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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리뷰]어떤 헤쳐모여, 한국무용의 확장···김설진 '더 룸'

등록 2018.11.09 15: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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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리뷰]어떤 헤쳐모여, 한국무용의 확장···김설진 '더 룸'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미끼를 물었다. 싱어송라이터 우효의 '페이퍼 컷'이다. 현대무용수 겸 안무가 김설진(37)이 만들어놓은 방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다.

8~10일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공연하는 국립무용단 '더 룸'은 무용수 8명의 기억 또는 상상을 극으로 풀어낸다. 커다란 이야기의 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옴니버스 형태도 아니다. 기억으로 은유할 수 있는 방에서 8명이 선보이는 몸짓은 관객 각자의 기억 또는 상상을 불러낸다.

결국 관객은 극에서 자신에게 와 닿는 무엇을 통해 저만의 감상법을 만들어가게 된다. 감상법을 만들어가는 힌트는 공연 시작 전 그리고 공연 내내 산재해있다.

공연장에 들어가면 하나의 방이 관객들을 맞는다. 평범하게 꾸민 보통 방이다. 그곳에는 라디오가 켜 있다. '페이퍼컷'은 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중 하나다.

'바람에 날려갔으면 강물에 실려갔으면 무심히 나를 베었던 기억들이 떠나갔으면 보이지 않는 선들이 지워졌으면', 가사는 기억을 메타포로 삼은 극과 연결된다. '페이퍼컷'이 열쇳말이 돼 극에 빠져든다. 이처럼 김설진은 관객이 저마다 극을 해석할 수 있는, 열쇠를 곳곳에 숨겨 놓았다.

저마다 개성이 드러나는 국립무용단 단원들의 몸짓을 보는 것도 재미다. '승무' 전수자인 김현숙은 작은 움직임만으로, 큰 물결을 일으킨다. 김미애는 몽환적이며 윤성철과 김은영은 일상의 움직임을 변형한 동작 막춤을 선보인다. 문지애는 한을 가득 담았고, 황용천은 역동적이며, 박소영과 최호종은 젊고 뜨겁다.
 
벨기에 현대무용단 '피핑 톰'에서 무용수로서 몽환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김설진답게 극은 초현실주의 성찬이다. 자기 복제는 아니다. '더 룸'의 무용수들이 한국무용 기반이니, 호흡부터 다르다. 다른 움직임과 분위기를 내뿜을 수밖에 없다. 
[뉴시스 리뷰]어떤 헤쳐모여, 한국무용의 확장···김설진 '더 룸'

특기할 만한 점은 음악이다. 음악은 춤의 공기와 같다. 동작은 멜로디와 리듬으로 호흡한다. 그런데 '더 룸'에는 국악 기반의 곡들이 하나도 없다.

미국 록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팝 펑크 '나나나'를 비롯해 '섬싱 투 라이브 포'를 포함한 미국 재즈 가수 니나 시몬의 노래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 이 곡들을 배경 삼아 발을 놀리고 몸을 움직이는 한국무용수들의 춤사위는 현시점 한국적인 춤의 확산을 보여준다.

'더 룸'은 현대무용계 스타 김설진과 전통무용을 기반으로 하는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무용단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주목 받았다. 공연 전 김설진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되돌려줬다. '더 룸'은 그 진부한 물음에 답이다.

물론 뿌리인 전통 기반의 춤들도 보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선보이는 춤이 '한국 무용이 되는 시기'다. 지금을 사는 우리 정서가 담긴 것이기 때문이다. '더 룸'은 한국무용수의 유연함, 한국무용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공연 막바지, 달오름 무대 위에 설치된 방은 턴테이블 무대를 타고 한바퀴 돈다. 방의 외형인 집의 겉모습이 나온다. 그 방에 갇혀 있거나 나오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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