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수익성·勞경직성… 현대車 광주형 일자리 난항

2018년 6월19일. 광주시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윤장현 광주시장, 이용섭 광주시장 당선인, 현대차 사장과 노동계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시청에서 현대차 광주 완성차공장 합작법인 투자협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광주시와 현대차간 투자자 협약에 정부가 보증하고, 지역 노동계와 경제계는 부수협약문에 서명하는 식이었다. 노사민정 대타협으로 임금을 대폭 낮춰 그 여윳돈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광주형 일자리'의 첫 성과와 비전을 공식 선포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임금을 기존 대기업의 절반 수준으로 하는 노동조건, 생산방식 등을 정하고 경영에 있어 노사 공동 책임을 지고 원하청 양극화를 해소하는 혁신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신규 고용과 유연한 근로조건도 필요충분 조건이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모델, 연봉 4000만원 일자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행사는 하루 전 전격 취소됐다. 행사 8일 전, 광주시가 지역 경제계 일부 인사들에게 보안각서까지 쓰도록 한 뒤 검토를 의뢰한 현대차와의 협약내용이 당초 예상보다 후퇴한데다 독소조항까지 포함된 사실이 처음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노동계는 발칵 뒤집혔다. 한국노총 고위 관계자는 "멘붕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윤 전 시장이 2014년 6월 발표한 '광주형 일자리' 공약은 물론 광주시 의뢰로 노동연구원이 2015년 실시한 연구용역 결과와도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자동차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2014년과 2015년, 국내 모 자동차 업체 평균 연봉은 9000만원대 중·후반, 입사 1년차 초임 연봉은 6000만원대 후반. 기본급은 3000만원에 못 미치지만 교대·야간·특근 수당에 상여금 700%, 최고 2000만원에 이르는 연말 성과급을 더한 실질 소득이다. 당시 전속협력업체(1차 밴더)의 초임 연봉은 3600만∼3800만원. 광주형 일자리는 동일 업종 대기업의 절반 수준, 그러나 1차 밴더보다는 소폭 높게 책정됐다. 일종의 업계 질서 유지 차원이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나 마련된 첫 협약서엔 연봉이 3000만원으로 명시됐다. 기본급 1800만원에 직무수당 300만원, 연차수당 100만원, 명절수당 80만원, 잔업·특근 720만원 등이다. 왠만한 하청업체보다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5년간 노조 설립 금지와 임금 동결이라는 단서조항까지 포함됐다. 협상과정에 노동계는 배제됐고, 협의나 동의를 구하는 절차 또한 생략됐다.노동계는 반발했고,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청와대는 일자리비서관을 급히 광주로 보내 동향을 살핀 뒤 부랴부랴 대통령 참석 행사를 취소했다. 이후 노동계는 적정 임금과 적정 노동시간, 노사 책임 경영, 원하청관계 개선 등 4대 원칙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거듭 요구했으나 민선 7기 들어서도 시는 현대차와의 양자 협상에 올 인했다. 대(代)를 이어 노동계가 배제된 데는 일부 관료와 자동차밸리위원회 고위 관계자의 직·간접적 입김이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1, 2, 3차 협력업체는 어떻게 할 것인지, 운영 주체, 책임 소재 등을 물어도 묵묵부답이었고, 기대 밖 저임금 구조와 독소조항 합의설에 대해서도 시는 "확정된 바 없다. 협상은 진행 중"이라며 예봉을 피해갔다. 참다 못한 노동계가 결국 9월19일 '노사민정 협상 불참'을 선언하자, 시는 부랴부랴 현대차 측에 임금 3500만원 보장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최후통첩성 수정안을 내놓은 셈이다. 냉각기를 거치던 협상은 각계 요구와 대통령직속 사회적 대화기구 등의 중재로 시와 노동계가 동참한 원탁회의가 구성되고, 시 투자유치추진단으로 확대 재편된 뒤 시와 지역 노동계가 '광주협상팀'의 최종안을 도출해 내고, 전권을 시 협상단에 위임하면서 본 협상은 급물살을 타는 듯 했다. 경제·교육계와 시민단체까지 '투자 성공'을 기원했고, 청와대와 여야 5당도 광주형 일자리 연착륙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현대차는 "애초 협약서에서 크게 틀어졌다"며 협상에 비관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임금은 당초 생산직 초임이 아닌 관리직을 포함해 최대 3500만원선을 원하고, 임금 성격도 '초임 연봉'이 아닌 '평균 연봉'으로 규정했다. 광주협상단의 요구대로 라면 적자가 불보 듯 뻔하다는 판단이다. 노사 책임 경영과 원하청관계 개선을 위해 시 협상단이 제시한 '노동자 이사제'와 '임금교섭과 납품단가 연동'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무리수"라고 거부했다. "정부가 일자리 실적을 위해 대기업의 팔을 비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광주형 일자리의 애초 모델이었던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 5000'이 적용했던 차등임금제와 생산품질 저하 시 무보수 추가근무와 같은 근로조건의 유연성이 상실됐고, 일자리 불안에 빠진 울산공장 노조와 지역민의 반발도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과 기아차 노조의 '어깨동무 파업'도 작잖이 부담거리다. 현대차 관계자는 "마른걸레도 쥐어짜야 할 상황이다. 실적 악화로 위기감이 커진 데다 노조 역시 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결국 현대차의 투자 난항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임기 막바지 '대기업 유치'를 호재 삼아 재선을 노리던 전임 시장 측이 타당성 조사와 수지 분석, 법률 검토도 없이 조급하게 4대 원칙을 무시한 협약안에 합의하면서 결국 '6월 협약'이 무산됐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 부위원장을 지낸 후임 시장 역시 조급증에 '8월 마무리', '찬바람 불기 전', '10월말 골든타임', '11월15일 데드라인'을 일방적으로 제시한 뒤 무리한 속도전을 펼쳤다는 지적이다. 현대차 역시 노동계와의 상생 협의도 없이 "조건이 그럭저럭 괜찮다"는 판단에 투자자 간 협약을 밀어붙였다가 상황이 악화되자 발을 빼려는 태도여서 이윤만 쫓는 기업 논리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 울산3공장 소형차 10만대 생산과 맞물린 소지역주의와 정부와 시 협상단, 현대차 모두 이에 대한 대책이 없는 점도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 논리와 맞물린 행정의 조바심과 수익성 우선주의, 소지역주의, 노동계의 경직성 등이 발목을 잡아 노사민정 대타협과 광주형 일자리의 4대 원칙이 누더기 신세로 전락할 위기"라며 "시 협상단과 현대차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의명분에 입각해 다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가능한 협약을 꼭 맺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동맥경화에 걸린 민간 일자리 창출에 물꼬를 틀 경우 대기업의 선도적 투자에 걸맞게 해당 대기업의 숙원사업 해결에도 협조하는 '유연한 행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goodch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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