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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시작 25시간 만에 진압 강행…용산참사의 재구성

등록 2018.09.05 15: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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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20일 남일당 건물 농성 진압 작전

세입자·용역 재개발 갈등 망루농성으로 번져

경찰, 농성 직후 용역 적극적으로 제지 안 해

현장 협상 진행 중 지휘부서 특공대 투입키로

필요 설비들 없는 상황임에도 1차 진입 강행

특공대 제대장 "작전 불가능하니 연기" 건의

서울청 경비계장 "겁먹어서 못 오르나" 질책

안전조치 없이 서둘러 2차 진입…사망자 6명

참사 이후 진압 정당화 활동…여론전·사찰 등

【서울=뉴시스】  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강로 재개발지역의 한 건물 옥상에서 경찰의 강제 진압이 진행된 가운데 시위대가 옥상에 설치한 망루가 불에 타고 있다. /이광호기자 skitsch@newsis.com

【서울=뉴시스】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강로 재개발지역의 한 건물 옥상에서 20일 새벽 경찰의 강제 진압이 진행된 가운데 시위대가 옥상에 설치한 망루가 불에 타고 있다. /이광호기자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5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의 한 공사장. 이곳은 지난 2009년 1월 용산참사가 발생한 장소다.

 테러 작전을 방불케 한 농성 진압 과정에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남일당 건물은 현재 철거돼 당시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남일당 건물터는 지난 2004년 1월부터 시작된 용산 역세권 재개발 지역 16개 중 한 곳이다. 이른바 용산4구역으로 불리는 이곳에서는 본격적으로 재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한 2008년 3월부터 건물 세입자들과 철거 용역 사이의 분쟁이 시작됐다.

 대립 상황은 철거업체에서 2008월 11월 하순 용산4구역 내 건물 철거에 나서면서 급박해졌다. 세입자 대책위원회는 같은 해 12월 하순부터 의사 표시 방안을 모색, 2009년 1월19일 오전 3시부터 5시 사이 32명이 남일당 건물에 들어가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이 시작됐다.

 ◇현장에선 협상 중인데 지휘부는 특공대 투입 결정

 용산참사를 조사한 경찰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망루농성을 인지한 시점부터 문제 시위로 판단하고 대화와 협상 노력보다는 강경 대응을 했다"라며 "현장에서 농성 조기 해결을 위해 협의를 해 나가고 있었으나 지휘부는 협상 시도와 무관하게 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라고 제시했다.

 옥상에서 농성이 시작된 이후 철거 용역 측은 건물 2~3층 계단에서 폐자재와 플라스틱, 쓰레기 등을 태워 연기가 위로 오르도록 했다. 경찰은 외부의 출입은 막아서면서도 용역들이 건물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했다.
【서울=뉴시스】  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한강로의 한 건물 옥상에서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살수차와 특공대를 동원해 진압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광호기자 skitsch@newsis.com

【서울=뉴시스】 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한강로의 한 건물 옥상에서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살수차와  특공대를 동원해 진압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광호기자 [email protected]

용역은 1월19일 오전 9시께부터 남일당 건물 반대편에서 소방 호스로 물대포를 쐈다. 경찰은 용역 쪽으로 날아드는 돌, 구슬, 골프공 등을 방어해줬고 살수를 제지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농성자들은 2층에서 4층까지 용역들에게 밀려 올라간 뒤 3~4층 계단 사이에 장애물을 마련했다. 경찰 수뇌부는 농성 과정에서 망루가 세워진 것을 보고 받고 특공대 투입을 논의했다. 이 시기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집회' 이후 집회·시위에 대한 대응 기조가 강경 진압이었던 때다.

 경찰 특공대가 본격적으로 동원되기 전 대치 현장에서는 협상이 이뤄지고 있었다. 오후 12시40분께 서울경찰청 정보관과 농성자 측의 면담이 이뤄졌다. 농성자 측은 "경찰 병력을 철수하고 철거대책위원회 회원, 전철연 중앙회, 시행사, 시공사, 용산구청, 용산경찰서가 참석하는 협상을 진행하자"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경찰은 지휘부 회의 이후 헬기로 현장 답사를 하고 용산경찰서에 물차 4대, 고가 사다리차 2대, 바스켓차 2대, 크레인 2대를 지원 요청하는 등 본격적으로 진압 작전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철거 용역은 오후 2시50분께 재차 불을 질러 연기로 농성자들을 위협했다. 앞서 면담에 참여했던 정보관은 오후 3시30분께 농성자 측에 "오늘 밤 10시까지 자진 퇴거하지 않으면 의법조치 하겠다. 10시 이전에 퇴거하면 선처해주겠다"라고 통보했다.

