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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2인 뮤지컬 달인' 유성재 "행복하게 연기하니 부담 줄어"

등록 2020.05.04 13: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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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진술'·'라흐마니노프' 동시 출연...예스24스테이지

6월부터 뮤지컬 '미아 파밀리아'도 공연

[서울=뉴시스] 유성재. 2020.05.04. (사진 = 한다프로덕션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유성재. 2020.05.04. (사진 = 한다프로덕션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뮤지컬배우 유성재는 대학로에서 2인극과 3인극 달인으로 통한다.

국내 남성 2인 뮤지컬의 원조로 통하는 '마마, 돈 크라이' 2010년 초연에서 '드라큘라 백작'을 연기했던 그다.

현재 공연 중인 2인극 '최후진술'(31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2관), '라흐마니노프'(6월7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1관)에 동시에 출연하고 있다.

총 3개관인 예스24스테이지는 대학로 공연 마니아들의 성지 같은 곳이다.

현재 유성재는 이곳의 터줏대감이다. 6월 9일부터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미아 파밀리아'는 3인 뮤지컬로 유성재가 역시 나온다. 그는 2013년 이 뮤지컬의 초연 멤버이기도 하다.

2017년 말 초연한 '최후진술'은 유성재를 현장으로 다시 불러들인 작품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던 그가 공연 현장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던 찰나에 갈증을 해결해줬다.

우리에게 지동설로 널리 알려진 갈릴레이의 종교 재판과 그의 '최후진술'을 주요 서사로 삼은 뮤지컬.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지지하는 내용의 '속편'을 쓰기 위해 피렌체의 옛집으로 돌아온 갈릴레이가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서 셰익스피어를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성재는 셰익스피어를 비롯 1인 다역을 맡아 유쾌한 만능 재주꾼의 면모를 유감 없이 뽐내고 있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유성재는 "갈릴레오가 별을 좋아하는 열정을 보고, 셰익스피어 역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열정을 느끼는데 '열정을 되찾는 열정'이 와 닿아 소중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최후진술'은 초연부터 올해까지 앙코르 공연을 포함해 4년 연속 공연한 대학로 대표적인 인기작이다.

매년 이 작품에 출연한 유성재는 사실 이번 삼연 째 공연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같은 캐릭터로 더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관객들이 지겹게 여기지 않을까'라고 주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끝으로 '최후진술'이 잠정 휴지기를 갖고, 시즌 2를 준비하기로 하면서 시즌 1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이번에 오히려 진심을 갖게 됐다.

"이전까지는 '내가 뭔가 보여주려고만 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 거예요. 캐릭터가 주는 메시지보다 저를 더 보여주려고 한 거죠. 진실하지 못했다고 반성했고 오히려 지금 더 행복해하면서 연기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부담도 더 줄었죠."

[서울=뉴시스] 뮤지컬 '최후진술'. 2020.05.04. (사진 = 장인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뮤지컬 '최후진술'. 2020.05.04. (사진 = 장인 엔터테인먼트 제공) [email protected]

사실 갈릴레오가 생의 갈림길에서 만나 그가 천국행 유람선을 탈 수 있도록 가이드 역을 하는 셰익스피어는 유성재에게 안성맞춤이다. 그는 남을 돕는 조력자 역을 맡았을 때 진실해 보인다.

교향곡 1번을 발표한 후 쏟아지는 혹평에 더 이상 곡을 쓰지 못하고,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은둔해 있던 러시아의 천재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를 돕는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도 유성재 덕에 생생하다. 달 박사는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를 요하는 치료가 아닌 대화와 공감을 통해 라흐마니노프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성공만 하면 행복이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 믿고 살아오다 최근 '내려놓음의 미학'을 깨달은 뒤 전환점을 맞이한 유성재의 인생이 달 박사에 자연스레 묻어난다.

"성공이 의미 없다는 걸 깨닫고, 욕심을 내려놓은 뒤 현재를 즐기기 시작하니까 저 자신이 바뀌었어요. 누군가를 사랑해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해하는 시점이죠.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쯤에 '라흐마니노프'를 만났어요.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제 인생과 맞물렸죠."

인생과 작품이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니 유성재가 2인극과 3인극 작품에 끊임없이 캐스팅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프리랜서인 배우 전업에만 뛰어들 수 있었다.

열한살 짜리와 태어난 지 10개월 남짓 된 사내아이까지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유성재는 사실 현실적인 삶이 쉽지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배우 활동을 병행하며 학교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고 연기만 하기로 과감히 결정했다. 뮤지컬배우인 아내 조선명도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육아가 안정세로 접어들면서 조선명도 곧 대학로에 복귀하기로 했다.

2009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앙상블로 데뷔한 유성재는 한예종 성악과를 나왔다.

원래는 실용음악 뮤지션이 꿈이었다. 하지만 학창시설 음악 중 자신에게 가능한 선택지가 성악이었다. 중앙대 성악과에 입학했다가 다시 한예종에 들어가 테너 공부를 했다. 이후 클래식음악을 전공한 학생들이 그렇듯 자연스레 유학을 준비했고, 2008년 미국 대학에 합격을 해서 짐 쌀 일만 남았다.

[서울=뉴시스] 유성재. 2020.05.04. (사진 = 한다프로덕션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유성재. 2020.05.04. (사진 = 한다프로덕션 제공) [email protected]

그런데 2008년 절친한 친구인 뮤지컬배우 양준모가 출연한 '이블데드'를 보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B급 코믹호러 좀비 장르인 '이블데드'는 뮤지컬 중에서도 독특한 작품이었는데, 유성재는 자유분방함이 마음에 들었다. 중앙대 재학시절 뮤지컬 동아리 맛을 보기도 한 그는 노래 레슨과 연기 레슨을 주고 받았던 강필석이 알려준 '오페라의 유령'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다.

하지만 뮤지컬배우의 길은 멀었다. 뮤지컬이 처음 그에게 주어진 역은 배역이 없는 스윙이었다. 앙상블 중 사정이 생겨 참여하지 못하는 이를 대신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당시 친구인 양준모는 '오페라의 유령' 주인공인 팬텀이었다. 

씁쓸할 법도 한데 유성재는 양준모가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했지만 스윙 경험이 소중했다고 긍정했다. "뮤지컬이라는 것이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걸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덕에 유성재는 대학로 후배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선배이기도 하다. 유성재는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꼰대'라며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동생들에게 먼저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아요. 차 한잔 하자고 먼저 후배들이 이야기하면 그들의 고민을 들어줄 뿐이죠. '최고의 위로'는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을 주입하려는 순간, 다 망치는 거죠."

라흐마니노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달 박사의 따듯함은 그로부터 길어올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유성재는 자신의 실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여전히 배움을 갈구하고 있다. "아직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커요.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거든요."

전성기를 맞이한 배우의 겸손일까. 유성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전성기가 오지도 않았지만 따로 전성기를 정하고 싶지도 않아요. 배우는 죽을 때까지 배우는 직업이잖아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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