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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예방도 감시도 실패한 은행 내부통제

등록 2023.08.14 1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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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상저옥배(象箸玉杯)라는 말이 있다. 상아로 만든 젓가락이 생기면 옥으로 만든 술잔을 찾게 된다는 의미다.

요즘 말로 치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정도의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법이다. 그래서 통제와 규율이 필요한데 요즘 은행에는 이런 게 존재하는가 의문이다.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7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토록 많은 돈을 은행 직원 한 명이 빼돌릴 수 있었다는 데 놀랐다. 금융권 기준으로 횡령액이 역대 1위에 해당됐는데 이런저런 대책을 마련한다길래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은행 횡령 사건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경남은행에서 562억원의 횡령·유용 사건이 벌어져 또 놀랐다. 우리은행에 이은 금융권 역대 2위라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 KB국민은행에서 증권업무를 대행하는 직원들이 무상증자 관련 미공개정보로 주식투자를 해 가족과 지인까지 127억원을 챙긴 사실이 밝혀졌다. 다음날에는 대구은행 직원들이 실적을 높일 목적으로 고객 몰래 증권계좌를 하나씩 더 만드는 식으로 1000여개가 넘는 불법 계좌개설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정도면 과연 은행에 내부통제란 게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만하다. 우리은행 횡령 사건에서 뭘 배웠나 싶은 의문도 함께 말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은행들은 이웃집에서 일어난 사고를 보고도 자기 집 단속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경남은행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관리를 무려 15년 간 동일인에게 맡겼다. 장기근무자의 순환근무칙, 고위험 업무에 대한 직무 분리 등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은행과 대구은행의 경우도 각각 중요 미공개정보와 고객정보를 다루는 직원들에 대한 통제·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금융당국이나 검찰이 알려주기 전까지 이들 은행은 문제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사전 예방도 사후 감시도 모두 실패한 셈이다.

경남은행은 2016년 8월부터 횡령이 있었는데도 몰랐다가 검찰이 해당 직원의 다른 범죄혐의에 대해 수사에 나서고 금감원이 즉시 자체감사를 지시함에 따라 횡령을 알아챘다.

국민은행 직원들의 미공개정보 주식투자도 금감원의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과정에서 적발됐다. 대구은행의 불법 증권계좌 개설은 자신도 몰랐던 계좌가 추가 개설된 고객의 민원 접수로 밝혀졌다.

은행의 이익은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관리하는 데서 비롯된다.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을 굴려 이익을 내는 게 은행이다. 은행이란 업종에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런데도 남의 돈 수백억원을 빼돌리고 고객이 알려준 미공개정보와 개인정보로 사익을 추구한 은행 직원들이 있다.

인간이야 욕심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쳐도 이를 통제하고 규율해야 할 시스템이 또 실패해서는 안 된다.

조직문화, 직업윤리, 임직원 의식 개선, 강력한 제재 등 해법이 무엇이든 간에 은행에서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강력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확립하기를 바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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