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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이영훈, 가장 달콤쌉싸름한 밸런타인데이

등록 2019.02.15 10:01:25수정 2019.02.15 10: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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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 ⓒ케이문에프엔디

이문세 ⓒ케이문에프엔디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그대는 한줄기 햇살처럼 흩어지는 나뭇잎사이로 / 내 품에 잠시 머물은 보라 빛 노을이었나."

'사랑은 한줄기 햇살처럼'은 노래 제명처럼 '한줄기 빛이 돼'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가수 이문세(60)가 작곡가 이영훈(1960~2008)과 협업해 1988년 발표한 앨범으로 '한국형 팝 발라드' 정점에 있는 5집에 실린 곡. '시를 위한 시'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등 굵직한 곡들이 대거 실린 이 앨범 속에서 은은하게 반짝였던 곡이다.

이문세가 밸런타인데이인 14일 오후 한남동 현대카드 언더 스테이지에서 연 이영훈 추모공연 '열한 번째 밸런타인데이, 친구 이영훈'에 운집한 160여명은 이 곡을 선물 받았다. 이문세가 콘서트에서 이 곡을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이 곡은 가수 이광조(67)가 1987년 발표한 9집에 먼저 실렸던 곡이다. 이영훈이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직접 이 곡을 부른 것을 들은 이문세가 이듬해 자신의 앨범에 담았다.

"영훈 씨가 세상을 떠난 지 11주기가 됐네요. (이영훈 기일이라) 밸런타인데이는 영원히 잊을 수 없어요. 초콜릿보다 더 달콤한 영훈씨 노래죠."

이날은 이영훈 기일 당일이다. 이영훈은 1980~90년대 주로 이문세와 호흡을 맞추며 숱한 히트곡을 탄생시킨 한국 대중음악의 간판 작곡가다. 1983년 데뷔해 두 장의 앨범을 내고 MBC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 DJ를 맡고 있던 이문세와 미술을 전공하고 연극계에서 음악을 맡던 이영훈이 처음 손을 잡은 건 이문세가 1985년 발표한 3집부터.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시작으로 세련된 창법과 멜로디의 곡들을 양산하며 하이틴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소녀' '휘파람' '그녀의 웃음소리 뿐' '광화문 연가' '시를 위한 시'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붉은 노을' '옛사랑' 등을 합작했다.

2006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이영훈은 2차례 수술을 거쳤으나 암세포가 위까지 전이되는 등 병세가 악화돼 2008년 2월14일 세상을 떠났다. 이문세는 "궁합이 잘 맞은 '음악 파트너'이자 가깝게 지낸 친구였어요"라며 돌아봤다.

이문세는 지난해 2월 동료음악가들, 팬클럽 마굿간과 함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영훈 10주기 헌정공연 '작곡가 이영훈'을 열었다. 이영훈의 노래를 경험하게 하고 청중을 고인의 동반자(同伴者)로 승격시킨 무대였다. 올해를 안식년으로 삼은 이문세는 이영훈 11주기를 홀로 기도하며 보내려 했다.

ⓒ케이문에프엔디

ⓒ케이문에프엔디

하지만 몇 날 며칠을 '거지꼴'로 라면만 끓여 먹으며 연습실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만들고 제목을 정하고 가사를 수정하던 때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소극장에서 당시 작업실 환경을 생각하며 이번 무대도 소박하게 꾸몄다.

이날 공연은 마치 라디오 공개방송 같기도 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DJ '별밤지기'로 인기를 누린 이문세는 이영훈과 자신의 인연뿐만 아니라 자신의 곡이 세상에 알려진 일화 등을 담담히 풀어냈다.

같은 MBC 라디오였으나, '별이 빛나는 밤에'와 동시간대 표준FM이 아닌 MBC FM에서 방송한 '밤의 디스크 쇼' DJ 이종환(1937~2013)을 추억했다. 당시 '밤의 디스크 쇼' 청취율이 높았는데 공개방송에 자신을 보조DJ로 세우고, 무대에도 올렸다고 했다. 3집 발매 전 수록곡인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통기타 하나로 먼저 선보인 무대도 이 공개방송이었다.

"당시 소녀들의 함성은 마치 5주 연속 1위를 한 듯했어요"라며 웃었다. 이후 '밤의 디스크 쇼'에서 이 곡을 첫 곡 또는 마지막 곡으로 자주 틀어줬고, 그것이 불씨가 돼 인기를 누렸다고 했다. "이문세 3집은 이영훈 씨, 이종환 선배님이 만들어주신 거였어요."

