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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재원·인력 이중고 '초고령사회 日'…韓의 미래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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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09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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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임재희 기자 = "친구들과 만나면 모두 '노노(老老)케어' 걱정이야. 그럼 난 속으로 생각하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다행이야'라고."

지난달 29일 일본에서 만난 70대 노신사에게 '요즘 친구들과 만나면 무슨 얘기를 나누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순간 굳어버린 기자의 표정을 읽은 걸까. 그는 "농담이야, 농담"이라는 말로 상황을 서둘러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신사의 짧은 농담은 지난달 25~29일 뉴시스 창사 18주년 특집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일본에선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일반적 정서였다. 2019년 일본의 개호(介護·돌봄)는 고령자를 시설에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물론 집에서 노후를 보낸다는 건 초고령사회에서 축하받을 일이다. 누군가 24시간 붙어있지 않아도 큰 걱정 없다는 뜻이며 도움을 받지 않아도 먹고 씻는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고령자들도 바라는 바다. 일본 '고령 사회 백서'를 보면 60세 이상 고령자 절반 이상(51.0%)은 '집'에서 최후를 맞고 싶어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방점은 '요개호 인정률 억제'에 찍혀 있다.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해당하는 일본 개호보험제도는 운영 주체가 기초자치단체인 시·정·촌이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다는 뜻인데, 최근 일본 정부의 간섭이 늘었다고 한다. 재정 부담 때문이다.

일본 개호보험은 요개호 1~5등급, 요지원 1~2등급 등 등급 종류가 우리나라(1~5등급, 인지지원등급)보다 넓을 뿐 아니라 제공하는 서비스도 다양하다. 그만큼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도입 당시인 2000년 3조6273억엔(약 41조4781억원)이었던 개호보험 급여는 2016년 9조9903억엔(약 114조2390억원)으로 16년 사이 2.75배 가량 늘었다.

보험료를 더 받을 수도, 서비스를 줄일 수도 없는 일본 정부는 요개호 인정률을 낮추는 데 성공한 지역 사례를 들이밀며 각 시·정·촌에 '개호 예방'에 힘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개호 전문가들은 정책을 요개호 인정률만으로 평가하려는 데 우려하고 있다. 인정률을 떨어뜨리는 데 신경쓰느라 자칫 개호 서비스 질 관리에 소홀할 수 있어서다.

개호 분야 인력 부족도 초고령사회 일본이 당면한 문제다. 일본 정부는 제1차 베이비붐 세대가 75세에 접어드는 2025년이면 55만명이나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요코하마시는 지난해 베트남 현지 대학교에 일본어 연수 시설까지 마련했다. 외국인 개호 인력을 기다리다 못해 유치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한 달 생활비만 100만엔(약 1117만원)에 달하는 유료 노인 홈(home)처럼 고가의 고령자 주택에 부모님을 모실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비싼 만큼 노동 인력 공급에는 어려움이 없을테니 말이다. 

문제는 그런 시설에 부모를 맡길 여력이 없는 이들이다. 재택케어가 확대되는데 돌볼 인력이 없다면 돌봄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이 떠안는다. 실제 2016년 10월부터 1년간 가족 간병이나 간호를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사람만 9만9100명에 달한다.

한계에 다다른 재원과 부족한 인력 문제가 빚어낸 '고령자를 시설에서 집으로 돌려보내자'라는 일본 개호의 흐름이 가족 중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대책이라기보다 고육지책에 가깝다.

일본의 이런 상황은 이제 곧 우리의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7년 기준 5조4139억원이 들어간 노인장기요양보험 지출은 2022년 10조3452억원으로 10조원대를 넘어서 2027년엔 16조4132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그 결과 누적준비금은 3년 뒤인 2022년부터 적자로 돌아설 거란 예측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대로라면 재정수지는 이미 지난해부터 마이너스 상태다.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한계에 부딪힌 요양 종사자들은 젊은 요양 종사자 양성 방안 마련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열악한 처우와 사회적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사실 이번 취재를 마치면서 현재 초고령사회 일본을 한국의 미래라고 보는 것은 굉장히 낙관론적 전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 취재도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일본 사례에 비춰 미리 준비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2019년 일본 사회가 처한 문제를 보고 들으며 '미리 대비하자'던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깨달았다. 어쩌면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금 초고령사회 문제를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어차피 만나야 할 미래라면 뒤늦은 후회로 땅을 치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가야 한다.


limj@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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