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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인터뷰] 17세 웹툰작가 "자퇴로 얻은 자유, 무겁지만 후회 안해"

등록 2015.09.30 08:50:13수정 2016.12.28 15: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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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웹툰 '학교를 떠나다' 버선버섯 작가 그림(사진=버선버섯)

다음 웹툰 '학교를 떠나다' 버선버섯 작가 그림(사진=버선버섯)

필명 '버선버섯' 다음에 '학교를 떠나다' 연재

【서울=뉴시스】신진아 기자 = 1998년생으로 올해 17세. 필명 ‘버선버섯’은 우리나라 최연소 웹툰 작가다. 2014년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2개월 만에 자퇴한 그는 지난 3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 만화 속 세상에 ‘학교를 떠나다’를 연재 중이다.

 자퇴 이후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의 무게에 짓눌려 한동안 갈피를 못 잡던 그였다. 그러던 어느 날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일상툰을 그렸는데, 자퇴한 10대 소녀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 이 작품이 게임사이트 ‘루리웹’ 공모전에 덜컥 당선되면서 예상치 못한 길이 열렸다. 바로 정식 연재기회를 얻게 된 것.

 현재 이 작품은 크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퇴를 고민 중인 17살 학생’부터 ‘회사에 사표를 던진’ 직장인, ‘방황하는 학생들께 권하고 싶다’는 육아휴가 중인 교사에 ‘차근차근 읽으면서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자퇴생 엄마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실제로 맨땅에 헤딩하며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점을 찾아가는 '학교 밖 청소년'의 모습은 우려스럽다기보다 대견스럽다.  

 최근 마포구의 한 커피숍에서 ‘버선버섯’ 작가를 만났다. 마른 체형의 그는 내성적이면서 섬세해보였다.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어둡고 은둔적인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한창 고민 중인 그림체나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미소도 번져 나왔다. “자퇴 이후 한결 밝아졌다”는 그는 하고 싶은 일도 찾았다면서 “언젠가 애니메이션회사에서 스토리작가로 일하고 싶다”고 바랐다. 다음은 버선버섯과 나눈 일문일답.

- 필명은 무슨 뜻인가?

 “그냥 즉흥적으로 지었다. 웹툰을 그리던 그날 저녁 메뉴가 버섯 들어간 된장찌개였다. 웹툰도 장난삼아 시작했다. 한 4화 정도 습작한 상태에서 공모전에 당선됐다. 아마추어 기간이 너무 짧아서 그림체에 대한 고민이 크다. 지금도 고료 받으면 20만~30만원씩 작법서 구매에 쓴다. 저만의 생각, 저만의 스타일, 저만의 색감을 어떻게 찾을지가 최대 고민이다.”

 (‘학교를 떠나다’를 보면 작가는 언젠가부터 옷장을 검정색으로 채웠다. 이날도 그는 검정색 모자에 검정색 티셔츠 등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고 나왔다. 습작할 때도 검정색으로만 그림을 그렸단다. 하지만 연재 의뢰를 받은 뒤로는 독자를 고려해 최대한 밝은 색을 쓰려고 한다. 자신을 고양이로 그린 이유를 물었더니 원래는 마녀로 그리려 했는데 의도치 않게 동물이 됐단다.)  

- 밤새 마감했다고? 어떤 이야기를 그렸나?

 “자퇴하던 날의 이야기를 그렸다. 정말 후련하고 날아갈 것처럼 기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모든 절차를 끝내고 나니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좋긴 좋은데 앞날이 캄캄한 기분? 그러면서 뭔가 붕 뜬 느낌에 실감이 안 났다.”

다음 웹툰 '학교를 떠나다' 버선버섯 작가 그림(사진=버선버섯)

다음 웹툰 '학교를 떠나다' 버선버섯 작가 그림(사진=버선버섯)

- 부모님이 자퇴를 극구 말렸으면 갈등이 컸을 텐데...

 “제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학교에 가기 싫어했기 때문에 사실 고등학교 진학도 기대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부모님은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하라고 가르쳤다. 잘한 것은 칭찬해주되 잘못했을 때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자신이 직접 느껴봐야 깨달을 수 있다면서. 자퇴하는 날도 엄마가 ‘학교에 있을 때완 다르다. 이제 네가 모두 책임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하셨다.”

- 학교가 왜 그렇게 싫었나?

 “학교에서 정한 일정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게 싫었다. 제가 어떤 것을 좋아해 집중하고 싶어도 학교종이 울리면 정해진 수업을 들어야 하니까. 게다가 전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엄마가 남들 일에 신경 안 쓰는 면이 있고 아빠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다가도 가끔 자기 일에 빠지면 깊게 몰두하는 면이 있는데 제가 두 분의 단점(?)을 꼭 빼닮았다.”

- 친구들의 따돌림도 있었던 듯 하던데...

 “중학교가 뺑뺑이로 결정됐는데, 친구들과 달리 저만 다른 중학교로 배정됐다. 그곳 친구들이 못 보던 애라면서 따돌렸다. 근데 제가 남들보다 감정파악이 느린 편이라 제가 왕따를 당하는지 몰랐다. 아무래도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다. 친구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과도 그렇다. 특히 중3 담임이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학생들을 통제해 끌고 가고 싶어 했는데, 전 그게 너무 싫었다.”

