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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어느 노학자의 눈물…초라한 의열단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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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0-11 09:10:00  |  수정 2019-10-12 1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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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독립전쟁의 영웅 김원봉은 용납할 수 없는 공산주의자이고, 주체사상가 황장엽은 무궁화장(국민훈장 최고등급)을 받은 애국자로 추앙하는…."

의열단 연구에 일생을 바친 노학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의열단 100주년 국회 학술대회에서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김 전 관장은 "김원봉 선생이 저승에서 일본이 재침략 야수성을 드러내고…조국광복 74주년이 되는 오늘까지 자신에 대해 온갖 험담을 쏟아내는 사람들에게 어떤 심경일까"라며 눈물을 연신 훔쳤다.

한때 북한의 핵심 권력층에서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로 활동했던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최고등급 훈장을 받고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으나, 묘지조차 찾지 못하고 남북한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독립운동가 김원봉은 공산주의자로만 내몰린 현실에 대한 개탄이었다.

노학자의 눈물은 어림짐작이 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김원봉 서훈을 둘러싸고 그에 대한 평가로 극렬히 갈렸지만, 그의 공(功)과 과(過)를 평가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도 못한 채 해묵은 이념 논쟁으로만 남기고 말았다. 김원봉이 북한 정권에 기여했다는 것도 사실이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를 "6·25의 남침 핵심"으로만 내모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 이유다.

김원봉이 북한에서 국가검열상이고 전쟁 중인 1952년 훈장을 받았지만, 그가 받은 훈장은 김일성이 아닌 '보리 파종' 실적 우수를 이유로 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두봉으로부터 받은 '로력훈장'이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6·25 남침 주범"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김원봉의 월북과 죽음 역시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 많다. 그의 월북은 당시 만연했던 백색테러 등 신변의 위협, 정치 상황 변화 등 설이 분분하다. 가장 상징적인 일화는 일제 강점기 고등계 형사였던 노덕술이 해방 후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의 뺨을 때린 사건이다. 한때 의열단을 이끈 그가 해방 후에도 일제 경찰 출신에게 농락을 당했을 때 어떤 결정으로 내몰렸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북한에서의 활동 역시 의문이 많다. 최근 발굴한 평양 주재 소련 대사 알렉산더 푸자노프의 일지는 김원봉에 대해 "체포 직전에 남쪽으로 도주하고자 온갖 방법을 사용한 전 최고회의인민회의 부위원장 김원봉(현재 체포돼 있음)과 교류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일지는 일기 형식으로 북한 정계 동향을 기록해 본국에 보고하는 문건이었다.

김원봉이 김일성과 그 세력들의 탄압을 피해 다시 월남을 시도한 것으로 읽힌다. 당시 그의 신세가 전향한 황장엽과 무엇이 다를까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김원봉은 이후 북한 기록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납북·월북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평양 애국열사릉에도 그의 묘는 없다. 어디에 있는지 현재로서는 찾을 길이 전혀 없다.

의열단은 일제가 조선을 침략한 뒤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이었다. 수많은 의열단원이 경찰서와 수탈기관 폭파는 물론이고 일제 고위 장교 및 경찰서장 등 고관들을 저격했다. 심지어 도쿄 일왕 궁성에 폭탄을 투척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의열단은 해단 이후에도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 등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단장이었던 김원봉의 목에만 100만원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가치로 약 320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의 현상금(60만원)보다 더 높은 금액이었다.

물론 김원봉의 공과 과에 대한 평가는 현재 진행형이고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이다. 김원봉 만큼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논쟁이 되는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그에 대해 당장 답을 내릴 일도 아니다. 논란이 됐던 서훈 문제는 두말할 것도 없다.

다만 최근 김원봉을 둘러싼 논란을 틈타 순수한 비밀항일결사인 '의열단' 조차 "빨갱이 집단"으로 매도하는 일부의 몰지각함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 의사, 조선총독부를 폭파한 김익상 의사도 "빨갱이"라는 의미인가. 의열단원이었던 민족시인 이육사는 또 어떠한가.

올해는 의열단 창단 100주년이 되는 해다. 김원봉을 비롯한 13명의 조선 청년이 1919년 11월10일 중국 지린성 어느 농부 집에 모여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해 신명을 희생하기로" 약속하고 목숨 건 투쟁에 나선 '그 날'이 꼭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의열단 100주년 기념행사는 성대했던 정부의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행사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다음 달 9일과 10일 의열단 창단일에 맞춰 예정된 100주년 기념행사는 김원봉 서훈 논란으로 연결되면서 정부의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십시일반으로 사재를 털어가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선양하는 '국가보훈처'는 뒷짐이다. 보훈처는 김원봉 서훈 논란이 일어난 뒤 의열단 기념사업과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모양새다. 지난 7월 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지난해 예산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훈처의 지원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의열단에는 김원봉만 있는 게 아니라 수백 명에 이르는 순국선열들이 존재하지만 보훈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김원봉 서훈 논란이 보훈처에 또다시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출범 당시 김원봉 서훈 국민 서명운동을 계획했지만, 여론을 반영해 이를 취소하고 영화 상영회로 대체했다. 그러나 보훈처에서 지원은 검토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처는 지금도 "지난해 미리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원론적인 답변뿐이다. 5조원 예산의 보훈처로서는 성의 없고 옹색한 답변이 아닌가 싶다.

의열단 활동은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비견되며 그 이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은 4년이라는 짧은 기간 전개됐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자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대접과 추앙을 받고 있는 현실과 비춰봤을 때 의열단의 현실은 너무 초라하기만 하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출입기자단과 오찬 간담회에서 "독립과 호국과 민주가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며, "차이가 있어서 안된다. 모든 분들이 다 존경 받을 분이다. 그런 차원에서 독립하신 분들을 제대로 모셔야 한다"고 밝혔다. 그의 진정성에 기대를 해보지만 지난 8월 취임 후 아직까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한 것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박 처장은 신임 보훈처장으로 지명되자마자, 독립운동가 단체 관계자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간담회에서 보훈처장 '임명 철회'를 공식으로 건의한 것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들의 건의는 박 처장이 군인 출신이라는 불만이 아니라, 당당하게 치러야 할 독립운동단체의 기념행사 조차 정치권 눈치를 보며 관망하는 보훈처의 태도에 대한 실망이자 항의의 표현으로 받아들임이 바람직하다.

여든에 가까운 노학자 김 전 관장이 눈물을 흘리며 읊었던 러시아 혁명 시인 마야콥스키의 시구를 박 처장에게 보낸다.

"나는 원한다. / 조국이 날 이해하게 되길 / 조국이 원치 않는다면 그땐…/ 그냥 조국을 지나가는 수밖에 / 비스듬히 내리는 비처럼!"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조국에 무엇을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겼으면 한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ksj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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