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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암매장 추정 '옛 광주교도소는 어떤 곳'

등록 2017.10.18 10: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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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5·18기념재단과 증언자들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에서 5·18 당시 암매장 장소를 찾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2017.10.18. hgryu77@newsis.com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5·18기념재단과 증언자들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에서 5·18 당시 암매장 장소를 찾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2017.10.18.  [email protected]


 재단, 증언 토대로 현장 조사 뒤 발굴 작업 추진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들을 암매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광주교도소 안팎에 대한 현장 조사와 발굴 작업이 추진되면서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관심도 모아지고 있다.

 18일 5·18 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옛 광주교도소는 5·18사적지 22호로 1980년 5·18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의 주요 격전지이자 민주·인권 투사가 투옥돼 고문당하던 장소이다.

 광주교도소에는 5·18 당시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들이 주둔했다.

 1980년 5월18일 31사단 96연대 제2대대가 지키고 있다가 21일 오후 5시30분께 전남대에서 철수한 3공수여단으로 교체됐다.

 광주교도소 부근 민간인 희생자 대부분은 3공수여단이 머무는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3공수여단은 담양·곡성 방면으로 가는 고속도로와 국도 입구를 차단하고 시위 차량은 물론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차량에까지 총격을 가했다.

 당시 광주·전남 지역민들은 항쟁 피해 상황을 다른 지역에 알리고, 무기 획득과 지원자를 모집하기 위해 고속도로에 진입하려다가 총격을 당했다. 귀가하는 과정에 무차별적인 진압을 당한 시민들도 있었다.

 실제로 80년 5월21일 담양군 대덕면의 한 마을 주민 고모(39)씨와 임모(35)씨는 광주에서 벽지를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계엄군의 집중 사격으로 숨졌고, 교도소 앞 고랑에 암매장됐다.

 같은 날 오후 3공수여단은 전남대에서 포승줄로 붙잡은 시민군들을 트럭에 태워 광주교도소로 이송하던 중 최루탄을 터뜨려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22일에는 트럭을 몰고 아내·막내딸과 함께 진도군 자신의 집으로 향하던 김모(46)씨 일가족이 광주교도소 근처 진입로로 빠져나가려다 계엄군의 총에 맞았다.

 3공수여단은 21일 오후부터 24일 오전까지 교도소에 주둔하다가 이후에는 상무충정작전 준비를 위해 20사단 62연대와 교대했다.

 5·18 직후 교도소 관사 뒤편에서는 시신 8구, 교도소 앞 야산에서는 시신 3구가 암매장 상태로 발견됐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80년 5월31일 '광주사태 진상 조사' 문건에는 이른바 '교도소 습격 사건'으로 민간인 27명(보안대 자료 28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16~17명의 신원과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최소 52명이 교도소 내에서 사망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1989년 기무사령부 511분석반이 작성한 '광주교도소 사체 암매장 신고상황 종합검토보고'와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2007년)의 '면담보고서'에는 암매장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근에는 광주교도소로 이송된 중상자들이 의료 인력 부족 등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사라졌다는 전직 교도관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재단은 5·18 항쟁 기간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재소자를 통해 교도소 내부 암매장 장소에 대한 증언을 확보했다.

 또 5·18 때 광주교도소에 주둔했던 3공수여단 부대원이 남긴 메모에서 암매장 관련 약도를 찾았다. 약도로 표시된 곳은 교도소 밖, 법무부 소유 땅이다.

 한편 광주교도소는 1971년 북구 문흥동 10만6000여㎡의 부지에 건립됐으며, 2015년 10월 삼각동으로 옮겼다.

 80년 5월에는 2700여명의 재소자가 수용돼 있었고, 교도관 322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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