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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갈매기' 이혜영 "세 번 거절한 '아르까지나' 김윤철 감독때문에 선택"

등록 2016.05.26 16:28:51수정 2016.12.28 1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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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서울=뉴시스】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이혜영(54)은 영락 없는 '아르까지나'다. 러시아 소설가 겸 극작가 안톤 체홉의 연극 '갈매기'(1896) 속 당당하고 화려한 이 유명 여배우는 그대로 그녀와 겹쳐진다.

 하지만 이 역은 3번이나 거절했다가, 네 번째 제안인 국립극단의 프로덕션을 수락했다.  

 이혜영은 26일 오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갈매기' 기자간담회에서 "(젊은 배우 지망생 역인) '니나'를 지금까지 주지 않아서 계속 거절해왔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아니면 안할 뻔한 작품이다. 지금은 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만족해했다.  

 이혜영이 희곡 '갈매기'를 처음 읽은 건 1994년이다. 당시 김광림이 작, 연출한 연극 '집'에서 극중극인 '갈매기'에서 4막의 니나 독백을 읽었다.  

 "그 때까지 읽은 책 중 최고였다. 니나가 돼 그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 감동이 지금도 있다. 그 때는 아르까지나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아르까지나 역으로만 제안이 들어왔다. 니나의 매력을 버리지 못해서 동의하지 않았다."  

 연극 작품으로는 '갈매기'를 본적이 없다는 그녀는 "올드한, 웬지 모르게 지루할 것 같은, 너무 낡아버린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잘 몰랐던 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갈매기' 말고 전혀 다른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김윤철 감독님이 '본인이 갖고 있는 잘 계발해서 최고에 도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하셨다."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2002),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패션 70's'(2005) 등 TV와 스크린에서 주로 활동하는 배우로 알려졌지만 이혜영은 사실 무대에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서울=뉴시스】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서울=뉴시스】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1981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데뷔했다. 1996년 '문제적 인간, 연산'으로 '제32회 동아연극상'에서 여자연기상을 받은 등 연기력도 인정 받았다. 이후 영화계에서 활동하다 13년 만인 2012년 역시 명동예술극장에서 헨리 입센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헤다 가블러'의 타이틀롤을 맡아 호평 받았다. '제49회 동아연극상'에서 여자연기상을 차지했다.  

 이혜영은 그러나 "연극으로 배우를 시작했고, 꽤 많은 연극에 출연했고, 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연극배우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김윤철 감독에게도 그런 하소연을 했다. "감독님이 그 때 말씀하시더라. 연극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면, 아르까지나를 하지 않고서는 못 넘어간다고. 그래서 내게 숙제처럼 남겨진 역이다."

 '갈매기'를 통해 '헤다 가블러' 이후 4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이혜영은 이제 니나가 아닌 아르까지나만 보인다"고 눈을 반짝거렸다.  

 "니나처럼 어린 시절에 배우가 되고자 갈매기처럼 산 여자다. 실패했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혼란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여자다. 한물 가다니, 천만에.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모든 캐릭터와 관계하고 평등하고. 성공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물론 외롭고 고독한 인간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멋지게 완성된 인격이 없다."

 이혜영이 '갈매기'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연출가 펠릭스 알렉사다. 루마니아 출신인 그는 2014년 국립극단 '리차드 2세'로 현대적인 해석을 인정 받았다. 또 다른 고전 '갈매기'에 대한 그의 해석이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서울=뉴시스】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포스터

【서울=뉴시스】국립극단 연극 '갈매기' 포스터

 알렉사 연출은 "'갈매기'는 굉장히 현대적인 작품이다. 지금의 관계를 잘 그리고 있다"며 "미묘함, 폭력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잔인한 동시에 미묘하고 부드러운 작품"이라고 봤다. "체홉 안에 있는 미세하고 미묘한 것을 찾아내고자 한다. 가끔식 진실은 말 표면이 아닌 행간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체홉 작품의 내면에는 전체적인 구조가 숨겨져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혜영에 대해 "많은 분들이 그녀가 '아르까지나'에 적격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도 동의한다. 예민한 감각과 좋은 직관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린 그림을 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지점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극평론가인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체홉이야말로 동시대의 작가보다 현대적인 작가"라며 "120년전에 쓰인 '갈매기'는 모더니즘이 정점에 달한 시기에 부조리에 가까운 세계관을 보여줬다. 인위적인 형식에서 탈피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국립극단과 대학로 무대를 오가며 나이를 잊고 활동 중인 70대 노배우 오영수는 아르까지나의 오빠인 소린 역을 맡았다. 남자 배우라면 한 번쯤 꿈꾸는 뜨레쁠례프에는 '갈매기'로 프로무대에 데뷔하는 신인 배우 김기수가 낙점됐다. 이혜영처럼 여배우들이 로망을 품는 니나는 신인배우 강주희가 맡았다. 뜨리고린은 '푸르른 날에' '보도지침'의 믿음직스런 배우 이명행이다.  

 6월 4~29일 명동예술극장. 번역 오종우, 무대 이태섭, 조명 김창기. 2만~5만원. 국립극단. 1644-200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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