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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강효형 "한국 성향,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지만···"

등록 2019.05.14 10: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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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신작 '호이 랑' 안무

17, 18일 여수 초연

11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강효형 ⓒ국립발레단

강효형 ⓒ국립발레단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당연히 성숙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강효형(31)은 안무가로서 이미 다음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거기서 마중 나온 '한국적 발레'에 대한 고민과 이미 씨름 중이었다.

"안무가로서 아직 신인이에요. 계속 스스로 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강효형은 2015년 국립발레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를 통해 프로로서 처음 선보인 소품 안무작 '요동치다'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2017년 러시아 무용 시상식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가 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그해 초연한 국립발레단 '허난설헌-수월경화'를 통해 전막 발레 안무가로 데뷔했다. 허난설헌(1563~1589)의 시 '감우(感遇)'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남성중심의 가치체계가 지배한 시기에 섬세한 감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힘겹게 펼쳐낸 허난설헌이 한국 발레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했다는 평을 들었다.

17, 18일 전남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에서 초연하는 강효형의 두 번째 전막 발레 '호이 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이유다.

한아름(42) 작가·서재형(49) 연출 부부 콤비가 함께 하는 이 작품은 진취적인 여성의 성장 드라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으로 알려진 중국 여전사 화목란 같은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작가가 조선시대 홀아비와 살던 효녀로,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 군역을 맡는 '부랑'의 이야기를 발레 작품으로 옮겨냈다. 강수진(52)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도 이야기에 흡족해했다.

강효형은 이 단단한 뼈대에 살을 붙여 나갔다. "소녀의 몸으로 남장을 하고, 남성들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 쉽지 않은데, '호이랑'에서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사랑도 쟁취하죠. 보통 클래식 발레에서 발레리나의 춤은 여자답고 군무를 강조해요. '호이랑'에서는 반대로 남성들의 군무가 강조됩니다. 반면 여성은 투구를 쓰고 칼을 들고, 남성적인 느낌의 춤을 추죠. 하이라이트에서는 박진감이 넘칠 거예요. 24명의 복잡한 동선을 조정하는데 고민이 많았어요."

 '허난설헌-수월경화'와 '호이랑'의 작품 색깔은 상당히 다르다. '허난설헌-수월경화'가 순간의 이미지를 중시했다면 호이랑은 드라마에 방점이 찍혔다. 전작이 55분 남짓한 작품인 데 비해 이번 신작의 러닝타임은 85분가량이어서 더 긴 호흡의 조율도 필요하다.

 "한국적인 색채와 춤사위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 무브먼트에만 치중할 때, 더 쉬울 수 있거든요." 전작의 성공에 묻어가는 무사안일을 벗어난 당당함이다. "전작하고 180도 달라서 재미가 있어요"라고 한다.

강효형의 안무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한국적인 요소를 적극 내세워 '한국적인 발레' 운운하지 않는 세련된 태도다. 국악과 전통춤의 호흡법을 가미한 '요동치다'와 '빛을 가르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1936~2018)의 '침향무' 등을 삽입한 '허난설헌-수월경화' 등에서도 한국적인 오리지낼리티를 풍겼으나, 오리엔털리즘이 배어있지는 않았다.

 '호이랑'은 브람스, 홀스트, 차이콥스키 등 과감히 클래식 음악을 사용한다. 안무를 통한 시각적인 에너지뿐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역동적인 에너지를 담아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무엇보다 음악 찾기에 공을 들였지만 효과적인 음악사용을 위해 대본 작업에 공을 들였다. 오차를 줄이기 위한 수정을 거듭해서 8차례 작업했다.

 "한국적인 성향이 '허난설헌' 때만큼은 도드라지지는 않을 거예요. 대신 대본과 의상에서 동양미를 느낄 수 있었죠. 그런데 무엇보다 강수진 단장님과 얘기한 부분은 극사실주의적인 작품은 만들지 말자는 거였어요.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지만, 거기서 한국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거죠."

'허난설헌-수월경화' ⓒ국립발레단

'허난설헌-수월경화' ⓒ국립발레단

2009년 국립발레단에 들어온 강효형은 어느새 입단 10주년을 맞았다. 예전에는 슬럼프가 온 적이 없다던 그녀다. "파릇파릇한 패기 넘치는 때는 슬럼프를 겪을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호이랑'처럼 맡은 프로젝트가 커질수록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일이 많아지니 "예전보다 조금 더 신중해진다"고 털어놓았다. "잘 모르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예전에는 '내가 좋으면 된다'는 생각에 제 것을 최대한 구현하려고 했는데 갈수록 신중해집니다."

'호이랑'은 여수 초연에 이어 31일부터 6월1일까지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무대에도 오른다. 11월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공연한다. 그 때까지 작품에 대한 고민은 이어진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룰에 의해 본인이 내동댕이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길 때, 성숙이 따라온다. 두려움을 돌파해나가는 부분이 호이랑과 비슷한 듯하다. 그러자 표정이 더욱 결연해진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오차는 없을 수가 없죠. 그런 두려움이 저를 엄습하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어요. 이번에도 작업을 하면서 혼돈이 나타났지만, 그런 순간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실패가 쌓이면, 성장하고 성공한다'는 말이 있지만 강효형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안무가 롤'은 실패하면 끝이라고 잘라 말했다. "관객들이 티켓값을 지불하고 보는 공연이고, 국립발레단 소속이라는 책임감도 있죠. 현재 주변에 무겁지 않은 것이 없어요."

그러면서 "10년이 언제 갔나 싶어요"라며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제가 입단할 때 10년차 언니들이 '10년 금방 간다'고 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하하. 하루하루가 가는데 아쉽고 소중하고, 그래서 더 애틋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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