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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청탁' 통로로 전락한 판사 국회 파견…그동안 어땠나

등록 2019.01.17 18: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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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교 의원, 지인 사건 선처 등 청탁 의혹

임종헌 추가기소로 입법·사법부 유착 파장

법원, 자문관·전문위원 2명 국회 공모·파견

재판 청탁 드러나며 폐지 주장 목소리 나와

기관간 업무협력·소통 등 필요하다는 의견도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지난해 12월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서영교 원내수석부대표가 자유한국당 측에서 제기한 청와대 특감반원 김태우 의혹 및 추가 '사찰' 의혹 등을 반박하고 있다. 2018.12.20.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지난해 12월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서영교 원내수석부대표가 자유한국당 측에서 제기한 청와대 특감반원 김태우 의혹 및 추가 '사찰' 의혹 등을 반박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강진아 기자 = '사법농단' 의혹 수사 과정에서 국회에 파견된 판사가 국회의원들의 재판 관련 '민원' 창구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등 정책 추진에 도움을 받고자 의원들 요구에 따라 재판까지 영향을 미치려 한 정황을 포착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추가 기소로 의원들의 '재판 청탁'과 행정처의 '재판 개입'이 일부 공개됐지만,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 더 있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법원은 국회에 자문관과 전문위원으로 2명의 판사를 사실상 파견하고 있다. 자문관은 일선 판사가 법원 소속을 유지하고 파견 형태로 근무하며, 전문위원은 부장판사 이상으로 법원 퇴직 후 국회 사무처 소속으로 임용되는 형태다. 다만 전문위원은 임기가 끝나면 통상 법원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 논란이 된 자리는 자문관이다. 법률안 검토 등 전문적인 역할을 하는 전문위원과 달리 자문관은 법률안 발의·개정시 소송절차, 양형 등 관련 자문을 해주며 사실상 국회 관련 정보를 얻고 의견을 교류하는 국회와 법원간 '소통' 창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청탁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하는 중간 통로로 활용됐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사실상 '로비' 창구로 이용돼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단면은 임 전 차장의 공소장을 통해 공개됐다.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5년 5월18일 국회에 파견 중이던 김모 판사를 자신의 의원실로 불러 총선 때 자신을 도와준 지인 아들의 형사사건에서 선처를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서 의원은 김 판사에게 "서울북부지법에서 강제추행 미수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A씨가 같은해 5월21일 선고가 예정돼 있는데 벌금형의 선처를 받게 해달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자 김 판사는 같은 날 임 전 차장에게 서 의원이 직접 말한 내용이라며 "A씨가 공연음란 의도는 있었지만 강제추행 의도는 없었으니 벌금형을 선고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는 이메일을 보내 보고했다.

임 전 차장은 이 같은 보고를 받고 다음날 당시 문용선 서울북부지법원장에게 전화해 "서 의원이 요청했는데 벌금형 선고와 변론재개 및 기일연기 등을 받아주도록 담당 재판부에 전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당시 임 전 차장이 상고법원안 발의에 서명했지만 통과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던 서 의원을 설득하고 사법부 정책 및 법안 등에 도움을 받고자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사법농단 의혹'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18.10.26.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사법농단 의혹'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18.10.26. [email protected]

그 뒤 문 법원장은 담당 판사를 불러 행정처에서 연락이 왔다며 "막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변론재개 등을 살펴봐달라고 했고, 담당 판사는 사유가 없다며 예정대로 선고했다. 선고는 벌금 500만원으로 판결됐다.

또 임 전 차장은 2016년 8월 법사위 소속 한 의원으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노철래 전 새누리당 의원이 선처를 받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사건이 진행중인 수원지법 성남지원장에게 이를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은 국회 파견 판사를 통해 청탁을 한 의원이 건넨 유사 사건 문건 파일을 전달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확산되면서 국회 파견 판사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와 맞물려 국회에서는 대법원에서 내정한 부장판사를 전문위원으로 선발하던 기존 관례를 깨고 임용하지 않기로 했고, 대법원도 그에 따라 응모를 철회했다.

자문관 파견은 추후 대법원과 국회가 협의해 그 유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파견 판사가 '로비' 창구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나 사법부와 입법부간 업무협조 필요성을 고려해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초동의 한 판사는 "국회에 판사를 파견해 민원을 받고 로비 창구처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다만 국회와의 소통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만큼 일선 판사가 아닌 일반직을 파견해 업무를 한다면 재판 개입 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부장판사는 "국회 파견 판사는 입법 과정에서 법리적 자문을 해주고 기관간 유기적인 업무협력 및 소통이 필요해 도입된 것"이라며 "이번에 그 부작용 중 하나가 수면 위로 드러났는데 재판부에 민원을 전달한 것은 잘못됐다. 다만 개인의 일탈인지, 제도 문제인지 살펴보고 도입 당시 목적과 긍·부정적 효과를 면밀히 검토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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