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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어르신들의 새 사랑방된 '서울시민청'...세대간 화합 이끈다

등록 2018.05.30 10: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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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태극기 집회후 어르신 방문 급증

이동편해 종로 탑골공원에서 점차 옮기는 듯

어르신 프로그램 태부족 노년층 배려 필요

[스케치]어르신들의 새 사랑방된 '서울시민청'...세대간 화합 이끈다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서울시 시민청을 찾는 노인들이 부쩍 늘었다. 2013년 1월12일 개관 이후 요즘처럼 많은 노인이 시민청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는게 서울시 직원들의 설명이다. 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시민청을 찾았다.

 시민청은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1~2층에 있다. 시민청의 '청'은 관청 청(廳)이 아닌 들을 청(聽)이다. 시민청은 서울시 공무원들이 행정관청의 입장에서 꾸미는 장소가 아니다. 서울시민이 직접 만들고 가꾸는 공간이다. 시민청 운영자문위원회와 시민기획단이 시민청에서 이뤄지는 행사를 기획하고 선별한다. 시 공무원들은 보조역할에 그친다.

 지하 1층에는 각종 공연이 열리는 활짝라운지를 중심으로 시민을 위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공정무역가게 '지구마을'은 시민청을 방문한 시민에게 음료와 다과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서울 관련 도서와 서울시가 만든 책자를 판매하는 서울책방은 돌음계단 옆에 있다. 서울책방 옆에 있는 다누리매장은 사회적기업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다. 사회적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구입해 이들 기업을 키우고 싶다면 다누리매장을 찾으면 된다.

 지하 2층에는 작은 결혼식이 열리는 태평홀을 비롯해 음악회나 콘서트가 열리는 바스락홀, 회의를 할 수 있는 워크숍룸 등이 마련돼있다.

 시민청에서는 연중 활력콘서트, 바스락 콘서트, 토요일은 청(聽)이 좋아 등 공연과 한마음살림장 같은 시민장터, 애니매이션·사진·로봇·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기획전시와 대관전시가 끊이지 않는다. '누구나 예술가', 사랑방워크숍(도시사진전, 시민청영화제), 정책카페 등도 시민의 참여를 기다리는 행사들이다.

 성과도 컸다. 2013년 1월12일 개관 후 올해 초까지 935만여명이 방문했다. 하루 평균 5493명이 다녀간 셈이다.

 5년간 시민청에서는 ▲활력콘서트·사랑방워크숍·한마음살림장 등 23개 시민참여 프로그램 총 5332회 개최 ▲하객 100명 이내 평균 비용 700만원의 시민청 결혼식, 166쌍 부부 탄생 ▲동호회 작품 발표회, 토론회, 북콘서트 등 공간 대관 4009회 등 성과가 있었다.

 이름에 들을 청을 넣은 만큼 시민과의 소통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지하 1층에 설치된 시민발언대에서 시민 9743명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서울시정과 관련 민원·건의 발언 613건 중 69%인 422건(길거리 흡연 단속 강화, 청년창업 자금지원 조건 완화 등)이 시책에 반영됐다.

 이처럼 애초에 시민청이 시민 참여를 위한 공간으로 조성됐지만 그간 방문자중에  특정 연령층이 우세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노인방문자가 급속히 늘었다고 한다.

 노인 방문객이 급증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24일 낮 12시께 시민청을 찾았다. 지하 1층 중앙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평일 낮마다 열리는 활력콘서트가 이날도 어김없이 막을 올리고 있었다.

 중앙무대에는 국악기 대금을 든 연주자가 올라있었고 '활짝라운지'에는 관객 5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80~90%가 중장년 내지 노년층이었다.

 '감성대금'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는 송경호(46)씨가 무대에 올라 대금을 불었다. 송씨가 동백아가씨·황성옛터·칠갑산·진도아리랑 등 익숙한 곡을 연주하자 노인 관객들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다. 흥에 겨웠던지 빵모자를 쓴 한 노년 남성은 무대 앞까지 나와 춤사위를 선보였다.

[스케치]어르신들의 새 사랑방된 '서울시민청'...세대간 화합 이끈다

자리에 앉은 노인들은 연신 노래를 흥얼거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사진을 찍는 '신식' 노인도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스마트폰으로 바둑을 두면서 연주를 즐기는 이도 있었다.

 30분간 펼쳐진 1부 공연이 끝나자 '하나의 오카리나'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이경숙(57)씨가 무대에 올라 나머지 30분을 책임졌다.

 노인들은 오카리나 연주도 즐겼다. 김광석·노사연 등 유명가수의 곡이 연주되자 어깨를 들썩이며 스마트폰으로 공연장면을 촬영하는 등 즐거운 모습이었다.

