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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되는 해운업 '40년 위기'…파산한 선사들은

등록 2017.03.29 11: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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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파산선고를 받은 한진해운의 주식이 29년 만에 상장 폐지됐다.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옛 한진해운 빌딩 앞으로 진입금지 표지판이 보이고 있다. 2017.03.07.  scchoo@newsis.com

대한해운공사 조양상선 한진해운 40년 기점 파산
 현대상선은 40년만에 현대 품 벗어나는 사태 겪어

【서울=뉴시스】김동현 기자 = 한국 해운업에 종사하는 국적선사들이 40년 단위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주목된다.

 해운 분야에서 파산의 역사를 기록한 대한선주, 조양상선, 한진해운이 모두 40년을 기점으로 운명을 달리 한 것이다. 이른바 '40년 주기의 위기설'이다. 

 우리나라에서 국적선사로 사업을 펼쳐왔던 기업들 중 다수가 정부의 지원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짧은 기간내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의미다.

 1949년12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선사로 문을 연 대한해운공사(대한상선)이 첫번째 기업이다. 대한해운공사는 광복 이후 최초의 국영기업이자 해운업과 무역업을 영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기업이다.

 당시에는 민간 기업이 외항 해운업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정부는 국영기업으로 외항 해운업을 키우는 정책을 펼쳤다.

 이후 대한해운공사는 1968년7월 민영화 작업을 추진하게 됐고 1980년에는 대한선주와 대한상선으로 사명을 변경,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1988년 정치적 혼란기에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지 못한 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고(故) 박남규 회장이 1961년 설립한 조양상선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조양상선은 1979년 극동에서 유럽까지 정기항로를 개설할 정도로 해운을 주도했다.

 1990년에는 국내 최초로 세계일주항로를 개척할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자금난에 허덕이며 어려움을 겪었고 2001년5월 유동성 문제로 법정관리를 신청했지만 같은 해 8월 인가를 받지못해 폐업했다.

 조양상선 파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이전에는 없던 물류대란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조양상선을 이용한 화주들은 컨테이너를 되찾는 데 수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첨부용///대우조선

 1977년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설립한 한진해운도 1988년 대한상선(대한선주)을 합병하며 승승장구했지만 '40년 위기'를 넘지 못했다.  

 한진해운은 1992년 국내 최초로 4000TEU급 컨테이너선을 도입했으며 국내외 선사를 잇달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첫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 찾아왔다. 당시 회장을 맡고 있던 고(故) 조수호 회장의 부인 최은영 회장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자 한진가 장남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14년 회사를 인수했다.

 조 회장은 이후 회사를 살리기 위해 1조7000억원의 자금을 쏟아붓기도 했지만 결국 부채를 막지 못해 파산에 이르렀다. 1977년부터 2016년까지 딱 40년간 회사가 운영된 것이다.

 다른 사례도 있다. 현대상선은 40년만에 현대의 품을 떠나기도 했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1973년 울산 조선소를 준공하면서 1976년 새운 아세아상선이 해운업계에 등장했었다. 아세아상선은 원유수송권 확보, 광탄전용선 운항 등을 통해 사세를 확장해왔다.

 이후 1983년 현대상선으로 사명을 변경, 선일상선과 한소해운을 잇따라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나갔다. 하지만 계속되는 불황으로 인해 현대상선은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한국산업은행(KDB)으로 넘어갔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도산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경상비용은 늘어나는데 생산성과 영업이익이 감소되는 현상 때문"이라며 "국적선사라고 불리는 기업들이 문을 닫는데 정부가 도움을 주지 않고 외면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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