- 성적 스트레스도 있었나?

 “물론. 공부를 아주 못한 것은 아니었다. 중간 정도였는데 오히려 이럴 경우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예 못하면 포기할 텐데 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니니까. 정작 공부를 안 하면서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근데 문제는 가장 많은 친구들이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 학교를 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방법은 불가능했나?

다음 웹툰 '학교를 떠나다' 버선버섯 작가 그림(사진=버선버섯)

다음 웹툰 '학교를 떠나다' 버선버섯 작가 그림(사진=버선버섯)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는데 온힘을 쏟게 되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진로상담을 하면 선생님은 성적부터 올린 뒤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 하는데 솔직히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말은 동기부여가 안 된다.”

-  현재가 만족스럽나?

 “자퇴하고 난 후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예전에는 매일 엄마와 싸우고 스트레스 풀려고 폭식해 위에 구멍 나고 그랬다. 자퇴 이후 여유가 생기니까 친구들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고, 8살 어린 동생과도 더 친밀해졌다. 제가 일하는 엄마 대신에 동생 일정을 관리한다.”

- 사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게 쉽지 않다.

 “오랫동안 자퇴를 원했고, 마침내 자유를 얻었는데 그 자유의 무게에 짓눌려 한동안 허둥지둥했다. 아무도 내게 요구하지 않았는데, 남들보다 대학을 일찍 가야한다는 둥 목표를 세워놓고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학교를 관두면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싶어 했던 내가 정작 그걸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몇 달간 하루에 4, 5권씩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고 나를 직시하게 됐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찬찬히 살피게 됐다.”

- 댓글을 보니 독자층이 다양하더라. 가장 인상 깊었던 댓글은?

 “자녀들이 자퇴를 원한다며 자문을 구하는 학부모님이 있다.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묻는데, 저의 경우 부모님이 그냥 제가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데도 아무 말씀 안 하고 끝까지 지켜봐 준 게 무척 고맙다. 현재 신경이 쓰이는 댓글은 제 만화를 읽고 자퇴를 너무 쉽게 생각할까봐 걱정이라는 내용이다. 사실 전 자퇴를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 자퇴를 후회하나?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 동생이 자퇴한다고 하면 말릴 것이다. 왜냐면 자퇴생을 보는 사회의 시선을 아니까.”

다음 웹툰 '학교를 떠나다' 버선버섯 작가 그림(사진=버선버섯)

다음 웹툰 '학교를 떠나다' 버선버섯 작가 그림(사진=버선버섯)

- 학교의 어떤 점이 바뀌면 좋겠나?

 “대학처럼 수업을 선택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수업도 하루에 4시간 정도만 하면 좋겠다.”

 차기작에서는 외모부터 성정체성까지 청소년 문제를 다룰 생각이다. 자신처럼 무감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그 친구가 시골로 전학 가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서로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내용으로 추리와 호러가 결합된 작품이란다. 자신과 또래 친구들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그는 “담배라든지, 성 정체성, 사랑에 대한 환상, 외모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청소년 문제는 어른들이 끼기보다 친구들끼리 해결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사실 저도 외모에 자신이 없어요. 모자를 쓰는 이유도 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죠. 하지만 저와 친구들에게 우리는 그렇게 못생기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요.”

 버선버섯 작가는 이날 청소년 희망직업 1위에 오른 웹툰 작가의 고충도 털어놨다. 그는 “저도 인기작가가 목표였는데, 이제는 버티기로 바뀌었다”며 “작업한지 1년도 안됐는데 벌써 직업병으로 허리가 아프고, 펜만 쥐어도 손목이 아프다. 계속 앉아 있다 보니 위장도 약해졌다”고 했다. 실제로 밤새 마감을 하고 나온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주 허리를 만졌다.

 “죽도록 일해 올렸는데 분량이 왜 이리 짧으냐고 하면 급좌절한다. 힘을 주는 댓글도 많지만 때로는 협박성 메일을 보내는 독자도 있다.”

 그 내용은 끔찍했다. “널 만나면 골목으로 데려가 강간하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1주일에 2번씩 한 3, 4달을 보낸 사람이 있다. 참다 참다 아이피 캡처해 또 보내면 고소한다고 했더니 이제는 안 보낸다.”

 이렇듯 눈앞의 장애물을 넘고 넘어 자신의 길을 개척 중인 그는 자퇴 이후 비로소 꿈이 생겼단다. 나름 계획도 세웠다.

 “지금 연재 중인 작품을 60~70화 정도에서 끝내고 준비 중인 신작을 그린 뒤 제주도서 한 3개월 살다와 그곳의 여행기를 짧게 연재하고 싶어요.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웹툰으로 풀고, 나중에는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스토리작가로 일하고 싶어요.”

 암에 걸려 퇴직하던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이 손때 묻은 물건을 정리하며 조용히 건넨 말씀도 기억한다. "훌륭한 어른이 아니라 행복한 어른이 되라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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