 공연을 마친 이경숙씨는 "어르신들이 연세가 들어 어디 가실 데가 없다. 시민청은 그런 어르신들에게 휴식처가 되는 공간"이라며 "한 어르신은 내게 '활력콘서트가 하루 24시간 중에 1시간을 줄여준다. 그냥 줄이는 것도 아니고 행복을 안겨줘서 너무 좋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송경호씨는 "아무래도 관객 호응도가 중요하니 연령층에 맞춰서 7080세대가 오면 그들에게 맞는 음악을 연주한다. 노년층이 오면 트로트나 향수를 달래는 곡을 준비한다"며 "활력콘서트 시간대가 평일 낮 12시부터라 시청 직원이나 직장인이 지나가긴 하는데 일부러 찾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스케치]어르신들의 새 사랑방된 '서울시민청'...세대간 화합 이끈다

이날 오후 현장에서 만난 노인들은 시민청 시설에 대체로 만족감을 표했다.

 한 노인은 "노인네들 갈만한 곳 중에 어디에 이만한 곳이 있나. 방향제도 틀어주고"라며 "노인들이 내놓는 것이 없으면서 바라는 것만 많으면 되나"라고 말했다. 이인규(78)씨는 "얼마나 편리하고 좋냐. 이 정도로 편리하면 좋지. 더 바라면 지상낙원이지"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민청이 서울시 노인들을 위한 새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그간 서울 노인 사랑방 역할을 했던 곳은 종로에 위치한 탑골공원이었다. 탑골공원은 시내 중심에서 노인간 만남의 광장 역할을 톡톡히 해왔지만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으면 방문객이 급감하는 등 한계가 있었다. 반면 시민청은 지하에 있어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1호선 시청역과 지하도로 연결돼 이용하기 편리하다. 무엇보다도 탑골공원에는 없는 낮 12시 공연이 시민청에서는 매일 펼쳐져 노인들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시민청을 활용하는 노인들은 지난해 연말부터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광화문에서는 촛불집회가, 시청광장에서는 태극기집회가 열렸는데 당시 태극기집회에 참가했던 노인들이 시민청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후 이용객이 늘어난 것이다.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운영 담당자들에 따르면 작년에 태극기 집회 이후 어르신들이 이 공간을 알게 된 듯하다"며 "태극기 집회를 한창 할 때 노인들이 많이 왔다. 전시나 공연이 매일 있으니 구경하는 분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청이 탑골공원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일부 행사에서 노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모(89)씨는 "여기 온 사람들은 대개 독거노인이나 노숙인인데 활력콘서트에 나서는 시민청 예술가들이 자기 위주로 연주를 해버린다"며 "그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해도 우리는 모르는 곡이다. 대중적으로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는 노래를 선곡해서 연주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공연을 잘하는 사람이 무대에 설 때면 선곡을 잘 해와서 관객들과 같이 춤도 춘다. 선곡을 잘해서 대중적인 음악을 보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여기는 공연 대상이 노인들인데 자기만 놀다 가면 그게 무슨 활력콘서트냐"고 말했다.

 이모(78)씨는 "노인들 모아놓고 비트박스를 하면 그게 이치에 맞나. 듣기 싫어서 다 가버린다. 짜증나서 종로3가로 가버린다"며 "반대로 연주자가 옛날 노래를 하면 노인네들 혈색이 달라진다. 추억이 떠오르니까. 8대2 비율로 노인네들이 많으니 그런 것을 시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변모(81)씨는 "행사 좀 좋은 것 좀 해라. 매일 기타만 치지 말고. 흘러간 노래도 해야지. 춤도 추고 늙은이들 눈을 즐겁게 해줘야지"라며 "연주자가 기타 치면 노인네들이 보다가도 가버린다"고 말했다.

 
[스케치]어르신들의 새 사랑방된 '서울시민청'...세대간 화합 이끈다

일부 노인은 이처럼 노인 배려를 요구하지만 시민청이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 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여러 세대가 공존해야 할 공간이 노인만의 전유물이 되면 안 된다는 경계심 역시 존재한다.

 시민청이 노인을 비롯한 전 계층이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시민청이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으로 대변되는 우리 민주주의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할 절충지점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근혜 탄핵을 거치며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은 우리 사회 구세대와 신세대의 사이에서 시민청이 하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의견이 있다. 세대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흉흉한 소식이 잇따르는 요즘, 시민청이 세대간 화합의 씨앗을 뿌리길 바란다는 것이다.  

 시민청 관계자는 "시민청은 시민을 위한 열린 광장을 표방하고 있어서 행사 등을 할 때 연령대를 나누지 않는다"며 "어린이부터 어르신, 직장인과 관광객까지 누구나 와서 편안하게 공연을 즐기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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