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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이동 추석 '거리에 남겨진 아이들'

등록 2018.09.23 08: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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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뉴시스】이호진 기자 =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1일 밤 의정부시 행복로에 설치된 의정부시일시청소년쉼터 천막에서 청소년들이 상담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8.9.21. asake@newsis.com

【의정부=뉴시스】이호진 기자 =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1일 밤 의정부시 행복로에 설치된 의정부시일시청소년쉼터 천막에서 청소년들이 상담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8.9.21. [email protected]

【의정부=뉴시스】이호진 기자 =  “추석이요? 우리는 오히려 더 갈 곳이 없어서 싫어요”

 모두가 추석 연휴를 기대하며 퇴근에 바쁘던 지난 21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경기 의정부시 가능동의 한 골목에서 만난 임재성(가명·17)군은 어렵게 말을 건 기자가 추석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해 질 무렵 골목길 구석에서 만난 임군 등 일행 3명은 누가 봐도 앳된 청소년으로 보였지만, 연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꽤나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임군은 “추석은 둘째 치고 집 나온 지 벌써 1년이 넘었는데 집에 전화조차 한 적 없다”며 “어차피 집에 돌아가봤자 이제는 정말 아무도 없을 것 같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그는 “3년 전쯤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어머니가 짐을 챙겨 나가셨다”며 “그 뒤로 아버지가 술주정을 하며 물건을 던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주먹까지 휘둘러 결국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그 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임군의 1살 위 누나는 임군보다 먼저 집을 나갔지만, 종종 서로의 안부를 챙기던 누나도 휴대폰이 끊어진 뒤부터 연락이 안 되고 있다.

 옆에 있던 친구도 사정은 비슷했다. 임군과는 학교도, 살던 지역도 틀린 재윤(가명·16)군은 가족 간 불화로 인해 가출하기 전까지 반년 가까이 집에서 누구도 식사를 챙겨 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들의 추석 계획은 ‘PC방’과 ‘찜질방’, 그리고 ‘만화방’으로 압축돼 있었다.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기 때문에 식사와 수면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고른 것이다. 가까운 곳에 청소년단기쉼터가 있지만, 15명 정도 밖에 수용하지 못해 일찌감치 포기했다.

 임군은 “집을 나와 생활하는 애들은 명절이라고 해서 평소와 다른 것이 없다”면서도 씁쓸한 듯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임군 일행과 헤어진 뒤 연휴를 맞아 사람들로 가득 찬 의정부시 행복로로 향했다.

 거리를 가득 채운 인파 사이로 요즘 유행하는 시쳇말로 ‘아싸(아웃사이더)’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꽤 많이 보였지만, 누가 가출 청소년인지 구분할 방법은 없다.

 행복로 끝에 다다르자 의정부시일시청소년쉼터가 마련한 청소년 상담 차량과 이동형 쉼터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20~30명의 청소년이 상담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서 도망치지 않고 고민하고 해결하려 애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리에서 만난 전종수 의정부시일시청소년쉼터 소장은 “의정부시의 8만여 청소년 인구 중 37% 정도가 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배회하거나 가출한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으로 추정된다”며 “관련 기관은 물론,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포기하거나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족 대이동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닐 정도로 '가족'과 '귀향'의 느낌이 강한 추석이지만, 텅빈 거리에 남겨진 가출청소년들의 추석은 누구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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