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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인터뷰]박해림, 규제 당하지 말고 즐기자···'금란방'

등록 2018.12.12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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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창작가무극 내놓은 블루칩 극작가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창작가무극 '금란방' 박해림 작가가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서울예술단과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금란방'은 18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창작가무극 '금란방' 박해림 작가가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서울예술단과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금란방'은 18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뮤지컬이 주로 다뤄온 시인은 윤동주(1917~1945)와 이상(1910~1937)이다. 고뇌와 난해가 주를 이뤘다.

2016년 백석(1912~1996)이 치고 나왔다. 모던 서정성을 보여준 시인. 그의 정서를 오롯하게 담아낸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그해 뮤지컬 시상식에서 극본·작사상을 휩쓸었다. 백석과 그의 연인인 자야(子夜) 김영한과의 사랑을 담백하게 노래했다.

극작가 박해림(33)은 데뷔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홈런을 쳤다. 대학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하고, 시나리오 회사도 다닌 그녀가 공연계에 뛰어든 이유는 외로웠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속 화자 역시 헛헛한 외로움을 열병처럼 앓았다. 그래서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고 노래했다.

"시나리오를 쓰는데 너무 외롭고 고되더라고요. 몇 분 단위로 글을 쪼개야 하는데, 그 과정이 외로워서 도저히 저 혼자 책임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들어간 산골, 아니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생활은 박 작가를 즐겁게 만들었다. 연극연출로 입학했지만, 극작, 배우를 오가며 공동 작업을 경험했다. 박 작가는 뮤지컬 극작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분명하게 만들지 않는다. 연출, 배우의 의도에 따라 기꺼이 수정한다. 그런 작업이 중요하고 재미있다며 웃는다.

"제 의도를 배우, 연출이 하나라도 알아줄 때 희열이 커요. 제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일 때도 그렇게 해석을 해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지죠."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창작가무극 '금란방' 박해림 작가가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서울예술단과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금란방'은 18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창작가무극 '금란방' 박해림 작가가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서울예술단과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금란방'은 18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email protected]

현장성과 함께 '했다 치고', 즉 하지 않았는데 했다고 가정하는 '상상력'이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여겼다. "제가 상황을 자세히 제시해주거나, 지문을 쓰지 않아요. 저 혼자 무엇을 숨기고 있기보다 다 같이 꺼내 놓고 만들어내는 것이 더 즐겁죠. 혼자 갇혀 있는 것은 싫어요."

공동으로 창작하는 공연 작업에 푹 빠져 있는 박 작가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시작으로 '전설의 리틀 농구단'과 '모래시계'를 쓰고 '생쥐와 인간'을 각색하면서 3년도 채 안 돼 대학로 블루칩 창작진으로 발돋움했다.

뮤지컬에서 이례적으로 '고뇌하는 남성'이 아닌 '힘 없고 늙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최근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글도 쓰고 연출도 했다.

 박 작가의 차기작은 서울예술단이 18~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치는 신작 창작가무극(뮤지컬) '금란방'이다.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는 박 작가는 작가로는 드물게 연습 현장을 매번 찾고 있다.

'금란방'은 18세기 조선 시대 금주령과 전기수를 소재로 삼은 코미디 뮤지컬. 노래와 연기뿐 아니라 춤에도 일가견이 있는 서울예술단 작품답게 흥이 넘치는 연희의 판이 깔린다. 이미 박 작가는 판소리극 '수궁가가 조아라' 연출, 연희극 '백수들' 집필 등을 통해 다 같이 어우러지는 판에 애정을 드러내왔다.

'금란방'은 서울예술단이 2000년 '대박' 이후 18년 만에 선보이는 희극. 왁자지껄한 소동 속에 허를 찔러 시대를 풍자하는 전형적인 몰리에르식의 희극을 표방한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창작가무극 '금란방' 박해림 작가가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서울예술단과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금란방'은 18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창작가무극 '금란방' 박해림 작가가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서울예술단과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금란방'은 18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email protected]

이야기 층위는 크게 3개다. 연애소설 듣는 재미에 빠진 왕으로부터 소설을 제대로 못 읽는다고 혼난 사대부 '김유신’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기수'가 직업인 이자상으로부터 남에게 깊게 공감하는 연기를 배워나가는 이야기, 말괄량이 '매화'와 사랑을 모르는 '윤구연'이 우연한 소동으로 운명을 선택하게 되는 이야기, 이자상이 읽어주는 괴이한 소설 '요세인연' 속 이야기가 얽히고설킨다.

강력한 왕권 확립기로 엄격한 금주령이 시행된 제21대 영조 통치기가 배경. 금주령은 조선 500년 국가의 기본정책이었으나 민가의 제사는 물론 종묘제례에서도 술을 쓰지 않은 임금은 영조가 유일했다.

'금란방'은 이 시대에 있을 법한 밀주방 겸 매설방을 배경으로 신분·연령·성별의 차이를 뛰어넘는 유쾌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금란방이 조선 시대의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 격인 셈이다. 가변형 극장인 블랙박스 시어터의 장점을 살려 자유소극장을 은밀한 아지트로 변신시킨다.

박 작가에 따르면, 금란방은 조선시대 어지러움을 규제하던 관리직 이름이다. 금란(禁亂)은 법을 어겨 어지럽게 구는 것을 막아 금지함을 가리킨다.

박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이 단어의 의미를 비틀었다. 어지러운 세상을 멈추게 하는 것은 규제가 아니라, 이 금란방 안에서 술을 마시며 함께 즐기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금란방을 '나이스하면서도 판타지한 공간'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박 작가는 "지금 2018년에 금기라고 할 만한 것이 없더라고요. 변정주 연출님과 이야기 끝에 결국 제도화된 것, 예컨대 결혼제도 등을 가져왔어요"라고 부연했다.
[뉴시스 인터뷰]박해림, 규제 당하지 말고 즐기자···'금란방'

지금까지 박 작가의 작품에 빠지지 않는 3가지가 있었다. 기억(또는 추억), 이야기, 그리고 거짓말이다.

이번 '금란방'에서 자기 장점은 살리되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자 한 박 작가는 "이제 자가 복제를 하지 않고 다른 식으로 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신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죠."

'금란방'이 전환점이 되고 있다. "극에서 말하는 금기를 깨는 판타지가 제 삶에 어떻게 존재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금란방'을 기점으로 작가로서 정체성을 더 고민하고 있다고 할까요. '뮤지컬을 보고 재미있으면 됐지'라는 생각으로 쓴 작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지 고민하게 됐어요."
 
한편 이자상 역에 김건혜, 김윤신 역에 김백현과 최정수, 매화 역에 송문선, 영이 역에 이혜수가 캐스팅됐다. 연극 '보도지침', 뮤지컬 '판' '아랑가' '러브레터'의 변정주 연출, '라흐마니노프' '붉은정원'의 이진욱 작곡가가 뭉쳤다. 7인 라이브밴드에는 국악 록그룹 그룹 '잠비나이'의 김보미(해금)와 '고래야'의 김동근(대금)이 합류한다. 예술의전당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공동 주최한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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