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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헬조선' 소녀들이 분투하는 법

등록 2016.03.16 09:38:26수정 2016.12.28 16: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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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문화부 기자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악채널 엠넷의 걸그룹 육성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은 미디어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헬조선' '금수저' '서열' '군대문화' '몰개성' '관음'…. 프레임 하나만 가져다 써도 비판할 것이 산더미다. 큰 품 들이지 않고 고상한 척하기에 딱이다.

 연습생들의 인성을 평가하는 몰래카메라는 물론 잔인했다. 의리가 있는지 알아본다며 연습생과 단 둘이 인터뷰를 하던 작가가 ENG 카메라를 망가뜨리는 상황을 연출, 공포와 극한으로 몰아가는 건 최소한의 품격에서도 벗어났다.

 '프로듀스 101'은 그럼에도 연습생들에게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성격이 부정적으로 규정되더라도 이들을 동정하거나 희생양으로만 그리는 건 경계한다.

 헬조선 속으로 당당히 뛰어든 소녀들이다. 이미 '프로듀스 101' 합류 전부터 지난한 대한민국을 경험했다. 연습생만 10년 넘게 한 소녀, 이미 데뷔했으나 쓴 맛을 본 소녀. 프로그램 밖은 더 지옥이다. 데뷔 만이라도, 아니 무대에 만이라도 오르길 바라는 이들에게 이런 프로그램은 또 하나의 기회다.  

 오디션 형식의 모든 프로그램은 성장 드라마다. 초기에 노래, 춤 모두 엉망이던 김소혜가 '프로듀스 101'의 드라마 하나를 쓰고 있다. '엠넷의 딸'로 통하며 출연 분량 시비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중심에는 누군가 있어야 한다.

 PD의 시선이 한정적일 수 있지만, 모든 연습생들을 골고루 담는 것은 상업 프로그램의 본질에서 벗어난다. 자본주의 사회다. 잔인하지만 소녀들은 일찌감치 이 구조 안으로 들어왔다. 톱11에 들지 못해도 소녀들은 무럭무럭 성장할 것이다. 황수연은 최근 평가에서 35인 안에 들지 못했지만 포미닛의 '핫이슈' 무대에서 눈도장을 받았다. 그녀는 이에 힘 입어 꿈을 계속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똑같은 옷을 입고 칼군무를 추는 아이돌의 획일화를 지적한다. '프로듀스 101'은 이런 흐름을 철저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소녀들은 그 안에서도 자기 개성을 찾느라 늘 분주하다. 몇 초 안 되는 자신의 솔로 무대에서 자신만의 동작, 표정을 찾느라 밤새 고민한다. 그녀들을 성원하는 팬들은 기가 막히게 각자의 매력을 알아낸다. 저 맨 아래 F반 소속 연습생이더라도 팬이 있으며, 그들은 연대한다.

 '프로듀스 101'에서 연습생들이 우는 장면을 많이 보지 않았으면 한다. 소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밝게 뛰어다녔으면 한다.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님'이라고 부르며 90도 인사하는 대신 조금 더 당당하게 '픽 미'를 외쳤으면 한다.

 누구나 직장에서, 사회에서 '픽 미'를 입에 달고 산다. 헬조선이라고 입으로만 비난하고 스스로는 외면할 것인가. 소녀들도 저렇게 헬조선에서 열심히 분투하는데. '프로듀스 101'은 그 헬조선의 수많은 문들 중 하나다. 소녀들도 안다. 이 문 밖에서도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이라고 노래할 것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문화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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