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수험생들, 늦은밤까지 '점자 문제지와 싸움'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날인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맹학교에서 한 시각장애수험생이 점자정보단말기를 확인하고 있다. 2017.11.23. [email protected]

시각장애생 위한 서울지역 시험장 서울맹학교
수험생 18명···교사·학부모, 다과상 차리고 응원
일반 수험생 1.7배 시험시간…오후 9시43분 종료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날인 23일 제15시험지구 제23시험장인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는 차분했다. 학교 앞엔 북적이는 차량 행렬이나 후배들의 떠들썩한 응원도 없었다.

 이날 서울맹학교에서 수능을 치르는 학생은 총 18명이다. 학교에는 5개의 고사실이 마련됐다. 서울 지역의 시각장애 학생들은 서울맹학교에서, 저시력 장애 학생은 여의도 중학교에서 수능을 치른다.

 오전 6시30분께 학교 앞은 적막이 흘렀다. 서울맹학교에서 10년째 근무 중이라는 경비실 직원 허재영(47)씨는 "보통 학교와 달리 학생들 입실 시간이 조금 늦고 떠들썩한 응원단은 없다"면서도 "대신 학부모회가 다과상을 차리고 학생들을 응원한다"고 전했다.

 교통정리를 위해 도착한 서울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도 "작년에는 경기상업고등학교 앞에서 새벽부터 교통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곳은 조용하다"고 말했다. 경찰관들은 추위를 달래기 위해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학생들을 기다렸다.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날인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맹학교에서 한 시각장애수험생이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수험실로 향하고 있다. 2017.11.23. [email protected]

 오전 7시께 시험장인 백송관 건물 현관 앞에 작은 다과상이 차려졌다. 다과상에는 서울맹학교 학부모회에서 준비한 귤과 과자꾸러미, 각종 차와 커피들이 준비돼 있었다. 초콜릿과 과자 등으로 가득찬 과자 꾸러미는 일주일 전 본래 수능날을 위해 준비해뒀던 것이었다. 학부모회와 선생님들은 다과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 학생들이 입실을 기다렸다.

 첫 입실자는 '삼수생'인 졸업생 이모(22)씨였다. 배낭을 맨 채 도시락이 든 가방을 들고 도착한 이씨는 "2014년에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다 나와 맞는 학과를 찾기 위해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다시 수능에 도전한다"며 "긴장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입실시간 20분을 남겨놓고 경찰차를 타고 도착한 수험생도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경찰차에 내린 박진웅(18)군은 "신림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걸어가고 있었는데 주변에 있던 경찰관이 차에 타라고 했다"며 "덕분에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박군을 내려준 경찰은 시험장에 들어서는 박군을 향해 "시험 잘 보십시오!"라고 힘차게 응원했다.

 함께 수능을 보는 친구 세 명과 함께 팔짱을 낀 채 수험장에 도착한 강초혜(18)양은 "일주일이 미뤄진 만큼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며 "공부한만큼 나올 거라 생각한다"고 의연히 대답하며 웃었다.

 선생님들의 응원도 함께 했다. 서울맹학교에서 수학과 영어,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학교 정문과 건물 현관 앞에서 드문드문 등장하는 학생들을 기다렸다. 다과상을 그냥 지나가려는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과자꾸러미와 귤을 쥐여준 영어교사 김희연(52)씨는 "수능이 일주일 미뤄져 학생들이 많이 불안해했다"며 "점자로 장시간 시험을 보는데 집중력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수험생을 들여보낸 학부모들은 현관 앞 학부모회와 소회를 털어놓았다. 채성모(19)군의 어머니 김선의(46·여)씨는 "오전 7시쯤 차를 타고 나오는데 성모가 공부 기록이 남아있는 휴대폰을 놓고 왔다는 걸 알고 다시 집에 갔다 왔다"면서 "늦을 줄 알았는데 입실시간 전에 도착했다"고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입실하는 수험생들을 보며 눈물을 글썽인 학부모도 있었다. 서울맹학교 전공반 자녀를 둔 윤정란(43·여)씨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사회로 나가는 첫 문이 수능 아니냐"면서 "우리 애는 내년에 수능을 보지만 다른 친구들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오늘은 또 얼마나 고생할지 생각하니 울컥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서울맹학교에서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에게는 점자 문제지와 음성지원 컴퓨터가 제공된다.  이들에게는 과목당 일반 수험생의 1.7배 긴 시험시간이 주어져 수험생들은 오후 9시43분에 모든 시험을 종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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