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말과 몸의 협화음…이선태 무용극 '돛닻'

등록 2020.06.25 09:47:18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20~21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서 비공개 진행

[서울=뉴시스] 무용극 '돛닻'. 2020.06.25. (사진 = 고양문화재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무용극 '돛닻'. 2020.06.25. (사진 = 고양문화재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현대무용가 이선태의 삶을 담은 무용극 '돛닻'을 본 뒤 춤의 이미지가 시각적 뿐만 아니라 청각적 잔상으로도 남았다.

음악이야 춤과 단짝이니, 당연히 함께 했다. 이번 '돛닻'에서는 특히 말이 몸을 추격했다. 이선태는 춤을 추는 동시에 이야기를 했다. 안무와 대사의 합은 아슬아슬함보다 협화음을 선사했다.

민준호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대표가 연출하고 이선태와 현대무용가 김설진이 공동 안무한 이번 작품은 다큐멘터리 무용극이다.

이선태의 무용수로서 삶이 묻어나 있다. 어릴 적 비보이로 브레이크댄스를 췄던 그는 한예종 무용원 재학 시절, 3학년 때부터 콩쿠르에 나가 상을 휩쓸었다.

2013년 케이블 음악채널 엠넷의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 시즌1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키 184㎝, 쭉 뻗은 다리·팔이라는 탁월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인기를 누렸다.

이듬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단독 공연을 연 이유다. 100석 규모의 소극장이었지만, 이선태는 기대로 부풀었다. 그러나 객석은 29석밖에 차지 않았다. 관심과 인기는 거품이었다. "칭찬 받는 걸 좋아하던" 이선태는 겉보다 안에 골몰하게 된다.

'돛닻'의 주요 오브제는 이선태가 과거에 일본에서 한 눈에 반한 자전거다. 몸체를 분리해서 선후배들에게 나눠주고 공수해온 자전거. 그의 손으로 바퀴를 굴려 자전거용 랜턴에 빛이 들어오면, 그의 삶이 무대 위로 굴러 들어온다.

'돛닻'은 말과 몸이 결합해 소통의 통로를 넓혀준다. 이선태는 말로만 하면 소통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많은 사람이 몸을 움직이면서 같이 이야기를 하면 더 나은 소통이 될 거라 믿는다고 했다.

무대는 미니멀하다. 민 연출은 소거법을 통해 필요한 것만 남겼다고 했다. 배우에게 집중하며 의미만 보일 수 있도록 '검소한 것'이 무용극에 맞다고 여겼다. 배우 유연이 일부 장면에서 피드백을 해줄 뿐, '돛닻'은 사실상 1인극에 가깝다.  

이선태, 민 연출, 김설진은 앞서 우란문화재단에서 트라이아웃 공연한 무용극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로 호흡을 맞췄다.

연극 '나와 할아버지' '뜨거운 여름'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로 대학로에서 유명한 민 연출은 자신과 극단 간다의 공연에서 점점 움직임이 줄어들었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영화 '극한직업'의 진선규를 비롯 이희준, 김민재 등의 배우가 이곳 출신이다.

[서울=뉴시스] 무용극 '돛닻'. 2020.06.25. (사진 = 고양문화재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무용극 '돛닻'. 2020.06.25. (사진 = 고양문화재단 제공) [email protected]

민 연출과 간다의 출발작인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신체극에 가까웠다. 그런데 최근작인 '신인류의 100분 토론'에서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돛닻' 공연 전 만난 민 연출은 "무용극은 맨바닥을 파헤치는 재미가 있어요. 좋은 대본만 있으면, 제가 편안하게만 연극을 할 거 같아서 무용극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곤란함이 그리웠어요"라고 말했다. "양식이 정해져 있지 않고, 저희도 모르고 시작한 것이 무용극"이라고 덧붙였다.

이선태는 이런 자유로움이 좋다고 했다. "민 연출님은 틀을 주지 않으세요. 고삐를 마음껏 풀어주신다고 할까요. 갈망하던 자유가 짓눌려 있다가 풀려난 느낌"이라고 했다. "이제야 제 세계관을 구축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넷플릭스 '스위트홈', 채널A '열두밤' 등 드라마에도 출연한 이선태는 "연기를 배워보니까 무용과 연기가 비슷한 맥락이 많다"고 했다.

애초 '돛닻'은 고양문화재단과 이곳의 상주단체인 간다의 협업으로 지난 11~14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0~21일 같은 장소로 미뤄졌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로 결국 일반 대중에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좀처럼 대중이 접하기 힘든 무용극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깝게 됐다. 간다는 지난 2016년부터 고양문화재단과 협업하며 '템플' 등을 선보여왔다. '템플'도 움직임이 중심이 된 극이었다. 무용극이 드문 대학로 대신 경기 고양에서 일반 관객의 순수한 피드백을 받는 것에 대해 민 연출은 긍정했다.

훗날 일반 관객의 피드백을 받게 될 '돛닻'의 제목은 바람의 힘을 이용해 배가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한 '돛', 배를 정박시킬 때 사용하는 '닻'에서 따온 것이다. 돛을 올려 바람을 타고 가는 가운데 닻을 내린 순간들을 돌아봤다. 이선태 개인의 삶이지만, 운명의 닻이 내려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공감대를 산다.

극 중에서는 한대수 원곡의 '행복의 나라로'가 울려 퍼진다. 모두가 반대하는 가운데, 이선태가 콩쿠르에서 선곡한 곡이다. "장막을 걷어라 / 나의 좁은 눈으로 / 이 세상을 떠보자 / 창문을 열어라 / 춤추는 산들바람을 / 한 번 또 느껴 보자 (…)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바다로 나가라, 저마다의 돛을 올리고 닻을 내릴 차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