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에 숨어있더라"…서울 38세금징수과, 그들의 별별 사연[인터뷰]
2001년 출범…추징 세액만 4조659억원
밖에서 '세탁기 돌려볼까' 하니 바로 나와
체납자가 밀쳐 3~4m 뒤로 날라가기도
1억 체납 교수, 가보니 펜트하우스 살아
"언젠간 우리가 간다. 미리 납부하시라"
생계형 체납자들에겐 재기 기회 주기도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영등포구청, 38세금징수과 관계자들이 지난해 3월3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시내 한 아파트단지에서 체납차량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2023.03.30. [email protected]
지난달 30일 뉴시스와 만난 임채선 조사관은 출범 초기인 2003년 처음 38세금징수과와 연을 맺었다. 중간에 다른 보직을 맡았던 시기를 제외해도 경력 10년 이상이 넘는 베테랑이다. 임 조사관은 "38세금징수과는 일반 자치구에서 징수하지 못한 10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들을 인수해 집중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그동안 38세금징수과가 받아낸 세금은 총 4조659억원. 서울시 1년 예산 10% 수준으로, 한 해 1800억원 가량을 징수한 셈이다.
공평과세를 위한 이들의 노력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배우 마동석 주연의 드라마 '38사기동대'(2016년)는 당시 OCN 자체 제작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국세청과 타 지자체 전담조직 신설도 38세금징수과의 영향이 컸다.
38세금징수과는 총 5개팀으로 구성된다. 징수를 전담하는 4개팀과 이들의 활동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총괄팀이다. 25명의 체납 조사관은 일단 타깃이 정해지면 다양한 방법으로 징수 활동을 진행한다. 사업장 명의와 위장 여부, 거주지 및 명의 확인은 기본이다. 채권, 분양권, 출자증권, 특허권 등 체납자의 모든 재산 관련 정보를 일일이 들여다본다.
서류 만으로 은닉 재산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임 조사관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은 한계가 있다. 동산은 서류에 잘 나와있지 않아 현장 조사가 필수다. 재산이 없는 것으로 적혀 있어도 좋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가서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부유한 형편임에도 고의로 체납하는 경우엔 동산압류를 실시한다. 조세정의를 실현하려는 조사관들과 한 푼도 내놓지 않으려는 악질 체납자들과의 본격적인 대결이 막을 올리는 것도 이때다.
임 조사관은 "단골메뉴는 위장이혼과 현금을 집에 두고 있는 경우다. (고액 악질 체납자들은) 보통 금고를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그 경우에는 금고가 아닌 싱크대 밑이나 이불장, 화장실 환풍기 등을 살펴본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임채선 서울시 38세금조사관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서울시서소문청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1.30. [email protected]
결국 이 교수는 체납액 1억1600만원을 1주일 만에 완납했다. 김 조사관은 "만일 우리가 가서 압박하지 않았다면 계속 조금씩 내면서 납부를 회피했을 것"이라고 떠올렸다.
주변인들의 제보는 체납자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임 조사관은 "집에 갔는데 위장 거주지인 것 같아서 철수한 적이 있다. 나중에 그 사람이 '세탁기에 숨어 있었는데 바보 같은 놈들이 못 찾더라'고 말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면서, "이야기를 듣고 다시 갔는데 그때도 세탁기에 숨어있더라. 찾는 척을 하다가 우리끼리 '세탁기를 한 번 돌려보자'고 말하니 잽싸게 나오더라"고 말했다.
물리력을 사용해 끝까지 저항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은 언제나 곤혹스럽다. 체납자의 과격한 행동은 경찰에 신고를 요청할 여유조차 없는 찰나에 발생한다.
김 조사관은 "구청장 선거에 출마했던 이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간단한 가택수사를 한다고 했더니 '나는 당신과 말할 레벨이 아니다'라며 흥분하더라. 야구배트로 식탁을 치고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다. 나를 밀치는 바람에 3~4m 뒤로 날라가기도 했다. 나중에는 가위로 가스밸브를 끊으려고 해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결국 자기도 좀 미안했는지 세금을 일부 납부했다"고 말했다.
모든 체납자가 악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38세금징수과는 가족들의 돈을 모두 끌어 썼는데 사업에 실패했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불법을 저지르게 된 '생계형 체납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임 조사관은 "이런 유형의 소액 체납자들은 재기의 가능성이 있기에 압류를 해지해주거나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들을 연계해준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김현중 서울시 38세금조사관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서울시서소문청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1.30. [email protected]
초창기에 비해 시스템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각 기관 간 협조가 물 흐르듯 이뤄지는 구조는 아니다. 법원과의 업무 공유는 아직이고, 은행들은 개인정보를 이유로 협조에 소극적이다. 김 조사관은 "우리 입장에서는 원활한 협조가 필요하다. 기관들이 공익성을 갖고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조사관들을 지탱하는 힘 중 하나는 '사명감'이다. 한때 38세금징수과에서 유행했던 '남들이 안하면 우리가 한다'는 건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임 조사관은 "동산 압류를 할 때는 악성 체납자들도 '이제 올게 왔구나'라고 인지하고 있다. 부서의 강령처럼 우리는 끝까지 추적한다. 언젠가는 우리가 가니깐 미리 세금을 납부하시고 마음 편하게 사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조사관은 "내가 한 번 이 나라의 새 역사를 써보자는 자부심과 끈질기게 한 번 더 보자는 마음으로 근무했다"면서 "후배들이 잘 배우고 있어 노하우가 잘 전달될 것이다. 앞으로 (후배들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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