 특공대를 동원한 현장 농성 진압은 20일 오전 6시30분께 확정됐다.
【서울=뉴시스】  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강로 재개발지역의 한 건물 옥상에서 경찰의 강제 진압이 진행된 가운데 시위대가 옥상에 설치한 망루가 불에 타고 있다.  한 경찰이 불을 끄기 위해 컨테이너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다. /이광호기자 skitsch@newsis.com

【서울=뉴시스】 20일 새벽 서울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강로 재개발지역의 한 건물 옥상에서 경찰의 강제 진압이 진행된 가운데 시위대가 옥상에 설치한 망루가 불에 타고 있다.  한 경찰이 불을 끄기 위해 컨테이너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있다. /이광호기자 [email protected]

◇농성 25시간 만에 크레인 없이 진압 진행…위험 상황임에도 강행된 작전

 경찰 특공대는 1월20일 오전 6시58분께 남일당 옥상 망루에 1차 진입했다. 망루 설치 25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진압 작전이었다.

 경찰은 진압 작전에 필요한 300t급 대형크레인과 고가사다리차, 화학소방차 등 시설물들이 도착하지 않았으나 두 방향으로 진압을 강행했다.

 진압을 위한 장비 준비가 미비한 것을 파악한 당시 경찰특공대 제대장이 "작전이 불가능하니 연기하자"라고 건의했지만 서울청 경비계장은 "겁먹어서 (건물을) 오르지 못하는 것이냐. 물포로 쏘면 될 것 아니냐"라고 나무랐다고 한다.

 경찰이 진입하는 동안 건물 건너편에서는 남일당 옥상 방향으로 물대포가 발포됐다. 농성자 측에서 3~4층 계단 사이에 마련한 장애물은 철거됐고, 좁은 계단으로 침투한 경찰과 농성자 사이에 몸싸움도 벌어졌다.

 화재는 오전 7시5분께 발생했다. 이후 망루 해체작업이 진행되는 10분 동안 망루 내 2~3층 계단이 무너져 내리면서 인화성 물질이 흘러내렸다. 살수로 인해 망루 1층과 옥상 바닥이 물과 인화성 물질로 흥건해졌다.

 1차 진입에서는 농성자 18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잠시 철수했다가 오전 7시20분께 2차 진입을 시도했다. 인화성 물질을 제거하거나 농성자와 경찰을 포함한 대치 인원에 대한 안전 조치는 없었다. 당시 경찰 지휘부는 7시15분~18분 사이 작전을 신속하게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불은 오전 7시25분께 망루 전체로 옮아 붙었고 시설물이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경찰은 2차 진입 이후 농성자 9명을 붙잡았다.

 이후 무너진 망루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농성자 5명과 경찰 특공대 1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용산참사로 철거민 5명이 죽고 9명이 다쳤으며, 진압을 위해 투입된 병력 가운데서서는 1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위는 "경찰은 사건 현장에 재진입을 강행할 경우 농성자들의 저항, 남일당 내의 위험 상황으로 인해 화재 발생과 인명 피해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었다"라며 "그럼에도 2차 진입을 강행한 것은 농성자들과 진압 경찰관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도외시한 무리한 작전 수행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지난 2009년 1월 용산참사가 발생했던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자리. 5일 남일당 건물은 허물어지고 건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참사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2018.09.05  s.won@newsis.com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지난 2009년 1월 용산참사가 발생했던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자리에 5일 철제 담장이 처져 있다. 남일당 건물은 허물어지고 건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참사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2018.09.05  [email protected]

◇참사 후 "강제 진압 정당"…유족들, 9년 넘는 진상 규명 촉구

 참사 이후 유족에게 계획 고지나 동의를 구하는 절차 없이 시신 부검이 이뤄졌다. 경찰은 사건 당일 오후 2시 '용산 철거민 사건 관련 예상 질의 작성 요청' 보고를 시작으로 진압 작전이 불가피했으며,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전 계획을 짰다.

 경찰은 2009년 1월23일에는 검찰 수사 방향과 경과 등을 파악하고, 용산참사 관련 인터넷 여론 조사에 인터넷주소(IP)나 아이디(ID) 등 방식을 불문하고 참여해 찬반 의사를 밝히는 것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여론을 주도토록 내부 방침을 정하기도 했다.

 아울러 감시 조직을 통해 참사 유족과 농성에 연대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에 대한 사찰이 이뤄졌다. 2009년 7월 특공대의 대테러 전술시범에서는 용산참사 현장과 유사한 형태의 환경을 재현하는 등 당시 진압 작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용산참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농성자와 용역업체 직원들을 재판에 넘기고, 진압에 나선 경찰은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남일당 건물은 사건 발생 약 1년 뒤인 2010년께 철거됐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유가족들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심사 결과 발표에 따른, 용산참사 피해자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유가족들은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의 처벌을 촉구했다. 2018.09.05.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유가족들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의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18.09.05. [email protected]

유족들은 9년이 넘는 세월동안 진상 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해왔다.  이들은 올 1월20일에도 참사 당일을 기억하는 추모제 등 행사를 진행했다.

 최근 들어 변화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당 기간 공터로 남아있던 남일당 건물터에서는 공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정부는 첫 특별사면과 복권 대상에 용산참사 사건 관련자 25명을 포함했다. 아울러 지난 7월2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차 사전조사 대상 사건 가운데 용산참사 사건에 대한 본조사를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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