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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서형민 “피아노 악보 모든 것 지킨 후 내 음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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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03 06:03:00
세계적 피아니스트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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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피아니스트 서형민(29)이 낯선 클래식음악 팬이라면, 메모해두자. 그 메모는 추후에 반짝반짝 빛이 나리라.

서형민이 5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오른다. 4일 낮 12시 강원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내일의 이야기 #1’이라는 부제로 리사이틀을 연다.10일까지 강원 일대에서 펼쳐지는 제16회 평창대관령음악제의 하나다.

2016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 자격이자, 차세대 연주자로 지목돼 리사이틀을 펼치게 됐다. 서형민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손열음(33) 예술감독이 그를 직접 점찍었다.

“원래가 열음이 누나 팬이었어요. 연주회에 직접 몇 번 가기도 했죠.”

서형민이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서 규모가 굉장히 크고, 명성이 있는 축제잖아요. 언제쯤 설 수 있을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찾아와서 감사해요.”

서형민은 또래 연주자들보다 한국에 덜 알려졌지만,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피아니스트다.

네살때 처음 피아노 앞에 앉았다. 다섯살에 척척 작곡까지 해내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평화', '희망', '도둑의 하루' 등이다. 신동으로 불리며 협주곡, 야상곡, 폴로네이즈, 환상곡, 즉흥곡을 양산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덟살 때 금호갤러리에서 독주회를 열며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이어 주변에서 그의 재능을 확신, 미국으로 보내게 된다. 박성용(1932~2005)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MC 주병진, 피아노학원장들, 어머니 친구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전세비용과 독주회 티켓 판매수익도 보탰다.

그렇게 2001년 매네스음대 예비학교에 들어갔고 그해 뉴욕필하모닉 영아티스 오디션에서 덜컥 우승해버렸다. 국내에서는 선우예권이 1위를 차지한 2013년 일본 센다이 국제음악콩쿠르에서 2위에 오르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재에게는 시련이 찾아오는 법, 2016년 손톱 끝 염증이 심해졌다.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왼손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진물이 터져 나왔다. 피아노 연주는 섬세한 터치가 생명인데, 건반을 누를 때마다 통증이 엄습하니 그 좋아하는 연주가 기쁨이기는커녕 고통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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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임시방편을 취한 뒤 그해 5월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참가, 결승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주요 입상권에 들지는 못했다. 당연했다. 고통과 싸우느라 연습도 못한 데다가, 통증이 결선 연주에서도 찾아온 탓이다.

컨디션이 계속 악화돼 그해 11월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출전도 포기하려 했다. 제대로 준비를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에 있던 서형민은 우여곡절 끝에 통영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뜻밖의 영감이 찾아왔다. 통영이 놀랄 정도로 아름답게 다가온 것이다. 잡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을 비웠다. 연주에 주력했다. 그리고 우승했다.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기 위해서는 제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때죠. 연주는 감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잖아요. 그걸 새삼 깨달은 겁니다.”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 작년 4월 제8회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어워드 결선에서 우승, 같은해 10월 제25회 리나 살라 갈로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번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서형민의 진가를 확인시켜준다. 베토벤 6개의 바가텔,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드뷔시 프렐루드 ‘아마빛 머리의 소녀’ ‘달빛 쏟아지는 테라스’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 그리고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제7번을 들려준다.

베토벤의 곡들은 대부분 잘 알려졌는데 이번에 서형민이 연주하는 바가텔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이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통하는 서형민이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는 베토벤일 수밖에 없다.

“바가텔은 베토벤의 곡들 가운데 베스트로 꼽히는 곡 중 하나에요. 후기작품인데도 심플하죠. 그런데 심오해서 깊이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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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민이 베토벤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의 스승인 이매뉴엘 액스의 계보를 올라가면 베토벤이 있다. 뿌리는 감춰져 있어도 숨길 수 없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사형 선고와 다름없는 일(청력 상실)을 겪었잖아요. 그것을 극복하고 위대해진 분이어서 그런지, 음악도 훌륭하지만 인간적으로 더 존경하는 분이에요. 합창 교향곡은 평화에 대해 노래한 것인데, 그런 악조건 속에서 그런 위대한 메시지를 담은 곡을 쓰기가 쉽지 않거든요.”
 
서형민의 하반기 일정은 빠듯하다. 이달 말까지 한국에서 시간을 보낸 뒤 카타르필 협연, 독일 연주 등이 예정됐다.

모범생 같은 얼굴로 섬세한 연주를 보여주는 서형민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56)다. 다양성을 유연하게 흡수하는 덕분에 연주가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이제 막 30대로 접어드는 서형민의 내면은 뜨거움으로 펄펄 끓는다. 
 
이런 성향은 악보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데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 연주자들이 아무리 개인 해석과 개성이 각기 다 다르다고는 하나,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위대한 작곡가들의 의도를 우리의 신체와 악기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관객들에게 전하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최대한 악보에 있는 모든 것을 지킨 후 그 위에 제 음악을 불어넣는 태도로 일관했으며, 그 태도는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또한 이어질 것입니다.”

불화할 것 같은 겸손함과 당당함의 절묘한 화음, 서형민의 연주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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