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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산은· 한진 오기 대결에 깔린 '국익'

등록 2016.10.05 16:29:20수정 2016.12.28 17: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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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근홍 기자 = 지난달 30일 전남 여수시 세존도 인근 해상에 떠있던 한 배에서 임신부가 육지로 긴급 호송됐다.

 지난 7월20일 배에 탄 그는 한 달 넘게 공해상 위에 묶여 있다가 병원에 가기 위해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진해운 선원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다. 해당 임신부는 가족동승제도에 따라 남편과 함께 한진부다페스트호에 올랐다가 이런 고초를 겪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공해나 인근 해상에 떠 있는 한진해운의 배 안에는 수백명의 선원들이 갇혀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예견한 이들이 있다. 다름 아닌 이번 해운업 물류대란의 가장 큰 책임을 지니고 있는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다.

 지난 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나란히 증인으로 참석한 이 회장과 조 회장은 볼썽 사나운 '핑퐁게임'을 벌였다.

 장시간 국회의원들의 질의를 받으며 이들이 보인 태도는 하나였다. 진심어린 사과는 뒷전이고, 책임 전가에만 열을 올렸다.

 서두에 "불행히도 한진해운 정상화에 실패했다", "국민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두 회장은 나머지 시간을 변명에만 할애했다. 내용은 낯부끄러울 정도다.

 이 회장은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당시 한진해운은 채권단의 추가 지원 여부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조 회장의 자존심을 고려해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을 위해) 내 팔 하나 자르겠다는 대주주의 의지가 없었다"며 수위 높은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조 회장 역시 "정부도 정부 나름의 기준과 정책이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결국 내가 부족해서 설득에 실패했다고 본다"고 에둘러 정부와 채권단의 결정을 비판했다. 자구 노력이 부족했음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국감에서 가장 참담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물류대란 사태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다.

 이 회장과 조 회장은 '물류대란 사태가 일어날지 미리 알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이 회장은 "한진해운발 물류대란은 이미 자율협약 종료 한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되묻고 싶다. 국책은행의 수장, 대기업의 오너로서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알고 있었으면서 왜 진작 막지 않았느냐고. 법정관리가 불가피했다면 왜 미리 후속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느냐고.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한진해운 퇴출시 물동량 188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가운데 약 62.8%인 118만TEU를 외국 선사에 빼앗긴다.

 이로 인한 피해금액은 해운수입손실(7조7000억원)·추가운임부담(4407억원)·항만 부가가치(1152억원) 등 총 8조2559억원, 실업자는 약 1만1000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추락한 국가 신뢰도, 한진해운을 비롯한 관련업계 근로자들이 받을 정신적 피해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국감장에서 '나는 알고 있었지만 상대가 협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이 회장과 조 회장은 오히려 자신이 범한 가장 큰 잘못을 시인한 셈이다.

 모르고 한 실수는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알고도 놔둔 방임은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국책은행 수장인 이 회장과 국내 굴지 기업의 오너인 조 회장이 자율협약 과정에서 오기 대결을 벌이는 동안 국익은 안중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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