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제천화재참사 1년①]불면의 나날…귓전엔 아직도 "살려주세요"'

등록 2018.12.17 09:33:41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제천=뉴시스】고승민 기자 =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엿새째인 26일 오후 사고현장 2층 여자목욕탕에 목욕용품과 세숫대야 등 물품들이 놓여 있다. 2017.12.26.  kkssmm99@newsis.com

【제천=뉴시스】고승민 기자 =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현장 2층 여자목욕탕에 목욕용품과 세숫대야 등 물품들이 놓여 있다.(사진=뉴시스DB)

【제천=뉴시스】이병찬 기자 = "나가는 문이 어디야…'콜록콜록'…앞이 안 보여…구조대는 언제 오는 거야…'콜록콜록."

 지난해 12월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4~6층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던 신모(47)씨는 갑자기 차오른 연기로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던 건물 안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

 자신과 함께 출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던 여러 사람이 계단에서, 헬스클럽 안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은 나중에 병원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겨우 창문을 찾아 건물 외벽의 손바닥만한 돌출부에 몸을 의지했다가 구조된 신씨는 자신과 함께 창문을 찾아 헤매던 사망자들의 절규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는 "눈을 감으면 자꾸 그때 일이 떠올라 한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지금도 누가 전등을 갑자기 켜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며 "어둡고 무슨 냄새가 나면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 처럼 한순간 어이없는 사고로 눈앞에서 가족 또는 지인을 잃은 유족이나 생존자들의 외상후 스트레스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죽음의 연기를 마시고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지만 부상자들에 대한 보상은 고작 160만원이었다. 탈출 과정에서 골절상을 입었던 부상자만 220만원을 받았다.
 
 호흡기나 정신적인 부상은 상해로 인정하지 않는 보상기준 때문인데, 이 마저도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보상금을 증액한 결과였다.

 제천시보건소는 생존자 32명과 유족 32명 등 64명을 월 1회 이상 전화 상담하며 관리하고 있다. 증세가 심한 유족과 생존자 8명은 비긴어게인과 내 마음의 비타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심리요법 치료를 받고 있다.

【제천=뉴시스】이병찬 기자 = 화재 참사 1주기를 앞둔 16일 늦은 오후 흰눈이 쌓인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인근 거리가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2018.12.16.  bclee@newsis.com

【제천=뉴시스】이병찬 기자 = 화재 참사 1주기를 앞둔 16일 늦은 오후 흰눈이 쌓인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인근 거리가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2018.12.16. [email protected]

가장 많은 외상후 스트레스 유형은 불면증이었다. 벌써 1년이 다 됐지만 당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부상자 2명은 아직도 불면증을 호소하고 있다.

 시 보건소 관계자는 "어두운 방 안에서 갑자기 불을 켜거나 사이렌 소리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과각성 증세가 많았다"면서 "올해 초중반까지는 증세가 심했지만 꾸준한 치료와 상담을 통해 상당히 회복된 상태"이라고 말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한 이후 스포츠센터 인근 하소동 상권은 붕괴됐다. 불야성을 이루던 제천 지역 '핫 플레이스' 중 하나였지만 빈 점포가 부쩍 늘었다.

 3층 상가를 소유한 박모(61)씨는 "2층 이상은 임대를 포기했고, 1층 점포도 가게를 옮긴다고 하는 걸 겨우 붙잡고 있다"면서 "대형 참사 때문인지 이 동네에 가게를 내려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인근에서 감자탕 전문점을 운영 중인 유모(46)씨는 "화재 때문에 전체적으로 매출이 30%이상 줄었다가 충북도와 제천시의 주변 상경기 부양 정책이 나오면서 조금 회복됐지만, 또 주저앉았다"며 "화재 이후 하소동 상권을 찾는 사람들이 준 데다 최근 경기침체까지 겹쳐 가게를 접으려는 상인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흉물로 남은 화재 건물의 신속한 처리가 상권 활성화 관건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제천시는 건물을 매입해 철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를 위해 시는 화재 참사 수습을 위해 쓴 예산 11억6000만원을 근거로 건물주 이모(53·구속)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 건물을 압류하고 경매를 신청했다.

 내년 초 건물과 부지가 법원 경매에 나오면 응찰해 소유권을 확보한 뒤 철거할 계획이다. 정부도 시의 스포츠센터 부지 활용 사업에 특별교부세를 지원하기로 한 상태다.

 부모 또는 형제를 잃은 유족의 고통도 아직도 그대로다. 유족 측은 부실한 현장대응으로 화를 키운 소방 지휘관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검찰은 "이들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

 【제천=뉴시스】이병찬 기자 = 지난 21일 화재가 발생한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1층 주차장 천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지상 9층 건물을 집어삼키고 있다. 소방당국과 29명 희생자 유족은 인명 구조와 화재 진압 우선 순위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2017.12.27.(사진=독자 제공)  photo@newsis.com

【제천=뉴시스】이병찬 기자 =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1층 주차장 천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사진=뉴시스DB)

이에 반발한 유족 측은 지난달 29일 항고했으며 재정신청도 준비 중이다. 소방지휘관 형사 처벌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향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등의 빌미가 될 수 있다.

 부실대응 여부를 조사한 충북지방경찰청 수사본부의 기소 의견에도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것은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국회는 지난 10월 충북도 국정감사에서 "제천 화재 참사는 국가 책임"이라면서 "(정부나 지자체가)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충북도는 사망자 1인당 평균 2억원의 추가 보상을 제시하면서 유족 측에 항고와 재정신청 등 법적 대응 포기를 요구하고 있으나 유족은 펄쩍 뛰고 있다.

 유족 대책위 관계자는 "보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현장 대응을)잘못해 인명피해를 키운 사람들을 처벌하라는 것"이라면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다는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사 당일 스포츠센터 지상 1층 주차장 천장에서 발화한 불로 2층 목욕탕에 있던 여성 18명이 숨지는 등 29명이 목숨을 잃었고 35명이 다쳤다. 

 부상자들은 물론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 또한 당국의 부실대응 참사를 키웠다는 비난 여론 수위와는 차이가 있다. 희생자 유족이 받은 보상금은 건물 화재 보험사가 각각 지급한 보험금 8300만~1억원, 제천시의 장례비와 시민 성금 등 6000만~7000만원 정도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