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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박근혜의 트라우마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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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1-09-02 13:02:05  |  수정 2016-12-27 22: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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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연 기자 = 트라우마(Trauma). 일반적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뜻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트라우마가 있다.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사람이 평생 물을 무서워하거나, 어린 시절 개에 물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개를 무서워하는 것도 모두 트라우마의 일종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트라우마는 '배신'이다. 박 전 대표는 어린시절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퍼스트 레이디'역할까지 하며 권력의 최정상에 섰지만, 부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는 '독재자의 딸'로 몰려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권력의 최정상에 있을 때 가깝다고 믿었던 측근들이 한 순간에 등을 돌리는 경험을 겪어야 했던 그가 '약속'과 '신뢰'를 강조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박 전 대표는 40대 초반이던 1993년 출간된 자신의 저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 실린 1989년 11월3일자 일기에서 "권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정말 두려운 것"이라며 "아무 죄 없는 사람의 가슴에, 그 가족의 가슴에 영원히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길 수도 있고,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밝혀 자신의 아픔을 드러냈다.

 그는 "관록은 분명 인간을 평가할 수 있는 한 가지 척도가 된다"며 "하지만 관록은 사람을 훌륭하게 성숙시키기 보다는 추잡하거나 비겁하게 만드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현실"이라고 밝혔다.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며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소신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친근감을 갖고 대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1991년 2월20일의 일기에서도 "옛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그들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이 한결같은 경우가 그야말로 드물었다"고 밝혔다.

 그는 "모두가 변하고 또 변해 그때 그 사람이 이러저러한 배신을 하고 이러저러하게 변할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라며 "지금의 내 주변도 몇 년 후 어찌 변해있을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허무하게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달 20일 일기에서는 "뭐 도울 일이 없느냐고 안타까운 표정까지 지어가며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던 것이 엊그제 같던 사람이 막상 일을 맡기려 하니 결코 자신에게 힘든 일이 아님에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지고 만다"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렇게 빨리 그의 속마음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승화시켜 '약속과 신뢰의 정치인'으로 거듭 태어났다. 늘 '약속'과 '신뢰'를 강조해 온 그는 최근에 외교안보정책으로 '대북 신뢰외교'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지나치게 '신뢰와 약속'을 강조하는 배경에 '배신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가 '배신'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능력보다는 충성도를 위주로 사람을 기용하고, 이 때문에 능력있는 사람이 주변에 모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충성도 중시 때문에 능력있는 인물을 버리거나 자질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인물을 끝까지 안고 가 치명적인 실책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종시 수정안 파문을 겪으며 친박계의 '좌장격'이라고 불렸던 김무성 의원이 박 전 대표의 뜻과 다른 의견을 주장했다가 계파에서 배척된 것에도 박 전 대표의 이같은 성향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평소 사석에서 "박 전 대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바로 '배신'"이라며 "박 전 대표는 배신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해 왔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성향 때문에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충성도 경쟁이 벌어진다. 박 전 대표와 평소 전화 통화를 자주하거나 잦은 교류를 하는 의원들이 결국은 실세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한나라당 친박(박근혜)계 의원들은 전반적으로 친이(이명박)계에 의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성도가 높고 온정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당직을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각종 선거 등에도 특별히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 '비서실장격' 이학재 의원 등 다수의 친위 의원들을 두고 있다.

 박 전 대표의 경선캠프 특보를 지낸 이정현 의원은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이지만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가 참석하는 거의 모든 행사에 배석하며 실질적으로 유일한 대언론 공보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박 전 대표실에 기자가 일정 등에 대한 전화문의를 해도 "이정현 의원에게 물어보라"고 할 정도다.

 가끔은 측근 의원들이 박 전 대표와 우연히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기자를 끌어 내리거나, 사전에 질문을 조정해 차단하기도 해 "친박계 의원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보좌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는다.

 다수의 출입기자들은 "이정현 의원의 박 전 대표에 대한 과잉 충성태도나 일부 마음에 드는 언론사만을 선정해 브리핑하게 하는 태도는 국가정책을 다루는 공인의 자세로선 문제가 있다"며 " 이런 언론관이 시정되지 않으면 결국은 그 역효과가 부메랑이 돼 박 전 대표에게 돌아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일에서 인사는 만사다. 지나친 충성도 중심의 용인술은 투명하지 못한 조직시스템을 만든다. 국가의 지도자가 충성도만으로 인재를 등용했다가 측근 전횡이 문제가 된 사례도 많다.

 여권의 한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지난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실패한 큰 원인 중 하나가 박 전 대표의 용인술"이라며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충성도에 지나치게 의존할 게 아니라 도덕성과 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고루 기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p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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