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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요요마 바흐 프로젝트, 영혼 위한 춤곡···새 같은 자유

등록 2019.09.09 00: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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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토크쇼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K팝과 같은 유전자”

【서울=뉴시스】 요요마 '더 바흐 프로젝트'. 2019.09.08. ⓒ크레디아

【서울=뉴시스】 요요마 '더 바흐 프로젝트'. 2019.09.08. ⓒ크레디아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찰나의 조용한 굉음. 8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프랑스 태생 중국계 미국 첼리스트 요요 마(64)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 지그 연주를 끝낸 뒤 찾아온 침묵의 소리였다.

유동성 있는 템포 뒤 찾아온 정적으로 세상이 멈춘 듯했고, 그 순간에 전율이 일었다. 요요마는 바로 6번 연주를 이어갔다. 실내공연장에서 비현실적인 아득한 공간이 펼쳐졌다.

요요마가 ‘더 바흐 프로젝트’를 통해 들려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 전곡은 듣는 이의 마음과 정신을 공간과 시간 그리고 위로 속에 박제해버렸다.

좋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듣는 일이, 꼭 정교하게 설계된 꽉 막힌 실내 공연장과 안락한 객석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했다.

솔직히 요요마가 연주하기에 최적의 환경은 아니었다. 당초 이날 공연은 체조경기장 옆 야외공연장인 88잔디마당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태풍 링링 탓으로 급히 이곳 실내로 옮겼다.

이날 요요마의 공연과 전날 같은 장소에서 ‘디즈니 인 콘서트’까지 치른 공연주최사 크레디아는 지난 6일 금요일 밤 전쟁 같은 8시간을 보냈다.

당일 밤 미국 일렉트로닉 팝 듀오 ‘체인스모커스’ 공연이 끝난 직후 8시간 동안, 88잔디마당에 세팅할 예정이던 장치들을 이곳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좌석 표 배치도 모두 다시해야만 했다.
 
[리뷰]요요마 바흐 프로젝트, 영혼 위한 춤곡···새 같은 자유

이런 상황에서도 크레디아와 요요마는 최고의 공연을 선사했다. 특히 요요마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 전곡을 들려주는 2시간30분 동안 몇차례 멘트만 전했을 뿐, 휴식 없이 마라톤하듯 쉬지 않고 달려 나갔다.

덕분에 청중도 요요마에게 빨려 들어갔다. 무대와 객석에서는 단순한 집중을 넘어 몰입의 정경이 빚어졌다. 마라톤에서 달릴수록 상쾌해지는 쾌감, 즉 ‘러너스 하이’가 찾아왔다. 불편한 좌석 탓에 드나드는 청중이 많아 곳곳에서 일부 잡음이 일었는데 거장은 개의치 않았다.

사실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요요마의 바흐 프로젝트는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장소에서 연주됐다. 생활 속에 음악을 가져오기 위한 요요마의 의도인데, 경직된 분위기가 아닌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을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요요마는 전날인 7일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에서 열린 ‘스페셜 토크’에서도 음악의 벽을 허물었다. SM엔터테인먼트 이성수 본부장, 동아일보 대중음악담당 임희윤 기자가 함께 ‘K팝의 미래와 문화기술 그 사회적 가치에 대하여’로 의견을 나눈 것이다.

요요마는 각국을 방문할 때마다 연주뿐 아니라 교육, 기술, 환경 등 해당 국가의 문화에 관해 토론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요요마는 이 토크쇼에서 바흐는 새로운 예술 형태를 만들었고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춤곡이라며 임 기자, 이 본부장과 대화를 하다 보니 이 모음곡이 K팝과 같은 유전자를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300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요.”

‘첼로의 구약성서’라고 불리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K팝의 유전자가 같다고? 요요마의 말마따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춤곡이다. 청중에게 청각적 잔상과 함께 심리적, 나아가 육체적인 것까지 떠안아야 하는 촉각까지 안기니 K팝처럼 몸처럼 들뜨게 만드는 것이 맞다.

[리뷰]요요마 바흐 프로젝트, 영혼 위한 춤곡···새 같은 자유

더 나아가자면 ‘방탄소년단’, ‘엑소’의 역동적인 군무의 K팝이 육신을 위한 춤곡이라면, 무대 위에 홀로 버티고 있는 연주자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영혼을 위한 춤곡이다. K팝과 바흐, 모두 듣는 이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는 것은 매한가지다. 

임 기자는 요요마를 가리켜 ‘첼로를 든 몽상가’라고 표현했는데, 음악에 대한 가치관과 자신이 공언한 것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기적 같은 일을 벌이고 있으니 맞는 말이다.

지난 4월 ‘행동의 날’(Day of Action) 행사의 하나로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연주회를 연 것이 보기다. 9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남북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기념해 여는 음악회 ‘문화로 이음 DMZ 평화음악회’에 출연한다. 남과 북의 국경에서 평화를 연주한다.

연주하는 나라마다 극진한 애정을 보여주는 요요마는 이날 ‘더 바흐 프로젝트’ 공연에서 전한 멘트를 모두 한국어로 말했다. 적어 온 것을 더듬더듬 읽었지만 한 음절 한 음절 모두 정성이 깃들었다. “아름다운 밤입니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추석 잘 보내세요”라는 식으로.

특히 앙코르를 앞두고 객석에 전한 말이 뭉클했다. “이번에는 ‘새들의 노래’를 여러분들에게 바치고 싶다”며 전설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1876~1973)가 애정한 ‘새들의 노래’를 소개했다. 카살스의 첼로 연주로 유명해진 ‘새들의 노래’는 카살스의 조국인 카탈루냐의 민요다. 카살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고서점에서 찾아낸 세상에 빛을 보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요요마는 “새는 자유를 상징합니다. 날아다닐 자유, 그래서 국경을 넘나들 수 있죠.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기억할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훨훨 날자, ‘영혼의 춤’을 추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바흐는 춤이자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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