그러면서 3집에 실린 곡 중 한곡인 '소녀를 불렀다. 이문세뿐만 아니라 팬들은 과거로 자연스럽게 시간여행을 했다.

이날 공연의 관객들은 무료로 초대됐다.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사연을 남긴 이들 중 추첨을 통해 뽑았다. 이문세와 만나기 위해서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방송사 PD가 된 여성은 객석의 환호를 자아냈다. 이문세 노래를 좋아하던 부친이 돌아가신 뒤 이영훈 작곡가가 영면한 인근에 묻힌 사연은 뭉클함을 전했다. 고인의 아내인 영훈뮤직 김은옥 대표도 객석에 앉았다.

콘서트 관계자라면 한번쯤 보면서 구성을 익혀여 한다는 이문세 아레나 공연에서 주로 울려 퍼지는 '붉은 노래' 등의 노래는 이날 없었다. 하지만 '사랑은 한줄기 햇살처럼'을 비롯, 이문세 9집(1995)에 실린 '서로가' 등 평소 듣기 힘든 노래를 만날 수 있었다.

이영훈이 가수 유열(58)에게 먼저 전달한 노래로 이문세가 가수 이소라(50)와 함께 리메이크한 '슬픈 사랑의 노래'는 이날 이문세 소속사 케이문에프엔디 소속 신인 가수 김윤희(17)과 함께 불렀다. 김윤희는 2016년 SBS TV 음악 예능 프로그램 '판타스틱 듀오'에서 인연을 맺었다.

김윤희, 이문세 ⓒ케이문에프엔디

김윤희, 이문세 ⓒ케이문에프엔디

3월에 새 싱글을 발매할 예정인 김윤희는 이날 이문세의 대표곡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홀로 불렀다. 여리면서 청아한 음색이 일품이었다.

추모라고 침잠하라는 법만 있나. 블루스 풍의 그루브 타임이 이어졌다. '깊은 밤을 날아서' '애수' '빗속에서'가 연이어졌다. '빗속에서'는 객석의 합창도 있었다.

이영훈이 만든 노래는 어떤 장르든 그의 따듯함이 묻어난다. 이문세는 "그 따듯함이 배인 노래를 부른 저는 행복한 가수였고 이영훈 씨를 추억하고 기억하고 잊지 않은 이 시간이 귀해요"라고 말했다. "어디선가 이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 하시고 잘 계시겠죠. 언젠가 만나니까 토를 잘 닦아 놓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이영훈을 기억하고 있는 이문세는 '기억이란 사랑보다'까지 11곡을 불렀다.

이영훈 작곡가의 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 연가' 등 이 작곡가가 만들고 이문세가 부른 노래들은 다양하게 편곡됐고 변주됐고 리메이크됐다. 키보드, 피아노, 퍼커션, 기타 바이올린 등 5인 세션의 소박한 편성의 이날 공연은 그런데 어떤 무대보다 풍성한 추억을 안겼다.

현대카드 언더 스테이지는 주로 인디 뮤지션이 공연하지만, 2015년 11월 영국 싱어송라이터 엘턴 존(72), 2017년 영국 싱어송라이터 스팅(68) 등 팝스타들이 스탠딩으로 각각 500석과 400석 규모로 공연하기 했다. 이문세의 이날 공연은 두 팝스타 못지않게 켜켜이 쌓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노래'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이문세는 이날 팬들에게 고맙다며 막바지에 즉흥적으로 팬들과 악수를 제안했다. 아레나 공연장에 운집한 1만2000명이었다면 상상조차 못할 이벤트였지만 160명이라서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케이문에프엔디

ⓒ케이문에프엔디

악수만 하고 끝나는 걸 감안, 30분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팬들에게 이문세·이영훈과 얽힌 추억이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고 우느라 1시간이 훌쩍 넘겼다.

팬들 한명한명과 이야기를 나눈 뒤 만난 이문세는 악수를 즉흥적으로 제안한 것에 관해 "너무 고마워서"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세 곡 남긴 상황에서 오늘 이 공연이 너무 아쉽고 아까운 거예요"라며 먹먹해했다.
 
이날 마지막곡은 앙코르곡으로 들려준 '옛사랑'이었다. 이문세가 가장 아까는 곡 중 하나로 알려진 이 곡을 부르면서 그는 울음을 삼키는 듯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내 맘에 둘 거야 /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대로 내버려 두듯이". 이영훈과 팬들, 천상에 있는 자나 지상에 있는 자 모두에게 절대적인 위로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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