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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아, 망건 쓰다 장, 파하겠다···조정인 '사과 얼마예요'

등록 2019.07.09 11: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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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아, 망건 쓰다 장, 파하겠다···조정인 '사과 얼마예요'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어느 날의 눈물에선 여치가 울고 어떤 눈물에선 부식된 납 냄새가 났다/ 흉곽 안쪽 달그락거리는 눈물을 수습해서 잠든 날은 잠의 맨바닥에/ 동전 한 움큼을 품고 웅크린 걸인 여자가 보였다'('서쪽' 중)

'사과 얼마예요'은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한 조정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삶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섭리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생 전체에 팽배한 비극의 원인과 존재의 이유를 가만히 응시한다. 시 58편이 실렸다.

'오늘 밤엔 달빛을 훔쳐 달아난 천사에 대해 말할까 한다. 유예된 천 일 동안 이야기를 그치면 안되는 나는.// 술탄은 어디 있나. 모든 연인들에게는 한 잔의 축배와 천 잔의 독배가 기다린다.// 없는 나라에서 온 없는 계절들이 바닷가 민박집에 들었다. 쪽창으로 달빛이 흘러들었다. 우리는 다만 연인이므로, 어떤 것도 설명하면 안 되는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만 골똘히 세었다. 숨과 숨 사이, 11월 밤물결이 헤적였다. 파들거리는 달의 숨에 섞인 숨의 안개가 방바닥에 자욱했다.'('바닷가 민박집' 중)

'사과가 떨어지는 건 이오니아식 죽음. 경쾌하고 정교한 질서 속의 일.// 닿을 수 없는 두 입술의 희미한 갈망으로 지상에 먼저 발을 디딘 사과의 그림자가 사과를 받쳐 주었다./ 그림자의 출현은 태양과 사물간의 밀약에 천사가 개입하는 것.'('행복한 눈물' 중)

시인은 "누구라도 자신만의 고독한 성소가 있다. 심지어 짐승조차도. 그곳은 상처를 핥기 좋은 곳. 다시 들판이다. 들은 작은 것들의 글썽이는 입법으로 지속된다. 이곳에서 최대 토템은 구름"이라고 했다. "내 어머니께 이 시집을 바친다. 매사에 굼뜬 나에게 생전의 엄마는 그러셨다. 이것아, 망건 쓰다 장, 파하겠다." 184쪽, 1만원,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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