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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누벨바그 이끈 장 뤽 고다르 감독, 91세로 타계

등록 2022.09.13 2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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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네멋대로 해라'로 데뷔…장 폴 벨몬도를 스타덤에 올려놔

[취리히(스위스)=AP/뉴시스]지난 2010년 11월3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그랑프리 디자인' 시상식에 참석한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 감독. 1960년 데뷔작 '네멋대로 해라'(Breathless)로 대중영화에 혁명을 일으키며 세계에서 가장 활력있고 도발적인 감독 중 하나로 우뚝 서며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독창적 '앙팡 테러블' 장 뤽 고다르가 프랑스 언론이 13일 보도했다. 향년 91세. 2022.9.13

[취리히(스위스)=AP/뉴시스]지난 2010년 11월3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그랑프리 디자인' 시상식에 참석한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 감독. 1960년 데뷔작 '네멋대로 해라'(Breathless)로 대중영화에 혁명을 일으키며 세계에서 가장 활력있고 도발적인 감독 중 하나로 우뚝 서며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독창적 '앙팡 테러블' 장 뤽 고다르가 프랑스 언론이 13일 보도했다. 향년 91세. 2022.9.13

[파리=AP/뉴시스]유세진 기자 = 1960년 데뷔작 '네멋대로 해라'(Breathless)로 대중영화에 혁명을 일으키며 세계에서 가장 활력있고 도발적인 감독 중 하나로 우뚝 서며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독창적 '앙팡 테러블' 장 뤽 고다르가 프랑스 언론이 13일 보도했다. 향년 91세.

프랑스 언론들은 고다르의 사망 소식을 친척들로부터 들었다고 확인했다.

고다르는 1950년대 영화 평론가로 시작된 오랜 경력을 통해 관습에 도전하며 카메라, 사운드 및 서사에 대한 규칙을 다시 작성했다.

그의 영화는 장 폴 벨몬도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1985년 작품 '마리아에게 경배를'(Hail Mary)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영화를 비난하면서 신물들의 머릿기사로 보도됐었다.

고다르는 또 정치적으로 고발되고 실험적인 일련의 영화들도 만들었는데, 이는 극히 소수의 팬들만 기쁘게 했을 뿐 과장된 지적주의를 통해 많은 비평가들을 좌절시켰다.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고다르의 사망에 "슬프고 슬프다. 고다르의 사망은 엄청난 슬픔"이라고 말했다.

1930년 12월3일 파리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스위스 유력 은행가 가문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다르는 스위스 니옹에서 자랐고,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민족학을 공부하면서 2차대전 후 결성된 '시네클럽'을 통해 번성했던 문화 현장에 점점 더 끌렸다.

그는 미래의 유명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및 에릭 로메르와 친구가 됐으며, 1952년 유명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영화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1960년 3월 발표한 '네멋대로 해라'는 고다르가 처음으로 거둔 큰 성공이었다. 이 영화로 장 폴 벨몬도는 대스타가 됐다.
 
고다르의 영화는 프랑스 영화 미학에 새 분위기를 조성했다. 고다르는 전통적인 내러티브 스타일을 거부하고 대신 액션 장면과 철학적 토론을 섞은 빈번한 점프 컷을 사용했다. 그는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에 대한 언급으로 모든 것을 자극했고, 문학과 시각 예술에 고개를 끄덕였다.

1961년 고다르는 덴마크 태생의 모델이자 여배우 안나 카리나와 결혼했다. 그녀는 '비브르 사 비'(My Life to Live) '알파빌'(Alphaville) '크레이지 피트'(Crazy Pete) 등 '1960년대 고다르가 만든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랜드마크로 간주되는 모든 영화에 출연했다.

고다르는 2010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했고, 2011년에는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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