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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인자의 고백...가브리엘레 단눈치오 '무고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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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3-14 09: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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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이탈리아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자 가브리엘레 단눈치오(1863~1938)의 장편소설 '무고한 존재'가 국내 번역·출간됐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보들레르, 랭보, 베를렌, 오스카 와일드 등 당대의 유명 작가들이 경도되었던 데카당스 문학은 기존 체제가 몰락하고 가치가 붕괴되는 시기에 등장했다.

유럽 전역에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역사적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작가들은 실의와 절망감을 퇴폐적으로 반영하며, 관능에 대한 탐닉, 사회에 대한 반감, 탐미주의가 특징인 새로운 미적 기준을 찾았다.

그리고 이때 이탈리아 문단의 중심에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단눈치오가 있었다.

'무고한 존재'는 데카당으로서의 단눈치오의 삶의 태도와 문학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육체의 쾌감을 추구하면서 항시 불안에 괴로워하는 향락주의자의 심리를 시와 같이 응축된 문체로 묘사해 극적이면서도 혹독한 심리적 긴장감을 표현해냈다.

"그녀가 나를 보통 남자로 판단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나의 의식 속에서 내 과실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었다. 나는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도 이해하고 있어.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삶 자체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내게 부과하려는 의무를 간과할 수 있고 타인의 의견을 당당히 무시하고 특별히 선택받은 나 스스로의 본성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걸.'"(9~10쪽)

이 소설은 한 살인자의 고백이다. 주인공 툴리오 헤르밀은 사랑하는 아내를 등한시하고 연인들의 뒤꽁무니를 무기력하게 쫓아다니는 탐미주의자다.

아내의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는 의지와 정부의 유혹 앞에 여지없이 무릎을 꿇는 나약함 사이에서 주인공은 극심한 갈등을 겪는다. 주인공은 아내의 심각한 병을 계기로 다시 아내 곁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린 건 그가 예상치 못한 비극이었다.

아내는 임신한 상태였고, 툴리오는 자신의 아이일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충격에 빠진다. 자신의 전적인 무관심이 아내를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게 만들었다는 의식 때문에 그는 그녀를 용서하지만, 그가 갈등 속에서 키워왔던 형태 없는 증오가 아내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향해 자라나기 시작한다.

사내아이가 태어난 뒤 주인공은 본인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절망 속에서 천천히 살인에 대한 생각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뒤, 툴리오는 기나긴 고백을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단눈치오는 비극적 운명을 거부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단눈치오만의 캐릭터를 선보인다. 주인공은 목표를 위해 무고한 희생양을 만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단눈치오가 그려낸 것은 비극적 숙명을 거부하면서 가장 치명적인 비극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인간의 모습이다.

옮긴이 윤병언씨는 "'무고한 존재'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것은 무고함의 정복에 대한 집착"이라며 "아내에게 돌아오기로 결심하면서 주인공은 두 여인을 사랑하며 스스로 창조해내던 사랑의 갈등을 포기하고 무고함을 정복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고 말했다.

"그가 사랑의 갈등을 포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예감과 퇴폐적인 것에 대한 애착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내를 누군가에게 빼앗겼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예감은 걱정이나 근심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 대한 궁금증의 형태로 표현된다." 428쪽, 문학과지성사, 1만5000원.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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