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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차별·혐오 모두 깨는 아카데미…진화의 시작은?

등록 2022.03.30 05:23:00수정 2022.03.30 09: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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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가족 이야기 영화 '코다' 작품상

오스카, 다양성 포용 명확한 메시지 던져

아카데미 변화 2010년부터 본격 시작 돼

여성·인종·성소수자 장벽 서서히 부숴가

[클로즈업 필름]차별·혐오 모두 깨는 아카데미…진화의 시작은?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윌 스미스의 '급발진 폭력 사태'로 엉망이 돼버렸지만,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The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AMPAS)가 현재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대한 진보와 혁신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올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영화 '코다'의 작품상 수상이었다. 아카데미는 애플TV+ 오리지널 영화로 청각장애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코다'에 최고상을 주면서 두 가지 메시지를 명확하게 담았다.

하나는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선택함으로써 다양성을 최대한 확보하며 더 넓은 세계를 포용하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정식 극장 개봉을 하지 않은 영화를 고름으로써 극장용 영화 뿐만 아니라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OTT) 영화가 완전하게 주류 영화계에 진입했다는 걸 선언하는 것이었다. 이는 인종·성(性) 차별 등 문제로 뭇매를 맞고 보이콧 사태를 맞닥뜨린 골근 글로브, OTT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는 폐쇄적인 입장을 여전히 고수 중인 칸국제영화제와 비교할 때 아카데미가 얼마나 빠르게 세계 변화에 발맞춰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클로즈업 필름]차별·혐오 모두 깨는 아카데미…진화의 시작은?


아카데미의 이같은 변화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아카데미는 10여년 전부터 변화를 시도해왔다. 그건 문화·예술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장벽, 이를 테면 성(性)·인종·국적의 벽을 허무는 일이었다. 그 시작은 사실상 2010년 82회 시상식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가장 강력한 작품상 후보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였다. '아바타'는 역사적인 흥행 기록(총 매출 28억5000만 달러 전 세계 역대 1위)을 세운 것은 물론이고, 작품성과 기술적 완성도를 모두 갖춘 최고 수준의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캐스린 비글로의 '허트 로커' 손을 들어줌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감독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는 역사가 탄생했다(비글로와 캐머런은 한 때 부부였다).
[서울=뉴시스] 캐스린 비글로 감독.

[서울=뉴시스] 캐스린 비글로 감독.


'허트 로커'가 뛰어난 영화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아바타'가 기존의 아카데미의 성향과 더 잘맞는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이변으로 볼 만한 수상 결과였다. '허트 로커'는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를 그려냈는데, 이는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미국 사회의 피로를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점에서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격의 2010년 이후 3년을 조용히 보내 아카데미는 2014년 85회 시상식에서 또 한 번 역사를 썼다. 역대 최초로 흑인 감독(스티브 맥퀸)이 만든 영화('노예 12년')에 작품상을 준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미국 흑인 노예에 관한 이야기로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인종 차별에 대한 고발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었다. 아카데미는 이와 함께 감독상을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에게 줌으로써 멕시코 출신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도 함께 세웠다. 2010년에 성 장벽을 무너뜨렸다면, 2014년엔 인종 장벽을 허물었다고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카데미는 이듬해 시상식에서 역시 멕시코 출신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에 작품상을 줘 역대 최초로 멕시코 감독의 영화가 최고상을 받는 기록을 남겼다.
[서울=뉴시스] 영화 '노예 12년'의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영화 '노예 12년'의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 아카데미는 작품상과 감독상엔 명확한 메시지를 담은 수상 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2016년 88회 시상식 때 완성도는 높았으나 존재감이 약했던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작품상을 줘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열망을 담았다면(이 영화는 정론직필을 담은 기자 영화였다), 그 다음 해엔 흑인 감독이 만든 흑인 성소수자가 주인공인 영화 '문라이트'에 작품상을 줬다. 이번엔 인종을 넘어서 성소수자까지 끌어안은 것이다.

이런 기조는 2018년 90회, 2019년 91회 시상식에서도 이어졌다. 90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받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는 괴물과 사랑에 빠진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여성·노인·장애인·흑인·성소수자의 연대를 이야기했고, 91회 시상식의 작품상 수상작 '그린 북'은 흑인 성소수자 피아니스트와 이탈리아계 이민자 남성의 우정을 그린 영화였다. 또 감독상은 넷플릭스 영화 '로마'를 만든 알폰소 쿠아론에게 줘 OTT 영화에도 문을 열었다.
[클로즈업 필름]차별·혐오 모두 깨는 아카데미…진화의 시작은?


2020년 시상식은 아카데미가 또 한 번 새로운 시대를 연 행사였다. 오직 한국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 한국 연출가인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기생충'에 작품상과 감독상을 준 것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은 건 '기생충'이 처음으로, 이 사건은 아카데미가 아메리카와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포용한다는 걸 상징하는 수상 결과였다. 아카데미는 이듬해 또 한 번 아시아를 택했다. 중국의 클로이 자오 감독이 만든 영화 '노매드랜드'에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준 것이다. 동시에 자오 감독은 역대 두 번째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받은 여성 감독이 됐다.

이어 올해 시상식에선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OTT영화 '코다'에 작품상을 안김으로써 또 아카데미의 영역을 확장했다. 남우조연상 시상에 나선 배우 윤여정이 수어(手語)로 수상자를 발표하고 축하를 건네는 모습은 올해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클로즈업 필름]차별·혐오 모두 깨는 아카데미…진화의 시작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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