을 담은 근거 자료로서 의의가 크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기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도 국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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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27호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왼쪽부터 청동제사리합,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
국보 제327호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2007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 왕실 사찰인 왕흥사터의 목탑지에서 발굴한 유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사리기 중 가장 오래됐다.

출토 당시 금당인 대웅전 앞 목탑지 사리공에서 진흙 속에 잠긴 채 발견됐다. 이후 보존처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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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27호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왼쪽부터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 청동제사리합

사리기는 겉에서부터 청동제사리합-은제사리호-금제사리병 순으로 용기 3가지로 구성됐다. 청동제사리합 겉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577년에 만들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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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27호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청동제사리합)의 명문

 명문에 의하면 이 사리기는 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고자 발원한 왕실 공예품이다. 제작 시기가 명확한 사리기로서, 연대가 가장 빨라 우리나라 사리기의 선구적인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공예적 측면에서도 안정되고 세련된 형태, 세부 구조물을 주조하고 접합한 기법, 표면을 깎고 다듬는 기법이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단순하고 단아한 모습과 보주형 꼭지, 그 주위를 장식한 연꽃문양은 525년 조성된 '공주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과 639년 제작된 보물 제1991호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등 후대에 조성된 삼국시대 고분 유물에서 볼 수 있는 선구적 양식으로 주목된다.  

 6세기 전반 사리공예품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백제 왕실 공예품이라는 역사·예술적 가치,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절대 연대를 가진 작품이라는 희소성과 뛰어난 작품성으로 우리나라 공예와 조형 예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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