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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 '온양행궁' 대원군 별장 탕실 사진 공개

등록 2017.06.29 15: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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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뉴시스】이종익 기자 = 충남 아산의 순천향대학교는 아산학연구소가 28일 오후 ‘세종 온양행궁에 대한 재조명’을 주제로 역사포럼을 개최하고 1906년 촬영된 대원군 별장 탕실 사진을 공개했다.  '뜨거운 온천 옆에서 찬 물이 솟아나와 세조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신정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가운데 사진 왼쪽 앞 기와지붕의 ‘신정비'가 온양관광호텔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 2017.06.29. (사진=순천향대 제공) photo@newsis.com

【아산=뉴시스】이종익 기자 = 충남 아산의 순천향대학교는 아산학연구소가 28일 오후 ‘세종 온양행궁에 대한 재조명’을 주제로 역사포럼을 개최하고 1906년 촬영된 대원군 별장 탕실 사진을 공개했다.   '뜨거운 온천 옆에서 찬 물이 솟아나와 세조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신정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가운데 사진 왼쪽 앞 기와지붕의 ‘신정비'가 온양관광호텔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 2017.06.29. (사진=순천향대 제공) [email protected]

【아산=뉴시스】이종익 기자 = 충남 아산의 ‘온양행궁(溫陽行宮)’이 대원군 집권 시절에 온천별장으로 사용하는 등 조선
시대의 독특한 온천문화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점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이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왕이 온천을 찾은 '온양행궁'의 모습은 사도세자가 다리에 난 질병 치료를 위해 8일 동안 머무른 '온양행궁전도'가 규장각에 그림으로 남아있을 뿐 사진으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순천향대학교는 아산학연구소가 28일 오후 ‘세종 온양행궁에 대한 재조명’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김일환 아산학연구소 교수가 1906년 촬영된 대원군 별장 탕실 사진을 공개했다고 29일 밝혔다.

 김 교수는 "당시 사진은 주 일본 독일대사관 무관인 보병 중위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Hermann Gustav Theodor  Sander, 1868~1945)가 1906년 8월 러일전쟁 격전지 조사를 위해 사할린을 시작으로 9월에 한국을 방문해 한반도의 변화 확인 차 일본사진사와 동행해 온양을 지나가면서 촬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사진은 보관해 오던 손자 슈테판 산더(Stefan Sander)가 2004년 한국에 기증한 것으로 여러 사진 가운데 첫눈에 온궁 관련 사진임을 알고 발견했다”며 "사진 위쪽의 기와집은 대원군 집권 시절에 온천별장으로 사용된 12칸의 탕실모습으로 나중에 일본이 탈취한 후 일본인 전용 온천영업장으로 개조됐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역대 조선왕실의 온행기록에 따르면 이곳에 1483년 세조의 정희황후는 57일간 체류했고, 1750년 영조는 8일간 머물렀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며 "온양은 역대 국왕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고의 왕실온천지였기에 온궁의 건립과 축조, 운영이 조선말까지 지속된 곳은 온양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온양관광호텔에는 '뜨거운 온천 옆에서 찬물이 솟아나와 세조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신정비를 세웠다'는 ‘신정비'와 '정조는 사도세자가 활을 쏘았다고 알려진 자리에 영괴대를 세웠다'는 '영괴대'가 보존돼 있다.

 김 교수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정유재란 때 왜병이 온양지역을 급습하자 불타고 폐허가 됐다"며 "조선 후기 현종 때 온양행궁을 약 100여 칸으로 복원돼 숙종, 영조, 사도세자까지 4대에 걸쳐 국왕의 온양온천행은 활발해졌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국왕의 임시거처로 행궁을 건축, 이것을 온궁(溫宮)이라고 하는데, 국왕이 찾아가는 온천마다 행궁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온양은 역대 국왕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고의 왕실온천지였기에 온궁의 건립과 축조, 운영이 조선말까지 지속된 곳은 온양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온천지로써 확대된 것은 조선초기 태조부터 조선 말기 대원군까지 국왕을 비롯한 최고 권력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온천지가 됐고 세종이후 왕실가족까지 찾는 최고의 온천장으로 자리잡으며 이 지역의 독특한 온천문화를 낳은 바탕이 됐으며 독특한 한국온천문화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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