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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루비모프, 냉전시대 철의 장막 뒤 피아니스트

등록 2019.09.25 18: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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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마지막 내한공연하는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루비모프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09.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마지막 내한공연하는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루비모프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09.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러시아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루비모프(75)를 연주 잘하는 연주자로만 기억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는 냉전시대 철의 장막 뒤에서도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의 음악을 옛 소련에서 처음 선보였다.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 러시아 작곡가 알프레드 슈니트케 등의 현대작품의 초연을 이어갔다. 닫힌 체제에서 예술의 자유를 위해 맞선 신념가였던 셈이다.

25일 광화문에서 만난 루비모프는 "모든 예술은 자유를 필요로 합니다. 시스템의 체제, 한계를 벗어나 본질적으로 자유로워지려고 하죠"라고 말했다.

1960~1970년대 예술을 수단 또는 도구로 여겼던 옛 소련 시스템과 마찰음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루비모프는 서방의 음악을 소개한 원죄로, 한 때 출국 금지를 당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저 말고도 당시에는 시인, 미술가들이 그런(자유스러워지는) 노력을 했어요. 새로운 음악을 구상했던 단체가 제재를 받고 연주를 코 앞에 뒀는데 금지를 당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관객들의 눈은 호기심에 반짝였던 기억이 납니다. 일상에서 들을 수 없는 음악이니, 그들의 세계가 확장될 기회였던 것을 알았던 거죠. 80년대가 지나 서방의 음악이 (러시아에서) 알리는데 선구자적인 역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루비모프의 예술적 확장은 단지 냉전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1992년 케이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러시아 TV에서 고인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의 음악세계를 조명했다. 2012년에는 '존 케이지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마지막 내한공연하는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루비모프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09.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마지막 내한공연하는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루비모프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09.25. [email protected]


이렇게 자유로운 루비모프를 '러시안 피아니시즘의 살아있는 계보'로만 한정하는 것도 부당해 보인다.

루비모프는 러시안 피아니시즘의 최고봉인 '러시안 스쿨'의 창시자 하인리히 네이가우스를 사사했고, 1963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 피아니스트 겐리히 네이가우스와 레프 나우모프에게 배우기는 했다. 겉보기에 러시안 피아니시즘의 단계를 밟아왔다.
 
하지만 루비모프는 "저는 늘 전형적인 러시안 스쿨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면서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어깨를 강조하고 몸을 사용하는 파워풀한 러시아적인 연주 스타일에서 멀어지려고 노력을 해왔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마지막 내한공연하는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루비모프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09.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마지막 내한공연하는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루비모프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09.25. [email protected]

루비모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리사이틀이 26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다.

세계 최정상 거장들을 만날 수 있는 '금호 익스클루시브(Exclusive)' 시리즈를 통해 내한한 이번 무대에서 모차르트 프로그램으로 청중을 만난다.

1부에서 환상곡 d단조로 무대를 연 뒤 소나타 9번과 8번을 연달아 연주한다. 2부에서는 C장조 소나타 16번, 환상곡 c단조에 이어 같은 조성의 14번 소나타로 연주를 맺는다. 옛 소련 피아니스트들의 강렬하고 차가운 음색보다 영롱함이 기대되는 프로그램이다.

도전과 실험을 멈추지 않는 루비모프는 1965년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무려 54년간 연주를 해오면서 두려워했던 적이 없었을 것 같은 해맑은 얼굴은 여전하다.

무대가 두려웠던 적이 있냐는 물음에 루비모프는 "때로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라고 답했다. "처음 연주하는 곡은 두려워요. 어릴 때부터 연주한 곡은 겁이 나지 않죠. 두려움과 긴장감이 때로는 무대에 집중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연주자는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따듯한 마음으로 연주를 해야 하거든요."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마지막 내한공연하는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루비모프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09.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마지막 내한공연하는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루비모프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9.09.25. [email protected]

1970년대부터 꾸준히 공부해온 불교철학도 두려움을 떨쳐내는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음악을 연주할 때 겁나는 부분이 있는데 불교철학이 도움이 됐다"며 흡족해했다.

불교철학 공부는 루비모프가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도 됐다. 국악에 대한 관심은 물론 산수화 등 미술에 대한 관심도 크다. 이번 내한에서 정가(正歌) 음반도 구입한 그는 이날 오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여는 '첫선음악회'를 관람한다며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 

2007년 서울시향 협연, 작년 '통영국제음악제' 공연에 이은 이번이 세 번째 내한. 올해 6월 은퇴를 선언한 그라 이번이 마지막 내한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는데 루비모프는 "제가 계획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저를 찾는 분이 있으면 올 수 있죠. 꼭 연주가 아니더라도 아시아 문화를 보러 올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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