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기자수첩]靑에도 요구되는 '성신지교(誠信之交)'

등록 2015.11.05 15:28:40수정 2016.12.28 15:51:5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기자수첩용

【서울=뉴시스】정일환 기자 = 3년 6개월만에 지난 2일 열렸던 한일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던 예민한 사안들이 일본측을 통해 잇따라 알려지면서 우리 정부의 태도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민감한 사안들을 연이어 꺼냈고, 한국측의 대응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외신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중대사안인 여러 내용들이 정부가 아닌 상대국 인사들의 입을 빌려 확인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한일 두 정상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조속히 타결하기 위한 협의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경제협력에도 관심을 보였다. 

 청와대 발표는 여기까지였다.  

 아베 총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비밀에 부쳐졌다. 청와대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회담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는다"는 대답과 함께 함구로 일관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한일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일본 언론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세부적 내용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 등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안을 아베 총리가 대부분 언급했다는 것이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관방 부장관은 "아베 총리가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 (인공섬 주변에 함선을 보낸) 미군의 행동은 국제법에 합치하는 것이라 말했다"면서 "열려 있고 자유로운 바다를 지키도록 한국이나 미국과 연대하고 싶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하기우다 부장관은 "박 대통령이 일본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까지 말했다.

 그는 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와 박 대통령 명예 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문제 등의 얘기도 꺼냈다고 소개하면서 "아베 총리가 할말 다 했다"고 전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 측 브리핑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비판여론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뒤늦게 불끄기에 나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아베 총리의 발언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중국해 문제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규범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고 부연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이나 가토 전 서울지국장에 관해서는 여전히 설명이 없었다. 

 우리 국민들은 이런 민감한 사안들을 정상회담을 한 상대방 국가의 관료들 입을 통해 듣고 이를 정부인사들에게 확인하는 정상적이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처럼 '할말 다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성신지교(誠信之交)'를 언급했다. '진실된 마음'을 뜻하는 고사성어로 서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진실을 가지고 교제한다는 의미다. 

 '진실된 마음'은 비단 외교에만 국한된 수단이 아니다. 정부가 국민과 진실되게 교감하기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이같은 사실을 청와대 역시 깊이 새겨야 할 일이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