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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완화 부각하는 북한의 최종 노림수는 '체제 보장'

등록 2018.10.17 10: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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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 요구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신뢰 구축' 조치

전체주의 체제 특수성 인정 바라는 전략적 행동


【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접견했다고 8일 보도했다. 2018.10.08.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접견했다고 8일 보도했다. 2018.10.08. (출처=노동신문)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강영진기자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대북제재 완화 문제가 북미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제재 완화는 표면적일 뿐 북한이 바라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체제 보장책인 것으로 분석된다.

17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7일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 미국이 북한에 대해 신뢰를 보여주는 조치를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위원장의 요구는 핵리스트 제출을 요구하는 폼페이오 장관에 대한 반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핵리스트 제출이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음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행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주면 (핵리스트 제출을 넘어) 과거와 현재의 핵프로그램을 다 보여주고 포기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달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뒤로 한국 정부는 연내 종전선언 채택을 목표로 삼아 왔으나 북한은 이미 제재완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제재완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대신 미국이 신뢰구축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대통령 평양 방문 이후인 지난달 말 유엔총회 연설에서 리용호 외무상은 "미국의 신뢰구축 조치없이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는 연설에서 직접적으로 제재 완화를 요구하지 않았으나 "제재에 굴복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말함으로써 제재완화가 미국의 신뢰 구축조치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한국이 종전선언 채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안 상태에서 제재완화 요구를 얹어서 미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한 것이다. 

북한이 제재완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것은 모스크바에서 지난 9일 열렸던 북중러 3국 회담 공동성명이 처음이다. 이마저도 북한 단독의 주장이 아니라 3국 공동성명이라는 형식을 빌은 우회적인 방식이다.

현재까지 북한이 미국에 대해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북미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이며 그 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노동신문과 같은 매체 논평을 통해 대북제재에 비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제재완화가 일차적인 신뢰 구축조치가 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완화 검토를 요청한 데에는 북한 움직임의 행간을 읽고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제재완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제재완화 문제를 북미 핵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북한의 행동은 다분히 전략적 고려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대북제재는 북한에 상당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올들어 북한의 대중국 교역은 1월~9월 사이에 1조8천20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9.2%가 감소했다고 중국 환추시보(環球時報)가 지난 12일 보도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줄곧 천명해왔다. 이와관련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북한 경제는 국제사회 대북제재에 적응해 내구성을 키웠다"고 평가하고 "그에 따른 한계도 분명해 이를 비핵화에 이은 개방으로 해결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대북제재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로 인해 붕괴될 상황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미국과 완전한 신뢰관계를 구축함으로서 정상적인 국제사회 일원으로 인정받아야 안심하고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재완화 문제는 북한이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신뢰 구축조치'의 첫단계 조치일 뿐이기도 하다. 앞으로 제재 완화가 어느 정도 달성되면 북한은 '수령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국제사회에 정상적 일원으로 대우받는 지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전망이다.

전체주의적 특성이 매우 강한 북한으로서는 개방이 가져올 체제 위협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에는 유독 열악한 북한의 인권문제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 지구촌에는 중동의 전제왕정 국가들처럼 충분히 개방돼 있으면서도 인권문제가 심각한 전체주의적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들이 상당히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나라는 인권문제가 심각하지만 미국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베트남이나 중국처럼 공산당 일당이 국가를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들도 개혁, 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전체주의적이고 인권탄압적인 체제 특수성을 공격하지 않고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상황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시간이다. 미국은 실질적 비핵화가 진전되기 전에는 제재 완화는 없으며 오히려 강화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시간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도 2년 뒤 대선 때까지는 북한 비핵화에 성과를 내야할 필요성이 크다. 따라서 오는 11월 6일 치러지는 중간선거 이후에 있을 2차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신뢰 조치'가 있으면 과거든 현재든 모든 핵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포기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을 바꾸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현재 북중러 및 한국과 나머지 국제사회 사이에 진행중인 대북 제재 완화 논란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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