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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인터뷰]민찬홍 "시를 노래로 표현한다는 것, 쉽지 않지요"

등록 2018.12.25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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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 '랭보' 작곡가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뮤지컬 '랭보' 민찬홍 작곡가가 20일 오후 서울 동숭동 카페 다비앙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뮤지컬 '랭보' 민찬홍 작곡가가 20일 오후 서울 동숭동 카페 다비앙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노래는 시의 오래된 미래'라고 누군가 말했다. 내년 1월13일까지 대학로 티오엠(TOM) 1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랭보'(작가 윤희경·연출 성종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1891)와 폴 베를렌느(1844~1896)의 시를 노래로 만든 국산 창작뮤지컬이다. 랭보 '취한 배', 베를렌느 '내 마음에 내리는 눈물' 등 활자들이 멜로디의 옷을 입고, 자신의 오래된 가치를 새롭게 입증해나가고 있다.

이들 시에 멜로디를 붙인 작곡가 민찬홍(37)은 "랭보의 시를 공부하면서 시 자체에 그 사람의 사상과 삶이 녹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라면서 "시 자체에 담긴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하면 결국 랭보의 삶이 드러나지 않을까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뮤지컬 '랭보'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랭보', 보다 완벽한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베를렌느',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해 좌절하고 방황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는 '들라에', 세 인물이 20년 동안 얽히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행복과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랭보는 실제로도 '천재 시인'으로 통했다. 작품 세계는 기괴했지만 전위적인 시가 무엇인지 보여준 혁신가였다. 심리적으로 유약했지만 시를 향해서는 몸과 마음을 내던지는 괴짜였다. 처음에 민 작곡가는 그런 랭보의 심리에 접근하기가 어려워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힘들었다. 반면 이상을 꿈 꾸면서도 밀착해 있는 현실을 버릴 수 없는 베를렌느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랭보의 특별함과 혁신성에 대해 매력을 느끼면서도 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랐어요. 랭보에게 공감을 하기까지 그의 시를 오랫동안 공부해야 했죠. 한 구절 한 구절 뜯어볼 때마다 절대적이고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래서 어렵게 살아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랭보는 안주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파리의 문단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스스로는 고난을 겪고 살았죠. 창작자로서는 랭보처럼 살고 싶지만 삶은 베를렌느처럼 살고 싶어요."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뮤지컬 '랭보' 민찬홍 작곡가가 20일 오후 서울 동숭동 카페 다비앙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뮤지컬 '랭보' 민찬홍 작곡가가 20일 오후 서울 동숭동 카페 다비앙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이런 인물에 대한 이해는 음악으로 표현됐다. 키보드, 바이올린, 기타, 퍼커션으로 구성된 4인 라이브밴드로 인물마다 다른 선율과 정서를 풍긴다.

예컨대 랭보와 베를렌느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살피는 들라에는 캐릭터가 보편적이라, 그를 상징하는 넘버는 대중적인 편이다. 베를렌느는 그와 시가 갖고 있는 따듯하고 낭만적인 감수성이 음악에도 묻어난다. 랭보는 그의 진보적인 성향을 반영, 음악도 듣기에 낯설다. 타악기를 다양하게 사용해 그의 삶처럼 리드미컬한 전개를 했고, 긴장감을 조성했다. 민 작곡가는 "베를렌느의 넘버에는 발라드가 많고, 랭보의 넘버들은 역동적으로 표현했다"며 설명했다.

랭보와 베를렌느의 시를 선율로 그대로 옮긴 '랭보'는 포엠컬(Poem-cal)이다. 말 그대로 시와 뮤지컬의 합성어. 민 작곡가는 2011년 원태연(47)의 시를 가지고 만든 뮤지컬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시는 시로 읽기 위해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노래에 맞는 표현법으로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라면서 "원문이 갖고 있는 아우라가 있어, 뮤지컬에 맞게 말을 바꾸다 보면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텍스트로 가져오지 못한 것을 선율로 보완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 같은 어려움으로 핵심 넘버 '취한 배'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7분짜리 대곡은 뮤지컬의 전체적인 맥락에 맞지 않아 애써 만들었음에도 버려야 했다.
ⓒ라이브·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라이브·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민 작곡가는 창작뮤지컬계의 대표적인 작곡가다. 스테디셀러 창작뮤지컬 '빨래'가 그의 작품이다. '서울살이 몇핸가요' '참 예뻐요' 등 서정적이고 따뜻한 정서의 넘버는 뮤지컬 무대를 뚫고, 방송이나 다른 콘서트 무대 등에서도 불려진다.

그로테스크한 정서가 일품이었던 서울예술단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다양한 장르가 녹아들어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등도 그가 멜로디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뮤지컬에만 천착하는 작곡가는 아니다.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 영화 '슬로우 비디오' 등도 작업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그는 초등학교 때 부모를 따라 간 신사동 브로드웨이 시네마에서 벨기에 영화 '가면 속의 아리아'(감독 제라르 코르비오·1988)를 보고 음악에 홀려버렸다. 유명 오페라 아리아들이 대거 삽입된 영화다.

이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품은 민 작곡가는 열 네 살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비학교에 입학,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한예종 총장과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을 역임한 이건용 한예종 명예교수 등으로부터 음악극을 배웠다. 대학에서는 현대음악을 공부했다.

대중적인 것과 클래식적인 것을 동시에 잘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악단으로부터 위촉을 받아도 구조적으로 어려운 음악을 쓰기보다 청중에게 한층 더 잘 접근할 수 있는 스타일로 음악을 만든다. 클래식, 재즈, 뮤지컬 등을 자유롭게 오간 미국 작곡가 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과 같은 음악세계를 지향한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뮤지컬 '랭보' 민찬홍 작곡가가 20일 오후 서울 동숭동 카페 다비앙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뮤지컬 '랭보' 민찬홍 작곡가가 20일 오후 서울 동숭동 카페 다비앙코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최근 제 콘서트를 열어 제 곡을 피아노로 직접 치기도 하고 밴드, 현악과 함께 편곡해서 연주도 했어요. 다양한 형태의 음악 작업들을 해나가고 싶어요."

그 중에서 뮤지컬은 '음악으로 드라마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끼는 장르 중 하나다. "음악은 추상적인 언어잖아요. 뮤지컬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구체적인 것을 음악을 통해 드라마로 표현한다는 것이 강점이죠. 특히 이번에 시를 소재로 한 '랭보' 같은 작품은 시너지 효과가 더 큽니다. 시와 음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넘버들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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