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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황정민, 무대는 배우의 예술 증명했다…'리차드 3세'

등록 2018.02.12 09: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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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황정민, 연극 '리차드 3세'. 2018.02.12. (사진 = 샘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황정민, 연극 '리차드 3세'. 2018.02.12. (사진 = 샘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황정민의 연기는 언뜻 봐도 중노동이었다. 러닝타임 100분 내내, 허리를 구부정하게 수그리고 한쪽 팔·다리를 뒤튼 채 어긋난 걸음을 걸어야 했다. 끊임없이 속사포처럼 터지는 대사까지, 작품의 7할 이상은 그의 몫이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 작품이 원작인 연극 '리차드 3세'에서 황정민은 '무대는 배우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1000만 영화 '국제시장' '베테랑'을 통해 영화계의 국민배우로 통하는 그는, 10년 만에 돌아온 연극 무대에서 생생한 몸을 통해 그 어떤 악한보다 더한 악역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작품은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인 실존 인물 리처드 3세(1452~1485)가 주인공이다. 1455~1485년 사이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왕권을 놓고 벌인 영국의 내란 '장미전쟁'이 배경. 랭커스터 가문은 붉은 장미, 요크 가문은 흰 장미를 문장(紋章)으로 삼았다.

태생부터 뒤틀린 몸을 갖고 태어난 리처드 3세는 뛰어난 언변과 권모술수, 유머감각, 탁월한 리더십으로 경쟁구도의 친족들과 가신들을 모두 숙청하고 권력의 중심에 서는 희대의 인물로 통한다. 태생부터 뒤틀린 몸처럼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그간 사이코틱한 성격이 강조됐는데, 승자의 입장으로 기록된 역사에서 패배자였던 리처드 3세에게 덧씌워진 악한 이미지라는 시각이 최근 학계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는 1485년 최후의 일전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다.

황정민은 이 역에 슬픔 연민 심지어 동정, 즉 페이소스를 불어넣는다. 극에서 자세히 설명이 되지는 않지만 태생부터 삐뚤어진 그의 마음에 악이 어떻게 똬리를 틀었으며, 분노와 욕망이 어떻게 몸에 아로새겨졌는지가 황정민에게 자연스럽게 보인다.

【서울=뉴시스】 황정민, 연극 '리차드 3세'. 2018.02.12. (사진 = 샘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황정민, 연극 '리차드 3세'. 2018.02.12. (사진 = 샘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특히 리처드 3세가 최후의 죽음을 맞기 전 악몽에 시달릴 때 그에 대한 애처로움은 황정민의 공이 크다. 자신의 형들인 에드워드 4세, 조지와 자신의 추악한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켜줄 거라 믿어 구애했던 아내 앤 등 그의 손으로부터 시작된 피비린내 나는 죽음의 희생양들이 리처드 3세를 둘러쌀 때 그의 마음은 물론 영혼까지 강펀치를 얻어맞고, 그 진동은 객석까지 이어졌다. 

"불만의 겨울이 가고 태양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여름이 왔다. 모든 것이 순리처럼 변하리라"라는 극 중 리처드 3세의 초반 독백이 마지막에 이르러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다. 약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던진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대표적인 부부 연극계 콤비인 서재형 연출과 한아름 작가는 은유로 넘치는 이 고전을 현대로 바싹 당겨왔다. 앤이 자신의 남편과 시아버지를 죽인 리처드 3세에게로부터 청혼을 받는 아이러니하고 결연한 순간에, 리처드3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부각시켜 웃음을 유발하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 등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무게감을 덜고 대중적인 호흡을 더했다. 폭설처럼 쏟아지는 원작의 저주의 으스스함은 덜어졌지만, 단지 셰익스피어가 먼지를 뒤집어쓴 과거가 아니라는 걸 강변했다.

마지막에 사뭇 장엄한 무대 사용도 눈길을 끈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장점 중 하나인 무대 깊숙한 뒤편 공간이 드러나면서 리처드3세의 수렁에 빠진 상황을 미장센으로 표현한 장면은 아득했다.
 
【서울=뉴시스】 황정민·박지연, 연극 '리차드 3세'. 2018.02.12. (사진 = 샘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황정민·박지연, 연극 '리차드 3세'. 2018.02.12. (사진 = 샘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황정민은 빤할 수 있는 커튼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저 무대 뒤편에서 구부정한 모습으로 달려오더니, 무대 앞쪽에 이르러서야 허리를 곧추 세우고 황정민으로 돌아왔다. CJ토월극장이 중대형 극장이라 마이크를 사용했지만, 시(詩)처럼 흘러나오는 독백은 귓속을 부담 없이 파고들었다. 여성 캐릭터들을 소화한 배우들도 돋보였다.

특히 남편과 아들을 모두 요크 가(家)에 뺏긴 비운의 왕비 '마가렛' 역의 스타 소리꾼 정은혜는 정극 연기에서도 주술 같은 존재감을 발휘했다. 마가렛 못지않은 비운의 왕비 엘리자베스 왕비 역을 맡아 6년 만에 돌아온 김여진, 기구한 운명의 앤 역으로 연극에 데뷔한 뮤지컬배우 박지연도 호연했다. 3월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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