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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막아줄 기술 있어도…임상 못해 '빛' 못보는 아이들

등록 2023.12.31 17:01:00수정 2023.12.31 17: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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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망막질환 치료제 개발 원천기술 확보

막대한 임상비용·까다로운 규제 '걸림돌'

[서울=뉴시스]서울 실로암안과병원 청주맹학교 봉사활동 모습. (사진= 뉴시스DB) 2023.12.3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서울 실로암안과병원 청주맹학교 봉사활동 모습. (사진= 뉴시스DB) 2023.12.3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 김모(28)씨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선천성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안구수축 등 합병증을 막기 위해 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면서 스테로이드제를 장기간 복용하게 되면서 언어 등의 발달지연까지 겪었다.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유전력 때문에 혹시 자녀에게 질환이 대물림되지 않을까 임신을 망설이고 있다. 김씨는 유전자 치료나 유전자 교정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선천망막질환은 소아 실명의 주원인이다. 가족 삼출성 유리체망막병증(FEVR), 각막혼탁, 망막층간분리, 선천성 녹내장, 레버르선천성흑암시(LCA)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가 소아 실명의 주원인인 선천망막질환 소아를 위한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원천기술(유전자 교정 기술)을 확보한 지 2년이 넘었지만 막대한 임상시험 비용과 까다로운 규제에 막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단재생바이오법)’ 개정과 규제 완화,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행정안전부의 온라인 청원 시스템 '청원24'에는 "유전자 변이가 다양한 희귀·난치 안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유전자 치료제 임상시험과 상용화를 위한 정책과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에는 지난 30일 기준 1800여 명(오프라인 서명 1100명 포함)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선천성 안질환 유전자 세포·치료센터 설립이 필요하다"며 "또 신생아 필수 검사에 선천성 대사이상 선별검사, 청력 검사뿐 아니라 안저 검사도 포함시키고 무료 검진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이미 선천망막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임상시험 비용이 수십억 원에 달해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임상 데이터를 쌓기 어렵다는 점이다.

김정훈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팀은 2021년 동물 실험을 통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4세대 프라임 기술(DNA 이중가닥 중 한가닥을 잘라내 손상된 DNA를 대체할 다른 DNA로 변환하는 기술)'로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다. 선천망막질환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잘라내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 치료제 개발을 위한 원천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연구팀은 체내 유전자 교정 약물 전달체인 아데노부속바이러스(AVV)를 준비해 이르면 내년 임상시험을 진행해 2년 후 환아에게 투여한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소아 희귀·난치 안질환을 연구하는 김 교수는 “식약처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허가를 받으려면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AVV 전임상 시험(동물실험)을 다시 진행해 결과를 제출해야 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AVV 생산 비용은 25억 원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선천망막질환 치료제 개발을 앞당기려면 미국 식품의약국(FDA)보다 까다로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시험 계획(IND) 승인 조건도 완화될 필요가 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치료법은 첨단재생바이오법에 따라 보건복지부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심의위원회에서 승인을 받았다 하더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다시 심의를 받도록 돼 있다.

김 교수는 “식약처로부터 임상시험 허가를 받으려면 인체실험에 투입되는 약물보다 3~4배 많이 들어가는 동물실험을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환우회는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에 대한 재정 지원이 담긴 '첨단재생바이오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8월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에 소요되는 비용의 지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현재 복지부 산하 국가신약개발재단의 지원 규모는 연간 약 14억 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의 연구비 규모는 연간 11억여 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주혁 환우회 대표는 "개정안은 첨단재생의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군을 확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면서 "이번 임시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소아 희귀난치안과질환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재생바이오법은 줄기세포나 유전자 치료 등 첨단재생의료를 활성화하고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20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지난 18일 법사위는 더불어민주당 이용우·전혜숙·신현영 의원과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최근 대표발의한 첨단재생바이오법 개정안 4건을 심사했고, 보건복지위원회는 이틀 뒤 이를 통합·조정한 대안을 마련했다.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첨단재생의료 임상 연구의 대상자 제한을 폐지하고, 첨단재생의료 치료를 허용하되 치료 대상자 및 위험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허용해 첨단재생의료의 안전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했다"면서 "첨단재생의료 임상 연구에 대한 재정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등 종합적인 제도 개선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우회는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첨단재생의료 관련 정책을 체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조직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유전, 원인불명 등으로 시력을 잃은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유전자 가위 치료제밖에 없다"면서 "국회와 과기부, 복지부, 식약처 등 관련 부처, 의료 전문가 등이 정기적으로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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